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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영 Jul 04. 2021

배는 부른데, 속은 허해


요즘 들어 식탐이 많아졌다. 먹고 싶은 것도 늘었고, 경험해본 적 없는 새로운 맛도 궁금해진다. 거리두기로 인해 만나는 사람은 줄었는데 혼자서 참 잘도 먹는다. 배달 어플도 한 몫한다.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기만 하면 문 앞까지 배달을 해주니 얼마나 편리한가.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삼시세끼 외에 특별히 뭐가 더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물론 친구들을 만나 맛집을 가기도 하고 스페셜한 음식이 당길 때는 외식을 하기도 했지만, 집에서 할머니와 엄마가 만들어주는 음식만으로도 충분했다. 오늘 이 음식을 먹지 않으면 기분이 몹시 나빠질 것 같은 느낌이 든 적은 거의 없었다. 


아마도 독립을 한 이후부터 음식을 향한 집착이 더 강해진 것 같다. 바쁘고 귀찮다는 이유로 대충 아무렇게나 챙겨 먹으면서 음식에 대한 결핍을 많이 느끼게 된 탓이다. 


무엇보다 탄수화물 섭취가 많이 늘었다. 빵과 면 같은 밀가루 음식이 주는 쾌감을 거부할 수가 없다.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면 살찌고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듣지만 두 귀를 막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탄수화물이 에너지의 원천인데, 사람이 탄수화물을 먹고살아야지."


천덕꾸러기가 된 탄수화물 편을 들어주며 나도 모르게 손이 배달 어플을 누르고 있다. 오늘 저녁은 피자, 너로 정했어!


경험을 통해 안 사실인데, 빵이나 면 요리에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배부름은 잠시, 금세 배가 고파진다는 점이다. 방금 전 잔뜩 먹어서 배는 부른데, 속이 허한 느낌... 배가 부른 지 고픈지 당최 알 수가 없는 이상한 느낌이다. 이럴 때면 늘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배가 부르다는 생각'을 이겨버린다. 99개를 가졌으면서도 못 가진 1개를 가지려고 애쓰는 심정이 이해가 간다. 분명 배는 부른데, 1퍼센트의 배고픔을 이겨내지 못하는 거다. '가짜 배고픔'이란 말도 들어서 알고 있지만 사실 배고픈 느낌에 가짜는 없다. 내 몸이 배고픔을 느끼는데, 그걸 어찌 가짜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갑작스러운 배고픔을 최대한 빨리 해결해주지 않으면 감정의 온도가 슬슬 변하기 시작한다. 방금 전까지 기분이 좋았는데, 어느 순간 짜증이 밀려오면서 급기야 불안과 분노가 순식간에 덮쳐온다. 빵을 먹은 지 1,2시간 만에 또 먹을거리를 찾고 있다. 아무래도 탄수화물 중독인가.


예전에는 살짝 배고픈 느낌 정도는 즐길 수 있었다. 배고픔을 참을 때마다 살이 빠지는 기분이 들고 몸도 가벼워졌는데, 이제 다이어트도 쉽지 않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   


배는 부른데 속은 허하다니, 이건 어쩌면 몸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배=위'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속'을 단순히 '위'라고 하기엔 애매한 구석이 있다. 몸 '속'에는 위도 있고 간도 있고 쓸개도 있고 심장도 있다. 그리고 더 깊은 속에는 보이지 않는 무엇이 있다. 마음, 혹은 영혼이라고 부를 수 있는... 배가 부른 건 몸의 느낌이 맞지만 속이 허한 건 마음의 느낌인가 보다. 텅 빈 영혼이 배고프다는 느낌으로 자신의 존재를 외치고 있는 모양이다. 

 

텅 빈 영혼은 무엇을 먹어야 채워질까? 말 그대로 소울푸드가 필요한 걸까? 사실 빵과 면을 자주 먹은 이유는 맛있기도 하지만 간편하기 때문이었다. 10분이면 끝나는 식사를 하기 위해 1시간의 요리를 하고, 그렇다고 사 먹는 것보다 맛있지도 않은데, 먹고 난 후에는 설거지까지 해야 하는 게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간단하고 맛있게 먹고, 간단하고 쉽게 치우고 싶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복잡하고 정교하게 설계된 몸과 마음은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이 음식을 누가 어떤 마음으로 만들어졌는지, 어떤 재료로 얼마나 공을 들여 만들었는지 몸과 마음은 다 안다.


그래서 인스턴트 음식을 많이 먹으면 배가 아프고,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 음식의 영양분이 몸 구석구석 흡수되지 못한 채 그대로 장을 통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몸도 붓고 살도 찐다. 통통하고 뽀얗게 살이 오르는 게 아니라 푸석푸석하게 몸이 무거워진다. 허한 영혼에도 형태가 있다면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모습이 아닐까.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들어낸 먹거리 말고, 효율은 제로이지만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먹기로 한다. 하루는 멸치 육수를 내어 된장을 풀고 각종 채소와 두부를 넣어 찌개를 끓인다. 또 하루는 채소와 고기를 정성스레 볶아 고형 카레를 넣고 카레를 만든다. 냄비 가득 끓어오르는 모습만 보아도 영혼이 채워지는 느낌이다. 집 안에서 음식 냄새가 나고 사람 사는 온기가 느껴진다. 갓 지은 냄비밥을 퍼서 카레를 곁들여 먹는다. 단무지와 깍두기는 비록 대기업이 만든 제품이지만 그래도 함께 곁들이니 더 맛이 난다.    


먹은 그릇을 설거지하며 유튜브로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 설거지를 다 한 후에는 자주 마시는 커피 대신 보이차를 우려 차분히 마셔본다. 비로소 영혼이 채워지는 기분이다. 영혼의 효율로 따져보건대 200퍼센트, 아니 수치로 환산하지 못할 이익이다. 어차피 영혼은 숫자 따위 관심도 없다. 마침 짜맞춘 효과음처럼 창밖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시원한 초여름 저녁의 소나기다. 영혼을 촉촉하게 적시는 고마운 단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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