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는 냄비 속의 대한민국
개구리가 죽었다. 개구리가 들어가 있는 냄비가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지고, 꺼질 듯 말듯한 희미한 불꽃의 가스불이 조용히 냄비를 데운다. 긴 시간이 지나 냄비는 끓고, 그때서야 개구리는 냄비 밖으로의 도약을 시도한다. 하지만 개구리는 너무 늦었다. 그렇게 냄비 속의 개구리는 죽었다.
끓는 물속의 개구리(boiling frog)는 19세기에 행해졌던 한 실험에서 증명된 바가 있다. 1872년, 하인츠만은 개구리에 관한 한 실험을 한다. 개구리를 물에 넣고 서서히 끓여 본 것이다. 그 실험에서, 아주 천천히 온도가 올라가는 물에서는 정상적인 개구리가 탈출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냄비 속의 개구리' 혹은 '끓는 물속의 개구리'라 불리는 이 이야기는 중요한 변화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둔감하고 무관심한 사람들을 빗대어 말한다.
나는 여기에서 대한민국의 긍정적인 면모를 발견했다. 건국 이후 경제화, 민주화 과정에서 쌓여온 폐습과 악습이라는 가스레인지 불이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인 대한민국을 달구어 왔고, 지금도 달구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저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가만히 아무것도 못 느낀 채 죽음을 기다리지 않는다. 소리 지르고, 냄비 밖을 향해 도약한다. 방법을 강구하고 행동한다. 그것이 촛불이 되고, 국민의 목소리를 만들어, 부조리에 저항해 나간다.
헬조선이라 스스로 부르는 대한민국,
세계의 수많은 냄비 속의 개구리들 중 가장 민감하고, 영민한 개구리가 아닐까.
아직은 97.5℃
100℃가 되기 전, 우리 스스로 뜨거운 물을 박차고 나오길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