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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주미 Dec 14. 2021

03 재인아, 엄마한테도 꿈이 생겼어

[인터뷰] 아주 천천히, 좋아하는 걸 찾아가고 있어 - 김지홍

03 

재인아, 엄마한테도 꿈이 생겼어

(이 대화를 끝까지 읽기 위해 4분의 시간을 내어주세요.)



최근에 이사한 집에선 요가 하는 공간도 훨씬 좋아진 것 같더라. 

지홍: 이사 오기 전부터 신랑이랑 피 터지게 싸워서 얻어낸 공간이야. 남편은 서재로 꾸미고 싶어했는데, 내가 요가방으로 쓰고 싶다고 눈물로 호소했거든. 태어나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게 생겼고 앞으로 평생 하고 싶은 일인데, 연습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지금 밖에 없으니 한 번만 양보해달라고 말이야. 그래도 동의를 안 해주더니 내가 매일매일 골방에서 수련하는 걸 보고 이게 장난은 아니라는 걸 느꼈나 봐. 예전 집에서 찍은 요가 사진 너도 많이 봤지? 사진은 책장 앞에서 찍었지만 사실 매트 하나 펴 놓을 자리밖에 없는 작은 골방이었어. 그땐 조용하게 요가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거기 밖에 없었거든. 


말 그대로 ‘자기만의 방’을 쟁취했구나.

지홍: 거기서 혼자서 플로우 짜서 연습해 보는 시간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 그러다 요즘엔 집에 계시는 엄마한테도 가르쳐주고 있어. 요즘 내가 올리는 요가 영상도 혼자 수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맞은편엔 엄마가 있어. 엄마가 따라 하면서 너무 좋아하지. 요가원에선 어리고 예쁜 회원들이 많고 또 다들 잘하니까 도저히 못 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가르쳐주니까 재미있고 계속하고 싶대. 엄마도 내가 요가를 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느끼는 것 같아서, 같이 책도 찾아보고 그래. 


요즘엔 집에 사람들을 초대해서 같이 요가를 할 때도 있는 것 같던데? 
지홍: 응, 요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이제 공간도 생겼으니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어졌어. 집들이하고 식사 대접할 겸, 대신 한 시간 전에 와서 요가 한 번 같이 해보자고 하는 거지. 그 중엔 요가를 처음 하는 사람도 좀 해본 사람도 있었는데, 문제는 다들 그때만 좋아하고 계속하진 않게 되더라. 다들 내가 요가 하는 사진을 보며 궁금해하고 대단하다고 칭찬도 해주는데, 내가 그들을 요가로 이끄는 데는 실패한 거지.


요가 모임을 집들이나 티타임 겸 엮어서 해보는 건 좋은 아이디어 같아. 근데 언젠가 비즈니스로써 이걸 지속할 수 있는지는 좀 고민이 되겠네. 

지홍: 응, 진짜 고민되더라. 회원들이 계속 나한테 배우고 싶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내가 부족한 걸 수도 있어. 사람들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수업을 진행해서 힘들어할 때도 있었어. 요가를 하다 말고 여기까지만 하자며 중간에 끝낸 적도 많거든. 같은 동네에 살게 된 20년 지기 친구랑은 거의 매일 우리 집에서 같이 요가를 했는데, 친구가 두 달 만에 손목에 무리가 와서 더 이상 못하겠다고 포기하는 일도 있었어. 이 친구가 포기하고 나서는 내가 너무 많이 욕심을 냈나 싶더라. 원래 운동을 좋아하던 친구였고 요가를 잘 하는 것 같으니까 내가 자꾸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무리하게 시켰나 봐. 주변 사람들이 몸이 조금이라도 안 좋다고 하면 요가를 추천하게 되고, 해보고 싶다고 하면 우리 집에 와서 같이 하자고 하고.. 아무래도 내가 너무 강요한 것 같아. 


내가 너무 좋아하는 거라도 남에게 전파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이 내 경험에 완전히 공감하게 만드는 것도 힘들고. 

지홍: 응 그런가 봐. 이제는 내 욕심에 그러진 말아야겠다고 다짐해. 근데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나한테도 에너지가 많이 쓰이는 일인데, 몇 번 경험해 보니까 사람들을 요가에 빠지게 하는 게 참 쉽지 않네. 난 사실 이미 예쁘고 날씬한 그런 사람들 말고, 내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요가 수업을 하고 싶어. 우리 엄마 같은 사람, 사고 후유증을 앓고 있는 내 동생 같은 사람, 허리 디스크로 엄청 고생해 본 적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데… 어디 가서 만나야 할지 모르니까 거기서 오는 갈증이 있어.


한번 해보고 싶은 사람을 찾는 건 비교적 쉽지만, 해보고서 정말 좋다고 느끼는 사람, 그리고 그걸 너처럼 평생의 운동으로 가져가겠다는 사람을 만나는 건 정말 희박한 확률인 것 같아. 내가 책 한 권을 읽고 이 책이 좋았다고 인스타에 올렸다고 쳐. 그걸 보고 ‘좋아요’를 누르기는 쉽지만, 읽어봐야겠다고 댓글을 남기는 것까지도 가능하지만, 그걸 실제로 읽게 되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 그럴 때마다 그냥 더 열심히 자주 떠들어서 이 작은 확률에나마 걸리는 누군가가 있길 바라게 되는 것 같아.    
지홍: 그래서 요가 강사가 되고 싶어도 막막하기만 한데, 요즘엔 회사에서 시작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그것도 너무 행복할 것 같아. 지금은 호텔공급팀(*지홍이는 하나투어에서 근무한다)에 있지만 어차피 이곳에서 계속 일할 거라면 또 다른 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전에 골프팀 팀장으로 일하는 동기 오빠를 만났는데, 코로나 전에 기획했다가 중단되고 다시 준비하려는 여행 상품이 있대. 간단하게 말하면 골프 치고 나서 요가로 마무리하는 프로그램. 그래서 나 좀 투어 인솔자로 써주면 안 되냐고 했지. 니가 왜?라는 표정이길래 내 인스타를 보여줬어. 오빠가 아직은 상품 오픈 전이니까 일단 자격증 따고 얘기하자는데, 이미 내 심장이 터질 것 같더라. 어떤 길이 펼쳐질지 모르는 거잖아! 나 이거 진짜 해보고 싶으니까 자격증 따고 다시 얘기하자고, 오빠는 그 팀에 오래 있으라고 했어. 그때까지 골프도 잘 쳐서 꼭 기회가 오면 좋겠네. 심장이 두근대서 그날은 잠도 못 잤다니까.  


상상만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그런 일이구나!    

지홍: 응응, 하고 싶은 게 생기니까 내가 거기에 딱 맞는 프로그램을 짜서 가겠다는 마음. <니 꿈은 뭐이가?>라는 그림책이 있거든. 독립운동을 하던 여성이자, 조종사가 되려고 중국으로 간 실존 인물의 얘기야. 예전에 재인이(첫째)에게 매일 그 책을 읽어주면서 사람은 꿈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는데, 어느 날은 재인이가 엄마 꿈은 뭐냐고 묻더라. ‘나? 나는 꿈이 없는데, 그냥 니 엄마지…’ 라고 대답하고선 마음이 복잡해졌어. 내 꿈이 뭐지? 젊은 것 같으면서도 나이 든 것 같고, 새로운 걸 시작하기에는 늦은 것 같고, 아무것도 아닌 나 자신이 너무 두렵고. 그렇다고 무언가에 빠지거나 호기심을 가진 적도 없고. 그랬던 내가 이젠 요가로 진짜 무엇을 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본업의 형태든 부업의 형태든 다양한 방향으로 고민해보고 있어? 

지홍: 이번에 요가 자격증 코스를 들을 때나 지난번 특강을 들으면서 계속 든 생각이 있는데, 이미 본업이 있는데 요가를 시작한 사람들은 다들 나하고 느낌이 비슷해. 요가를 전업으로 고려하고 있는 사람들보다 덜 열심히 한다는 뜻은 아니고, 양쪽을 다 잘 해내고 싶어 하는 욕심 사이에서 밸런스를 찾고 있달까. 그게 멋있어 보여. 내가 회사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시간을 쪼개서 요가를 즐기는 걸지도 몰라. 작년 휴직 기간에도 강사 자격증은 딸 수 있었는데 이 핑계 저 핑계로 따지 않았던 건 어쩌면 덜 바빠서야. 그러니까 본업을 놓기가 더욱 싫어져.  


나도 그쪽이긴 해. 요즘엔 본업을 가지고 여러 가지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들도 많잖아. 회사처럼 나한테 돈을 제일 많이 벌어주는 일이 있다면, 돈은 안 되지만 더 열망하는 일을 사이드 프로젝트로 하는 거지. 굳이 한 쪽을 버리는 것보다 일단 A를 끼고 B를 시도해 보자 하는 것. 니 말대로 그게 더 안정감이 있고, 두 가지 정체성을 믹스했을 때 오는 시너지도 있는 것 같아. 너를 알릴 때도 그냥 요가 강사보다는 ‘이런 이런 여행 콘텐츠를 기획하는 요가 강사’로 설명하면 더 좋지 않을까. 시장에서 잘 팔리느냐를 떠나서, 동아줄 하나만 가지고 있느라 절실해져서 시야가 좁아지는 일도 줄어들 것 같아.

지홍: 나도 그런 게 느껴졌어. 주변에서 ‘너는 회사가 망해도 요가로 돈 벌면 되잖아’라고 쉽게 생각하는 데 그건 아니야. 회사가 무너졌을 때 나는 그만큼의 상실감이 없겠어?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요가를 할 것 같은 이미지처럼 보일까 봐 고민이 되기도 해. 그래서 너무 좋아하지만, 인스타에도 그만 올려야 하나 싶기도 하고.  


사람들이 아직 그렇게 살 수 있는 샘플을 많이 못 봐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 예를 들면 ‘저 사람 B로 되게 유명한 사람인데, 알고 보니 A라는 직업이 있네. B는 알고 보면 크게 돈벌이는 안되는데 본인이 즐거워서 하는 거고, 사실 경제적으론 좀 더 안정적이고 단단한 직업이 따로 있더라’ 하는 거. 난 그래서 시간과 체력만 허락된다면 둘 다 가져가는 게 좋은 것 같아. 어떤 사람들은 시간 쪼개 B를 하기 때문에 A를 할 에너지도 얻는 거라고 하더라. 

지홍: 그 말 들으니까 갑자기 기분이 되게 좋다. 시간 쪼개기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집에서 스마트폰만 안 봐도 가능하긴 해. 폰 보다가 2시에 잠드는 거랑 12시부터 2시까지 요가하고 인스타에 영상 올리고 잠자는 거랑, 잠들 때의 개운함이 달라. 내일 아침에 눈 떴을 때 살아갈 에너지를 오늘의 요가 수련으로 받는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 그렇게 생각하니까 내 2년이 더욱 소중하네. 내 나이 마흔에야 놓치기 싫은 무언가가 생겼어. 


<끝>


대화 도중에 지홍이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아주 많이 썼다. 그러다가도 더없이 행복한 지금을 불안해하기도 했다. 그동안 나는 지홍이가 이뤄낸 지금의 평화가 저절로 얻어졌다고 오해하기도 한 것 같다. 육아를 전담해 주시는 부모님, 단짝같이 사이좋은 남편,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 그게 얼마나 치열한 노력 끝에 얻어낸 것인지, 그래서 얼마나 더 지켜내고 싶은 것인지는 인스타그램을 벗어나 얼굴을 마주하고서야 알게 된 이야기다. 


대화를 나누고 한 계절이 지난 지금도 그 행복은 계속되고 있을까? 만약 아니더라도, 중요한 건 괴로운 상황에서도 결국 평화를 찾을 수 있는 힘이 그에겐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닐까? 앞으로 지홍이가 좋아하는 것들이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길 바라며.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 전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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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 김지홍 (인스타그램 ID: @jazz486j)

인터뷰: 오주미 (인스타그램 ID: @fayetree)

대화 시기: 2021년 9월

사진 제공: 김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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