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언어를 관찰하는 사람, 최수근
쑥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이해해 줄 것 같은 사람을 나의 첫 인터뷰이로 만나 매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어학당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수근 오빠를 지난 8월 말에 만났다. 우리는 2004년 심리학 전공 수업에서 같은 조별 과제를 맡은 인연으로 처음 알게 된 사이. 한 학기 동안 아주 많은 시간의 토론이 오고 간 과제였는데, 그 누구의 기분도 상하지 않도록 조심히 언어를 고르던 오빠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다 몇 년 전에는 노조를 설립하고, 연세대 한국어학당 지부장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말을 고르고 또 고르던 사람이 투쟁의 최전방에 서는 매일의 기분은 어떨까? 내가 알던 최수근이라는 사람에겐 힘든 과제가 아닐까 추측했고, 실제로 꽤 지쳐 보이기도 했다. 때로는 말하는 법도 잊고 고요히 살고 싶다면서. 하지만 이 대화에는 조용한 웃음도 많이 오갔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ㅎㅎㅎ’로 표기된 오빠 웃음소리의 실제 사운드는 ‘흠흠흠’에 가까웠다는 걸 상상하며 읽어주면 더 좋겠다. 그 웃음소리가 아주 다정했다는 것도. 사뭇 진지한 대화 속에서도 가끔 개구쟁이 같은 눈빛을 보였다는 것도.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
01 엄격하게 때로는 유연하게, 언어를 탐구하는 마음으로
02 언어는 흔해서 전문성을 인정받기 어렵구나
03 엄마 아빠는 내 나이 때 뭐 했을까?
(이 대화를 끝까지 읽기 위해 5분의 시간을 내어주세요.)
우선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마워요. ‘인터뷰’ 하면 또 우리가 학생 때 같이 진행했던 인터뷰 과제를 얘기 안 할 수 없네요.
수근: 하하 그때 기억해. 지금은 이렇게 니가 나를 인터뷰하고 있다니 신기하다. 그 수업이 <성인발달과 생애설계>였지?
<생애설계와 성인발달>이요. 우리가 자주 만난 건 아니다 보니, 그 수업이 더더욱 오빠와 나 사이의 대표 기억 중 하나로 남은 것 같아요. 수업 자체도 인상적이었고요. 생각난 김에 며칠 전에 학교 포털 사이트를 들어가 봤는데, 요즘엔 전공 수업들이 100% 비대면으로 전환됐더라구요.
수근: 실제로 캠퍼스가 많이 썰렁해. 오늘은 그나마 졸업식이 있어서 사람이 좀 많은 편이었고, 평소엔 하루 종일 동료 어학당 선생님도 거의 못 보는 날이 많아. 되게 적막해.
어학당도 이제 비대면으로 수업하나요?
수근: 응, 교환학생들을 제외한 일반 어학당 수업은 전부 줌(Zoom)으로 진행해. 보통 학교라 하면 수업이 중요하다 생각하고 선생님이라 하면 수업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되지만, 요즘은 새삼스럽게 ‘학교에선 쉬는 시간이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나와서 서로 잡담하는 거, 그게 어쩌면 학교의 기능인지도 모르겠다.
어학당 수업을 Zoom으로 진행하다니 충격적이긴 하네요.
맞아, 발음 교육 같은 것도 잘 안되고 아쉬운 게 너무 많아.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바뀌겠죠? 굳이 한국에 오지 않고도 들을 수 있는 온라인 클래스의 느낌으로? 나는 ‘한국에 있는 OO대학교 어학당의 온라인 클래스를 신청해야겠다’ 이런 식으로요.
수근: 음… 쉬는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말했지만 관건은 그거 같아. Zoom으로 온라인 수업할 때의 가장 큰 불안함은 학생들이 이걸 유튜브 채널로 느낀다는 거야. 소통을 하지 않고 방송 보듯이 듣는 것 같더라고. 특히 어학당은 선생님과의 대화도 중요하지만 파트너와의 대화도 중요하거든. 나는 한국인이니까 학생들의 한국어 발음이 틀려도 대부분 알아듣지만, 옆자리의 파트너 학생에겐 발음을 정확하게 안 하면 못 알아들으니까 그걸 위해서라도 서로 정확하게 말하려고 하게 돼. 근데 온라인 수업에서는 그런 서로 간의 소통이 많지 않으니까…
구조적으로도 힘들겠네요. 1:1로 짝지어 연습하는 시간을 Zoom으로는 줄 수 없으니까.
수근: 맞아, 교실이라면 내가 가만히 대화를 지켜보다가 ‘저쪽에서 잘 진행이 안되고 있구나’ 하고 바로 들어가면 되는데, 방송에서 다 같이 이야기한다는 건 잡음이잖아. 그게 학생들을 수동적으로 만들기 쉽지. 그래서 앞으로 학생들과의 소통을 활발하게 할 수 있는 방안이나, 커뮤니티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댓글로라도 소통을 하거나 말이지. 더 나아가 보면, 말과 글의 경계가 무너지니 그럼 앞으로 말과 글, 말하기와 쓰기를 명확하게 나누는 방식의 교육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돼.
좀 더 설명한다면요?
수근: 예를 들면 ‘채팅’. 그런 거 재밌지 않아? 글로 대화하는 데 왜 채팅이라고 할까?
카톡을 하면서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수근: 응 그런 거. 그런 말과 글의 경계가 불분명한 소통이 점점 늘어나는 것에 대응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온라인 상의 소통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온라인 상의 한국어 사용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그런 연구가 없어서 아쉽다는 생각이야.
언어학 전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디지털 시대의 말과 글에 대한 연구가 이미 이뤄지고 있지 않을까요?
수근: 한국어에선 아직 화용언어(실제로 상황에 맞게 사용하는 언어)에 대한 연구가 약하고, 어휘나 문법에 대한 연구만 많아서 균형이 좀 안 맞는다고 할까.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한국어 교육처럼 실용언어 쪽에 나와 있기 때문일 거야. 실제 어학 연구에서는 훨씬 더 순정한 언어를 다루는 느낌이 있어. 국어학 연구자들에겐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문장이라도 그 문법을 정확하게 표현해 줄 수 있는 문장이면 좋은 문장이거든. 반면에 현장의 한국어 강사들에겐 용도가 불확실한 문장은 아무 의미 없는 문장이야. 관점의 차이가 많지.
생각해보니 방금 얘기했던 주제들은 국문학과 보다 커뮤니케이션학과 같은 실용 학문에서 더 관심 있게 연구할 수도 있겠어요.
수근: 아마 그럴 수도 있겠다.
참, 요즘엔 신방과라는 학과명이 거의 사라졌던데요? 다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어쩌고 하는 이름으로 바뀌었더라구요. 제가 일하고 있는 분야도 ‘커뮤니케이션’ 업계라 그쪽 전공들이 주를 이루고 있기도 하고요.
수근: 일은 잘 맞아?
계속 의미부여하고 있어요. 돌아 돌아서 여기까지 오게 되니까 그래도 내가 꽤 하는구나? 이 일이 꽤 맞는구나? 하는 생각. 그동안 ‘홍보인’, ‘PR인’ 이런 단어로 내가 정의될 때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는데, 바로 전 직장에서는 우리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라는 말을 많이 썼거든요. 거기에 좋은 의미로 세뇌가 됐달까? 그렇게 내가 하는 일에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한 후로는 그동안의 직장 경력들이 모두 관통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느 날엔, 심리학과 중어중문학이라는 상관없어 보이는 이중전공도 결국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고자 하는 개인적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번쩍 떠올랐고요.
수근: 스티브 잡스가 말한 ‘점을 연결한다(Connecting the dots)’라는 얘기가 떠오른다ㅎㅎ
오빠는 대학원까지 다닌 후에 한국어 강사를 하게 됐나요?
수근: 석사로 고전문학을 전공하다가 그만두고 한국어 교육으로 옮겼어. 석사 하는 동안에도 한국어 교육에 대한 생각이 있었는데, 나도 한국어 교육이란 틀 안에 있고 싶진 않고 사실 변두리에서 어울리고 싶었거든. 그런데 한국어학적인 베이스가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다 보니… 공부는 너무 재미있었지만 이 일이 이 정도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면 안 될 것 같았어. 인생을 걸어야 하는 일인 것 같더라고. 그래서 석사를 그만뒀지. 지금도 한문 고전 보는 걸 좋아하고 시간 있을 때 취미 삼아 번역도 하지만, 흥미가 있으면 빨리 옮기는 게 낫겠다 싶었어.
일은 잘 맞아요?
수근: 지금도 내 천직이라는 건 아니고, 나라는 사람과 그래도 교집합이 좀 있구나 정도의 느낌. 학생들도 좋아하고, 재미있긴 해. 한국어 교육학의 관심이 국어학보다 좀 더 외부로 향해 있다고 한 것처럼, 지금 나는 교육학 안에서도 조금 더 외부에 관심이 많아. 예를 들면 ‘언어 교육 기관의 건물 구조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같은 것들에 대해선 아무도 관심 없는 거 같거든. 학위 논문 썼을 때도 지도 교수님은 ‘쓰읍- 근데 이런 걸 왜 하는 거지?’하는 반응이었지ㅎㅎㅎ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고민을 많이 하네요.
수근: 현실적인 고민… 그렇지. 학생들이 현실을 살아가게 하는 거. 그리고 그게 이 직업의 제일 큰 장점이기도 해. 내 수업을 듣기 전에는 식당에서 밥을 주문하지 못했는데 수업을 듣고 나서는 밥을 사 먹을 수 있다! 지하철을 잘못 타지 않을 수 있다! 굉장히 실용적인 거지. 그게 더 맞는 것 같고, 재밌어.
사실 오빠는 좀 더 이상주의자 쪽일 거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비교 대상에 따라 상대적인 거긴 하지만요.
수근: 그렇구나. 인간에 대해서는 이상주의적인 게 좀 있었고, 언어에 대해선 타협 가능한 면이 아주 많은 것 같아. 바람직한 문장은 말하는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니라 말하는 사람과 상대방 사이에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 예를 들어 내가 문법에 맞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이라고 말하면 학생들은 혼란스러워해. 주어가 두 개라고 생각하니까. 특히 영어권 학생들에겐 ‘나의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이라는 표현이 더 편할 거야. 그럼 뭘 쓰는 게 좋을까 고민하게 되는데, 국어학자들이 보기엔 전자가 맞지. 하지만 교육에는 정답이 없어. 한국어 선생님들은 때에 따라 후자로 얘기해야 할 때도 있어. 예를 들어 그 반 학생들이 전부 다 영어권 학생들이라면, 나라면 처음에는 ‘나의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으로 가르치고 넘어가고, 나중에 학생들이 관련된 표현이나 문법 요소들을 배우고 나면 그때부터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으로 가르칠 거야. 그 다음에 그 학생이 입학원서를 써야 한다면 난 또 ‘나의’를 ‘내가’로 고쳐주겠지. 그때그때마다 다르고, 뭐가 맞다고 주입시키는 직업이 아니게 돼. 언제 무슨 필요로 하는 말이니? 어떤 상황이니? 하나하나 다 물어봐야 되고… 그런 고민들을 하는 직업이야.
제가 아까 직업에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키워드를 뒤늦게 찾았다고 했는데, 오빠에겐 전공도, 취미도, 직업에서도 처음부터 ‘언어’라는 키워드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수근: 음… 내 평생의 숙제인 것 같아. 세상을 언어로 바라보는 성향이 있고, 그래서 지금도 언어를 다루는 일을 하고 있고. 사람들을 볼 때도 ‘왜 저 사람은 저런 언어를 사용할까?’에 관심이 많아. 내가 언어에 대해서 갖고 있는 생각을 알면 나에 대해서 많이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고. 지금 하는 일도 그렇고, 취미로 번역을 하기도 하고, 앞으로도 나는 계속 언어 관련된 일을 할 것 같아. 하지만 아무래도 난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사람은 아닐 것 같아.
저도 그래요ㅎㅎ 잘 하고 싶어하는 사람일 뿐이죠.
수근: 그래? 잘 하는 법을 찾았어?
아니요. 그냥 잘 되면 잘 되는 데서 오는 희열을 좋아하는 사람. 대부분은 실패하고요.
수근: 아, 커뮤니케이션이 잘 됐을 때 오는 희열을? 재밌는 말이다.
오빠에게 세상이나 사람을 바라보는 필터가 언어라면, 난 주로 ‘왜 이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이해하기 어렵게 전달할까’, ‘이 사람은 굳이 말을 왜 이렇게 해야 할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런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고민이 언어와 겹치는 부분도 있네요. 어떤 언어를 쓸 것인가는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할 것인가에 포함되니까요.
수근: 그렇구나. 난 어떻게 하면 더 좋을까 고민하기보다는… 언어를 하나의 현상으로 보고 탐구하는 쪽인 것 같아. 소설 속 탐정이 이 현상이 뭘 의미하는지 추리하는 것처럼, ‘이런 언어를 쓰는 걸 보니 이 사람은 이런 이런 경험을 했구만!’ 하는 거지. 그런 걸 탐구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 그런 점에서 많이 이상적인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라서 실용적이지만 동시에 이상적인 그런걸까? 그리고 난 소통을 잘 못한다는 게 콤플렉스여서, 나의 소통 방식에 대해서도 좀 객관적으로 고민할 수 있길 바라는 것 같아. 예전부터.
언어에 대해 제가 또 하나 기억하는 건, 아마 우리가 아직 대학생이었을 때 오빠에게 들었던 말일 거예요. 오빠가 자신에게 말을 좀 더듬는 버릇이 있다고 말하면서 ‘사람이 말을 더듬는 이유가 뭔지 아니?’라고 물어봤었는데 아직 그 얘기 기억해요?
수근: 맞아, 내가 그런 얘기 했을 거야. 왠지 부끄럽다.ㅎㅎ
정확한 표현은 기억 안 나지만 ‘좀 더 완벽하게 말하고 싶어서’라고 말했던 거 같아요. 생각과 말 사이의 속도 차이가 있어서, 생각의 속도보다 반 박자 빠르게 내뱉고 나서 완벽하게 말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 얘기하다 보니 그게 말을 더듬는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얘기였던 것 같아요. 제가 요즘 영어로 말할 때 반박자 늦게 정확한 단어가 떠올라서 그런 식으로 말을 더듬는 게 느껴지거든요. 그 상황에서 오빠 얘기가 갑자기 생각나더라구요.
수근: 응, 말하고 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었다’라는 생각이 바로 들어. 그건 늘 따라다니는 감정인 것 같아. 그렇다고 다시 말하면 잘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닌데ㅎㅎ 시간이 더 많이 주어진다고 더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뭔가 늘 충분히 말해지지 않았다는 마음이 남아 있어.
그래도 계속 말을 하는 직업이라서 스스로 훈련되는 느낌을 받진 않나요? 10년 이상 해온 일이니까?
수근: 한국사람들하고 대화할 때 좀 힘들지, 학생들 앞에선 오히려 편해. 왜냐면 학생들하고 대화할 때는 진짜 머릿속에서 글을 쓰면서 말을 하니까. ‘이 말은 학생들이 아직 안 배웠지’ 그런 게 속으로 충분히 정리되어야 하거든.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말하는 방식이라니, 한국어를 마치 외국어 말하듯 하네요.
수근: 그래서 나는 모국어가 없는 느낌이 들어. 계속 보여줘야 하는 직업인데, 지난 10년 동안도 그랬고 내가 뭘 못하는지 매 순간 확인하며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내 콤플렉스가 직업이 되고 있는 셈이지. 이런 방식으로도 직업을 선택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 그래서 학생들도 말을 더듬을 때가 있을 거 아냐, 그럼 가슴이 덜컹덜컹 내려앉아. ‘아 나를 따라 해서 이렇게 됐구나’ 걱정하면서 되게 미안해져.
제가 이제 좀 훈련이 되지 않았냐고 물어본 건, 몇 년 전에 만났을 때도 얘기했지만 대학생 때와 달리 이미 한국어 강사로 오래 일한 그때의 오빠가 엄청 청산유수처럼 말해서 놀라서였다니까요?
수근: 하하하 그런 점에서 나 자신과 좀 화해했다고 할까? 이제는 스트레스가 좀 적어졌지.
콤플렉스임에도 좋아하는 부분이 더 커서 계속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콤플렉스를 돌파하는 것에 더 집중하다 보니까 그런 걸까요?
수근: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잘 하는 것을 선택한 건 아니니까 사람들에게 내 능력이나 실적을 인정받는 데 큰 관심이 있진 않아. 오히려 어쩌면 학생들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좀 더 인내심 있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말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지. 하면서 확실히 나아지는 것도 있고.
근데 노조 일을 하다 보니까 이건 또 다른 언어 사용이 필요하더라...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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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엄격하게 때로는 유연하게, 언어를 탐구하는 마음으로 (현재글)
02 언어는 흔해서 전문성을 인정받기 어렵구나 (다음글)
인터뷰이: 최수근 (인스타그램 ID: @sukunch)
인터뷰: 오주미 (인스타그램 ID: @fayetree)
대화 시기: 2021년 8월
사진 제공: 최수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