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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May 02. 2016

짝사랑

                                                                                                                                                                                                                                                                               

서로 동시에 첫 눈에 반해서

같은 속도와 같은 양만큼 서로를 좋아한다면

얼마나 속 편할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내가 좋아하고.

그냥 그렇게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물론 이러한 행운을 누리는 경우도 꽤 많지만,

대부분의 모든 관계는 그렇게 공평하고 

이상적인 상태로 시작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먼저 좋아하기 시작하고,

노력해서 내 사람으로 만드는 경우.

처음에는 짝사랑이었다가 감정을 주고 받으며

쌍방의 감정으로 발전하는 경우.

관심이 없었는데 뒤늦게 마음 문을 열게 되는 경우.

또는...

혼신의 노력을 다하지만 실패로 끝이 나는 경우.

시작은 좋지만 밀고 당기기를 하다 상처를 주는 경우.

상대방의 감정을 이용하고 즐기는 경우까지.

무수한 변수와 상황들 때문에

우리는 에너지를 소모하고 마음이 저린다.

관계의 줄다리기에서

항상 먼저 끈을 잡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에게

관심이 가고 호감이 간다고는 하지만

어떨 때는 그 어떤 노력과 깊은 감정으로도

이루어지지 못한 채 끝나는 경우도 많다.

관계의 줄다리기에서 밀당조차 못해보고

그 줄이 상대방에게 닿지도 못하는 그런 짝사랑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경우처럼 

속상하고 안타까운 일도 없다.

짝사랑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안다.

그 절실하고 애타는 마음을.

나는 얼마 전 짝사랑 중인 한 친구 <민수>를

만났다.

8개월 간 몰래 마음을 애태우는 중인 그는,

같은 회사에 다니는 여자 후배를 좋아하고 있다.

그 여자 후배는 인기가 많은 타입으로

직장 내에서도 그녀에게 추파를 던지는 

남자들이 많다고 했다.

<민수>는 다른 남자들과 같이 가볍게 작업거는

남자라는 인식을 주기도 싫고,

그녀의 감정도 모르는데 무리하게 고백을 했다가

선후배 관계조차 어색해질까 염려도 되고.

가장 중요한 건...너무 좋아하는데 거절 당했을 떄

상처가 두려워서 

그저 편하고 좋은 선배라는 가면을 쓴 채

혼자 가슴앓이를 꽤 오랫동안 했다.

그러다 어날 갑자기 그녀가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고 그는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같은 직장을 다닐 때 정도는 아니었지만

원래 친했던 지라,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그녀를 아주 가끔 만나 술 한잔은 할 수 있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했던가.

하지만 <민수>는 그녀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고 더욱 보고 싶었다.

그래서 작년 가을 초, 

선선한 바람이 찾아올 어느 무렵

그녀에게 고백을 하고 말았다.

간절했기에 대단한 용기를 발휘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전혀 예상을 못했다는 그녀는

편한 선후배로 지내고 싶다는 말과 함께

거절을 했다.

가슴은 아팠지만 민수는 

그녀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았고

단념하기로 마음 먹었다.

여기까진 그렇다 쳐.

그런데 이 여자 후배가 거절을 해놓고도

자꾸 민수에게 연락을 하는 것이다.

술에 취해 데리러 오라고 전화를 하질 않나.

주말에 영화를 보여달라고 하지 않나.

힘들 때마다 민수에게 넋두리를 하고 

상담을 했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민수는 노력했고

그녀가 부르면 언제 어디든 달려 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민수를 남자로 보질 않았고

그저 말동무, 술친구, 편한 선배로만 생각했다.

그래도 진심은 통한다는 희망을 가지고

민수는 거의 반년 동안 노력을 했다.

술 취한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기도 수차례.

그녀가 보자고 하면 원래 있던 약속도 취소하고

달려 나갔다.

어느 정도 관계가 돈독해졌다고 생각한 그는

올해 여름 또 한번 그녀에게 대쉬 했고

그녀의 대답은 "미안하다"였다.

나는 그런 민수가 미련해보이고

희망고문을 하는 여자후배가 밉상으로 보였다.

논걸 : 너 바보냐? 걔가 부르면 언

          제든지 달려나가게.

          그렇게 하니까 걔가 널 더 만만하게 

          보는 거야. 자존심도 안 상하냐고

민수 : 자존심...글쎄..

논걸 : 진짜 잘 되고 싶으면 

          너도 끊을 건 끊고 해야

          걔가 너한테 매력을 느끼지.

          인간관계는 무조건 성실하게 

          노력한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라구 이 멍충아!!

민수 : 근데...그게 잘 안돼.

           사람을 진짜 좋아하면..

           밀당이 잘 안된다구..

논걸 : 어휴 답답해. 

          그러지 말고 다른 여자를 만나보던가

민수 : ..딴 사람이 눈에 들어왔으면 

          이미 그렇게 했겠지..

논걸 : 너 정말 아직도 얘랑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거야?

민수 : 아니...

논걸 : 참내. 

          아니 그럼 왜 니 진심을 알아주지도 않는 

          그 여자한테 그렇게 에너지를 쏟냐.

          시간이 아깝다 아까워.

민수 : 그게...

          내가 이 사람이랑 

          꼭 잘되지 않더라도 말이야

          그 사람을 너무 좋아하면, 

          그냥 이 사람을 보러 나가게 돼.

          바보같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나한테 오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아니까..

          오히려 ..

          매일매일이 마치 그 사람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되거든..

          

나는 더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의 순수하고 솔직한 고백에,

그 순간 내 스스로가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공이라는 확률 없이는 

배팅을 아예 하지 않는 

게이머가 된 기분이었으니까.

민수의 말을 듣고 순간 나는

얼마전 봤던 한 웹툰의 멘트가 문득 떠올랐다.

- 난 짝사랑하는데 익숙해서 이젠 뭐,,

   그 사람이랑 잘되든 못되든 

   아무래도 괜찮다.

   그런 문제는 다 뒤로 하고

   지금은 그냥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기분 좋다...

그는 어느 때부턴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와 사귀는 일은 절대 없을거라는 것을.

하지만 민수는 그녀로부터 받는 것을

아예 포기하고

자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기로 마음 먹었고

스스로 원하는 일을 한 것이다.

이제 세상은

똑똑하게 사랑하라-

전략적으로 작업하라-

밀당은 필수고, 

사랑도 스킬이 있어야 성공한다

-라고 외치고 있다.

노하우와 경험, 전략을 담은 연애 서적이 

수없이 많고

연애 컨설턴트, 연애 코치라는 

직업까지 생겨난 판이다.

이렇게 관계의 기술과 법칙까지 넘쳐나는 마당에,

민수같이 똑똑한 친구의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감정이란 게 그렇다.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이 통제가 안되는 

그 무언가가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멈출 수 없게 한다.

바보로 만든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어느 정도 가능성이 존재할 때

자존심이 다치지 않을 정도로만

거절 당해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만

내가 손해보지 않을 정도로만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만

그렇게 사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민수의 말을 듣고보니

어쩌면 관계란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라는 경주에서,

함께 달리고 싶은 그 누군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짝사랑일지도..

함께 달리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상대방이 거절을 했다 하더라도,

평생 함께 달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좋아하는 사람이 넘어졌을 때 그 사람을 외면할 수 없고,

이기적인 마음인걸 다 알면서도 나에게 내미는 그 손을 

잡아주고 싶은 그 감정.

아주 잠시라도 달리지 않고 함께 걷고 싶었던

그 감정이 바로 민수의 마음이었나 보다.

아직도 난 민수가 안타깝고 미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미련함이

나의 비겁함보다는

좀더 사랑에 가까운 종류의 것이라는 생각은..

부정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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