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키며 기나긴 복수극이 막을 내린 기원전 473년이었다. 승리의 주역이었던 범려는 축배를 드는 대신 조용히 짐을 쌌다. 그는 월왕 구천이 '고난은 함께할 수 있어도 부귀영화는 함께할 수 없는' 인물임을 꿰뚫어 보았다.
범려는 친구이자 동료인 문종에게 편지를 보내 "날던 새가 다 잡히면 좋은 활은 창고에 처박히고(조진궁장),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는 삶아 먹힌다(토사구팽)"는 말을 남기고 제나라로 떠났다. 경고를 무시하고 월나라에 남은 문종은 결국 구천의 의심을 사 칼을 받고 자결했다.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것, 그것이 생사를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