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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May 02. 2016

잃어버린 설레임

                                                                                                                                                                                                                                                                                                                 

소정은 35세 싱글녀.

외국에서 명문대를 졸업하고 7년전 한국에 들어와

외국계 회사에서 고액연봉에 일을 하고 있는 골드미스. 

그녀는 수많은 남자를 만나본 경험이 있고

눈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제 나이가 슬슬 압박해오긴 하지만

별볼일 없는 남자와 결혼해서 애 낳고 집안일 하며 사느니

이대로 일 하고. 돈 벌고. 자유롭게 여행가고.

술 마시고. 운동하고. 취미생활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여유롭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그녀는 소위 돈 많은 남자. 잘생긴 남자. 자상한 남자.

철없는 남자. 집안 좋은 남자 등

다양한 남자를 만나보았지만 "이 사람이다!!" 싶은 사람을 

만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런 소정을 두고 친구들은

너무 이상주의자라며. 완벽한걸 바란다며.

혼자 늙어죽기 딱 좋은 눈 높은 공주타입이라 했다.

소정은 특유의 자신감으로 별로 귀담아듣지 않았고

- 세상엔 내가 혹할만큼 매력적인 남자가 없나봐-라며

시크하게 말했다.

 

그녀는 왠만한 남자경험이 있다보니 

애지간한 남자를 만나도 별 감흥이 없는 여자였다.

"남자는 다 애야!!" "남자 다 똑같아. 별거 있니"

이러한 말을 자주 했던 그녀. 

잘생긴 남자는 잘생긴대로 별로.

돈많은 남자는 돈많은대로 문제.

못생기고 돈없는 남자는 그런대로 재앙.이라고 하며

남자에 있어 초월한 듯한 그녀.

 

아마

본인도 한 수 위의 입장에서 남자를 핸들링하려고만 하고

남자들도 본인을 어렵게 대하다 끝나는 경우가 일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소정은 이전 직장 동료를 만나러 압구정에 있는 레스토랑에 갔다.

그 레스토랑은 소정이 이전에도 몇 번 갔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날따라 유독 눈에 띄는 한 남자가 있었다.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는 한 웨이터.

그 웨이터가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웨이터는 180cm의 훤칠한 키에 

아주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눈매가 매력있고

보디가 매끈하게 잘 빠진 남자였다.

 

뭐 주문하지 않을까 해서 쳐다보는 거겠지..했는데

좀 느낌이 다르다.

촉이라는 게 느껴진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게 벌써 3번째다. 

이쪽 테이블 담당도 아닌 거 같은데 괜히 이쪽을 왔다갔다

하는 느낌이 분명 든다.

 

'착각인가.. 근데 좀 귀여운거 같기도 하고..

 눈 몇번 마주친거 가지고 착각하면 개쪽 팔린데..'

 

여튼 그날 나쁘지 않은 느낌을 가지고 온 소정.

우연인지 의도인지

2주 뒤 그녀는 다른 친구와 또 한번 그 레스토랑에 갔다.

이번에도 그 웨이터가 있었고,

왠지 이번에는 그녀가 더 의식을 하고 있었다.

 

'나 왜이러지. 말도 안되게 웨이터를 의식하고 있어.

 별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미쳤어 미쳤어'

 

혼자 생쇼라고 생각하며 친구와 두런두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 웨이터가 다가왔다.

"더 필요한 건 없으세요?"

 

싱긋 웃으면서 말하는 그 남자.

 

"아..네. 괜찮습니다. 고마워요"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보니,                                      

분명한건 그 테이블의 담당 웨이터는 따로 있었다는 것.

하지만 이것만으로 그가 소정에게 그린라이트라고 하기엔

턱도 없이 근거가 부족하다.

 

소정은 또 한번 이상한 촉을 느꼈다.

분명히 뭔가 있는데..뭔가 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자신만의 이상한 촉을 느낀 그녀는 계속 그 웨이터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더니 급기야 집에 가서 레스토랑 홈페이지를 뒤져

웨이터의 이름을 알아내고,

페이스북도 찾아 내었다.

몇 개 올라와있는 그의 사진과 글들.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몇살이지 그 사람...

정보에는 안나와있다. 

친구들 페북을 들어가 알아낸 건 20대 후반인 그의 나이.켁-

어리구나...

왠지 모를 실망감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날에도 다시 그의 페북에 들어가

그의 모든 사진과 글. 남들이 남긴 댓글까지 꼼꼼히 보았다.

나이도 7살이나 차이나는데...

만약에. 아주 만약에 얘랑 잘되면 어떨까.

 

이후 소정은 약속이 잡힐 때마다 그 레스토랑엘 갔고

심지어 다른 남자를 데려가 그의 반응을 살피곤 했다.

소정의 생각인지 몰라도 남자와 갈 때면 그 웨이터는 근처에 얼씬하지도 않았다.

여자친구와 갈때면 또 다정하게 와서 말을 걸곤했지만

이렇다할 진전은 없었다.

 

몇일동안 그에 대한 생각이 잊혀지질 않던 소정은

어느 순간 소정은 느꼈다.

자신의 모습이 미쳐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알지도 못하는 한 웨이터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이건 왠 미저리같은 시츄에이션이야....'

 

예쁘고 똑똑하고 잘난 엘리트 여성인 그녀가 

평범한 레스토랑의 한 웨이터에 대한 생각을

멈출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서로 눈만 몇번 마주친 그 웨이터와의 이상한 기류와 촉은

그녀에게 이 정도의 강박을 보여줄 정도로 강했던 것일까.

그녀와 그는 뭔가 모를 운명적 끌림이 있었던걸까

아니면 그녀의 깊숙한 고독이 망상을 만들어낸 것일까.

이성적으로 케미가 분명 있는데 뭔가 드라마틱한 연출이 안되니

그 아쉬움에 안달이 나서 이러는 것일까. 

 

어째든 그녀는 약 3주 정도 그 짓(?)을 하다가

스스로 자존심에 금이 가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 레스토랑에도 가는 것을 멈추었다.

 

소정은 그 나이 어린 웨이터에게

"여자친구 있으세요? 언제 저랑 커피한잔 하실래요?" 할 용기도 없었고

자신이 7살 어린 서비스업 종사자와 잘될 가능성은 아주 낮다고 생각하며

스스로의 집착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아직도 괜히 생각나기도 하고

스스로의 미친듯한 오바스러움에 질리지만

그래도 그녀는 나이 35살.

정말 오랜만에 풋풋한 설레임을 느낀 것만으로도 좋다고 했다.

 

나는 어쩌면...

그녀가 어떠한 관계의 정의와 종착지보다

서로 잘 모르지만 이성적으로 끌리는 상대방에게

느꼈던 찌릿찌릿한 설레임이 그리웠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30대가 되면 콩깍지들이 하나둘씩 벗겨지고

감정의 방어막이 커지면서

설레임이라는 감정을 느낀게 언제인가..싶을 정도다.

 

편하고 좋은 감정은 느낄지라도

가슴이 두근두근. 괜히 설레이는 찌릿찌릿한 기대감

나 또한 그것은 정말 느낀지 오래된 듯 하다.

 

 

 

소정은

아마도 그 호르몬의 쾌감이 너무나 강렬해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현실 속에서

자신이 만들어놓은 캐릭터와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닐까.

 

미친듯한 사이코짓이면 뭐 어떤가.

술 마신 다음날 퍼진 모습으로

TV에서 재방송하는 드라마 속 띠동갑 나이의 남자주인공을 보며

설레여하는 내 모습 보다는 낫다.

 

20대에 상대방의 싸이월드를 훔쳐보던 그 설레임으로

누군가의 페북을 뒤져보며 

그 풋풋한 설레임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면..

 

  

 

사람 일 혹시 아는가.

체념한 소정이 또 한번 그 레스토랑에 갔는데 

그 웨이터가 "저기요.. 언제 저랑 커피 한잔 하실래요?"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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