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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기문 Sep 29. 2015

신해철과 시대정신

우리는 시대정신이 필요하다. 

밤송이가 떨어진다. 감이 노랗게 물든다.  소리 없이 가을은 또 와버렸다. 

한 사람이 생각난다. 1년 전 가을에 떠났던 마왕 신해철, 그 사람이.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그는 예고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올해 이 가을

물들어가는 잎사귀가 야속하고  벼 익어가는 논이 서럽다.


     


신해철은 시대정신이었다.  


좋은 사람은 먼저 간다던 어느 누구의 말이  그때처럼 아팠던 적은 없다. 2014년 10월 27일 신해철은 의료과실로 세상과의 이별을 고했다. 그가 앉아있던 많은 자리들이 안타까운 마음을 더했다. 90년대 가요 르네상스의 한축, 라디오의 명 DJ,  빵빵 터지는 캐릭터를 가진 예능인 등 수 많은 이유들.  그중에 그의 죽음이 안타까운 가장 큰 까닭은 신해철이라는 지성인의 빈자리였다. 경직된 이 시대에 그가 보여준 시대정신이었다. 


시대정신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더 나은 곳으로 가는 방향을 제시한다.  비판으로만 끝내지 않는다.  이 사회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말하고 이치에 어긋나는 것을 입에 담아낸다. 정문일침의 대안을 제시한다. 그 결과 환영의 목소리를 받기도 하지만 비난과 질책의 중심에도 서게 된다. 그래서 시대정신을 말한다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신해철은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신해철은 60년대에 태어나 대한민국의 경제적 부흥기에 성장했다. 1987년 6월 항쟁이 있던 해에 대학생이 되었다. 90년대, 군부정권을 걷어낸 문민정부 때 가수로서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대한민국이 IMF시대를 겪고 극복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후 세 명의 대통령이 당선되는 것을 보았다.


그가 살아온 46년의 인생은 대한민국의 부흥과 침체를 모두 관통했다. 음악과 라디오를 통해 자신과 다른 많은 이들과 교감했다. 어른이 아닌 친구로서, 기득권이 아닌  이 사회를 이고 지는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우리와 공감했다. 그렇기에 그는 납득이 되는 시대정신을 낳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없다. 더 이상 신해철 한 사람에게 시대정신을 맡길 수 없게 되었다.


정신보다 본능, 하지만 


앞으로 신해철, 그는 우리의 시대정신을 대변해줄 수 없다. 이제는 청춘 스스로가 시대정신을 찾고  제시해야 한다. 우리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2030의 시대정신은 나또한 답하기 어렵다. 하지만 당신이,  2030의 삶에서 무엇을 지향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생존'이라 답하겠다. 청춘들은 팍팍하고 비좁아진 세상의 문턱에 서있다. 멋있고 거창한 시대정신을 바라는 것은 과도한 요구다. 살기 위해 20대에 88만 원의 임금을 받고, 죽지 않기 위해 연예 결혼 출산을 포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신보다는 생존이라는 본능이  우선시된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건국한지 1세기를 넘지 않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고 한다. 2040년이 되었을 때 생산가능 인구가 절반으로 감소한다. 총부양비는 지금의 2배로 증가한다. 이 정도면 자연스러운 노화가 아니라 심각한 병이다. 대한민국은 상해 임시 정부가 수립된 1919년을 건국한  해로 본다 해도, 100년이 안된 어리디 어린 나라다. 해를  먹을수록 성숙해지고 익어가야 하는 내 나라가 조로병에 걸리고 거기다 수 많은 합병증까지 앓고 있다.  오늘을 견디어내고 내일을 걱정하는 삶을 살지라도 이 현실을 외면할 수 만은 없다. 2040년을 살아갈 사람은 기성세대가 아닌 지금의 청춘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해철의 난 자리는 너무나 아프다. 그의 참말이 더 따갑게 다가오고 그가 지니고 있던 시대정신 가슴 아리게 그립다. 하지만 울고만 있을 수는 없다. 결국 청춘의 시대정신은 스스로가 만들어나가야 한다.  청춘은 밥 한 숟갈 쉬원히 삼키지 못한다.  잠 한숨 편히 자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과도한 요구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은 시대정신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말하는 또 한 사람의 신해철이 되어야 한다. 미래는 다른 이가 아닌 우리가 살터이니  


학생의 본분은 자신의 가능성을 찾는 것이고, 학생의 본분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깨달아가는 것이며, 학생의 본분은 이 세상이 무엇이 부당하며 무엇이 합당한지를 알아가는 것이다.    


고스트 스테이션에서 그가 말한 학생의 본분은 청춘의 본분이기도 하다. 신해철이 말한 본분을 다 할 때 비로소 '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안할 수 있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故 신해철 1주기, 한 달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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