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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영 Jul 11. 2021

운동하는 여자의 몸


작은 얼굴, 가녀린 어깨, 가느다란 팔다리를 꿈꿨었다. 만화책이나 로맨스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그랬다. 하얀 피부에 윤기 나는 긴 생머리, 하다못해 손가락까지 가늘고 길었다. 아름다운 여자를 볼 때면 같은 여자이면서도 설렜다.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각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르겠지만 큰 것보다는 작은 것, 굵은 것보다는 가느다란 것, 세고 강한 것보다는 여리여리한 것, 거친 것보다는 부드러운 것, 거뭇거뭇한 것보다는 순백의 것을 더 아름답다 여겼다.        


그에 비해 거울로 보게 되는 나의 몸과 얼굴은 아름다움의 기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렇다고 못 봐줄 만큼 추하지도 않았지만 스무 살의 나에게 아름답지 못한 것은 모두 추한 것이었다. 그나마 청춘의 생기가 아름다움의 자리를 채워주던 시절이었다. 봄날의 풀잎 같은 연한 말랑말랑함으로도 그럭저럭 빛을 낼 수 있던 날들이었다.


그러다 덜컥 젊음이라는 아름다움에 기대기에는 어쩐지 염치가 없어지는 나이가 찾아왔다. 더 이상 거울을 보기도 사진을 찍기도 싫어졌다. 거대하고 둥실둥실한 나의 몸이 꼴 보기 싫었다. 살을 빼겠다고 식단 조절을 하고 디톡스도 해보았지만 그때뿐이었다. 젊었을 때는 배고픔을 참는 일이 어렵지 않았는데, 요즘은 한 끼만 제시간에 챙겨 먹지 못해도 현기증이 난다. 참을성이 없어진 건지, 식탐이 강해진 건지... 둘 다 이유가 되겠지만 무엇보다 밥심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소식을 할지언정 굶으면서 가녀린 몸매를 유지할 나이는 지나갔다. 애석하게도.


평생소원이었던 팔다리가 긴 가느다란 몸을 가져보지도 못한 채 포기하려니 뒤끝이 씁쓸하다. 안다. 다시 태어나지 않고서는 가질 수 없는 몸이라는 사실을... 설사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그렇게 태어나리란 보장도 없다. 이쯤 되면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그토록 팔다리가 긴 가느다란 몸을 꿈꿨니? 아니 질문을 바꿔서 이렇게 물어야 한다. 왜, 팔다리가 긴 가느다란 몸만을 아름답다 여겼을까? 


황금비율이라는 아름다움의 절대 기준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름다움은 인식의 문제다. 주관적 인식을 넘어 사회문화적인 시선과 판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니 내가 아름다움에 대해 편협한 잣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전적으로 내 잘못만은 아니다.    


본격적으로 요가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체질 변화와 함께 몸의 형태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일단 땀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사우나를 가도 땀이 잘 나지 않는 체질이었는데, 요가를 하고 난 후부터는 조금만 날이 더워져도 땀이 난다. 바람결에 스쳐오는 내 땀 냄새에 내가 먼저 놀라 흠칫할 때가 많다. 손발이 따뜻해진 것도 달라진 점이다. 수면양말을 신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었던 과거를 생각하면 달라져도 많이 달라졌다.


몸의 형태 가운데 눈에 띄게 달라진 부분은 어깨 근육이다. 순하기만 하던 어깨가 잔뜩 성이 났다. 더불어 팔뚝도 한껏 굵어졌다. 종아리와 허벅지도 마찬가지다. 섬세한 붓으로 흘려 그린 듯 부드럽고 가녀린 곡선을 꿈꾸던 것과는 몸이 오히려 반대가 되어간다. 


물론 군살도 많고, 특히나 뱃살은 구제불능이고 인생 최대의 몸무게를 찍고 있지만 몸이 점점 단단해져 간다는 느낌은 실감한다. 맥없이 길고 가느다랗기만 한 몸과는 다르다. 일반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에서는 멀어져 가고 있지만 뱃속 깊숙한 곳에서 나름의 뻔뻔함이 솟아오른다. 이만하면 어때? 건강하고 튼튼해 보이는 몸이잖아! 건강하고 씩씩하게만 자라 달라는 모든 부모님들의 바람대로, 나는 그렇게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는 중이다. 


이제 나에게도 전형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에서 시선을 돌려 다른 형태의 아름다움을 인식할 수 있는 눈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아기 비누 냄새가 아닌 땀냄새가 나더라도, 팔다리 근육에 잔뜩 성이 났더라도 운동하는 여자의 몸은 아름답다. 그 몸속에 건강한 생명력이 뿜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살아있음을 긍정하고, 내 몸을, 나아가 내 거친 마음까지 한껏 포용할 수 있는 힘이 운동하는 여자의 근육에서 생겨난다고 믿는다. 


밥심은 곧 탄수화물의 힘인데, 아무리 밥심으로 산다지만 힘으로 쓰고도 남을 만큼 탄수화물을 먹는 것 같다. 내가 오늘 먹은 음식이 내 몸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운동과는 별도로 건강한 식습관에 대해서 다시금 점검해 볼 필요가 있겠다.  


문득 영화 <그래비티>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우주를 떠돌던 라이언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 분)가 드디어 지구에 도착해 자신의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일어나는 장면. 다시 봐도 감동적인 장면이다. 물론 진공의 우주는 경이롭고 고요하지만 팔다리 근육을 쓰지 못한 채 인간을 부유물로 만들어버린다. 저항이 있더라도, 아픔과 통증이 있더라도 중력에 맞서 근육을 만들 수 있는 지구가 더 다이내믹하다. 


중력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채 살은 점점 탄력을 잃고 처져 가겠지만 계속 팔다리를 움직여 땀을 흘리련다. 지구에서 지구인으로 사는 동안은 마음껏 땀 냄새를 풍기고 싶으니까. 나는 죽을 때까지 운동하는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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