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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ul 24. 2017

“한식이 누려온 ‘까방권’, 오히려  발전 저해해”

<한식의 품격> 저자 이용재 인터뷰


2017년 대한민국을 설명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적폐청산’. 근대화 과정 없이 압축성장을 이룬 대한민국은 굶주림에선 벗어났지만 사회 구석구석에 그 폐해가 스며들었다. 정치, 경제, 교육과 문화계까지 철학 없이 몸집만 불렸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운 곳은 없을 것이다. 비판의 화살을 좀 더 가까운 곳으로 방향을 바꾸어 보자. 삼시 세 끼 접하는 밥상이나 우리 집 부엌은 어떨까? 가족들의 건강을 생각한 냉장고 속 식재료, 엄마가 정성스레 차려 준 밥상에 적폐라니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우리 밥상 위에는 적폐가 없을까?

음식평론가 이용재는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답한다. <외식의 품격>에서 한국화된 서양 요리의 문제점을 꼬집었다면, 새 책 <한식의 품격>(반비/ 2017년)에선 우리가 매일 먹는 밥, 우리의 전통이라 여겼던 한식의 적폐를 거침없이 보여준다. ‘한국음식은 맛이 없다’는 조금은 도전적인 머리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다가도 밥을 해 먹는 일련의 과정을 곱씹어보면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먹으면 입천장 다 벗겨지는 팔팔 끓는 국도 한국 고유의 것?

Q <외식의 품격>에 이어 <한식의 품격>이라는 책이 나왔어요. 어떤 문제의식에서 탄생한 책인지 궁금해요.
 

외국에서 생활을 하면서 음식을 직접 만들어먹고, 음식과 관련한 이론들을 공부했어요. 그러고 한국에 와보니 전에는 안 보였던 게 보이는 거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회의가 들기 시작한 거예요. 예를 들면 서양요리에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온도가 있어요. 우리는 팔팔 끓는 국을 먹는데, 입천장이 다 벗겨지면서도 한국의 시원한 맛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걸 한국의 고유한 것으로만 생각해야 되는지 고민하게 됐죠.

한식이 왜 좋은지 물으면 한식이니까, 우리 거니까 좋다고 답해요. 또 어떤 음식이 한식이냐고 물으면 답하기 어려워해요. 부대찌개가 한식인가요? 치킨은요? 우리가 매일 한식을 먹는다고 얘기하지만 현실을 보면 그렇지 않단 말이죠. 한식을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어요.

Q ‘한국음식은 맛이 없다’는 말이 충격적이었어요. 실제로 맛이 없는 건지,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한식의 문제점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맛이 없다는 건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데요, 식재료 다양성이 떨어지고, 실제 맛이 좋지 않아요. 채소는 밍밍하고 과일은 인공감미료 맛이 너무 강해요. 닭도 영계만 좋아해서 무게가 1kg도 안 되거든요. 그런데다 양념 위주로 식재료를 압도하는 조리법들이 대부분이고요.
 
사회적인 문제도 있어요.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이 따로 있잖아요. 요리하는 주체는 대부분 여성에게 편향돼 있고 개선될 조짐은 안 보이죠, 일테면 저희 집 근처에 5,000원짜리 맛있는 백반집이 있어요. 그런데 먹고 나면 기분이 좀 별로에요. 이걸 5천원에 어떻게 팔지 싶은 거예요. 결국 거기서 일하는 여성들의 노동을 생각하게 되고, 사회적인 의미로도 맛이 없는 거죠.

우리는 음식을 기능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요리에도 철학이 필요하거든요. 음악가가 음표로 자기를 표현하는 것처럼 음식도 다섯 가지 맛으로 표현해야 되는데 그런 이해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요. 다른 예술이 그렇듯 음식도 다섯 가지 맛을 활용해서 인간의 경험을 바꾸는 거니까요. 물론 모든 음식이 창작물은 아니지만, 머리로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야 음식이 발전한다고 보는데, 우리는 기능적인 것만 보는 게 문제죠.

Q 머리로 생각하는 부분이 필요하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책에서 ‘과학을 이용해서 한식을 발전시키려는 시도가 폄하된다’고 얘기한 것과 관련이 있나요?

과학적 사고를 해야 된다는 거죠. 예를 들면 ‘스테이크에 육즙을 가둔다.’는 얘기를 지금도 TV에서 들어요. 잘못되었다는 게 이미 밝혀졌는데도 그런 표현을 쓰는 걸 보면 답답해요. 아주 기본적인 수준의 과학 원리만 생각해도 잘못된 정보들을 많이 수정할 수 있어요. 아무리 음식이 감정의 산물이라고 해도 요리의 기본은 화학적 변화거든요. 그런 고민이 없으니까 7 ,80년 전에 논파된 얘기를 아직도 하고 있는 거고 그게 발전을 막고 있다고 봐요. 이런 얘기를 하면 부정적인 반응들을 보여요. ‘난 맛있게 먹었는데 왜 그러냐?’ ‘정성들여 만든 음식을 욕하지 말라’는 내용이 대부분이에요. 한식이 소위 ‘까방권(까임방지권, 하나의 장점으로 다른 단점에 대한 비난을 면할 권리-편집자 주)’을 누려왔다고 생각하고요, 그게 오히려 발전을 저해하죠.



화학 조미료, 넣느냐 마느냐보다 어떻게 쓸지 얘기해야

Q 약식동원(藥食同源), 그러니까 음식을 약으로 생각하는 게 위험하고 무책임하다는 말이 놀라웠어요. 이제껏 먹은 슈퍼푸드가 다 소용없었나 싶어 허무하기도 하고요. 정말 음식과 약은 별개인가요?

식당마다 ‘음식이 보약’이라고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약은… 약이 있잖아요.(웃음) 그게 정말 효능이 있으려면 엄청나게 많이 먹어야 돼요. 항산화를 위해 초콜릿을 먹으려면 10kg은 먹어야 돼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요. 과학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얘기가 이런 거예요. 그런데도 말이 안 되는 얘기들이 너무 많아요.

화학조미료를 대하는 태도는 종교에 가깝다고 봐요. 무해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와도 계속 음모론이 나오잖아요. 제가 사람들의 믿음에 도전하고 설득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와 상관없이 사실이라는 건 있잖아요. 조미료를 넣느냐 마느냐가 아니고 조미료를 어떻게 쓰는 게 잘 쓰는 건지를 얘기해야 되는데 못하는 거죠.

Q 화학조미료를 노동력이라는 관점에서 고려해보자는 얘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책에서도 여러 번 강조하셨지만, 결국 현실을 인정하고 습관에 얽매이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맛을 내는 과정은 시간과 노동력이 집약되는 거잖아요. 그 과정 중 일부를 화학조미료로 얻을 수 있다면 고려해보자는 거죠. 조미료는 하나의 기술이고, 그걸 잘 쓰는 게 중요한데 기술 자체의 존폐여부에만 관심이 있어요. 그렇다고 우리가 조미료를 안 쓰나요? 엄청 많이 써요. 괴리가 느껴지죠.

문제는 잘못된 조리법을 계속 고수하면서 그걸 전통이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하던 대로 요리해온 습관에서 벗어나기 싫은 걸 전통이라고 비호하면 정말 발전이 없는 거죠.

한식의 품격은 '집밥' 아닌 '저녁있는 삶'에서 가능
 
Q 한식의 문제점, 잘못된 습관들을 지적해주셨는데요,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랄까 식문화의 미래에 대해 고민한다면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까요?
 
집밥의 미덕을 강조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우리가 집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집에서 해먹는 즐거움도 있지만, 음식 만드는 건 굉장한 노동이기 때문에 유연해져야돼요. 바깥에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아지고 전체 음식수준이 높아지면 밥 해먹는 시간을 다르게 더 잘 쓸 수 있죠. 사실 지금 우리한테 중요한 문제는 ‘저녁이 없는 삶’이잖아요. ‘저녁 있ㄴ는 삶’이 보장돼야 집밥이든 외식이든 얘기하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최근엔 일인가족이 많아지고 있는데 한국 음식이나 식문화 여건이 개인화에 안 맞는 것도 생각해 봐야겠죠. 그런 걸 생각하면 음식을 만드는 레시피도 중요하지만 전반적으로 음식을 내 삶에 어떻게 편입시킬 것인지 고민해야 되고, 그런 과제들을 정리하고 싶어요.
 
Q 먹고 사는 건 누구에게나 관심사일 텐데요, 맛있는 한식, 즐거운 식생활을 위해 꼭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먹는 손과 만드는 손이 분리되는 현실을 크게 고민해야 될 것 같아요. 음식이 그렇게 특별하면 더 많은 사람이 요리를 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엄마 손맛만 찾고 남자들은 요릴 안 하잖아요. 음식뿐만 아니라 가사노동 전체가 다 그렇고요. 한식이 어떻게 돼야한다는 과제도 있지만 한식을 만들기 위해서 누구의 손이 가장 바쁘게 움직이느냐에 대한 고민을 다들 해야 돼요,
 

글 : 정윤영(북DB 객원기자)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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