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금요일 저녁
남자 후배놈을 만나 소주 한잔을 했다.
그는 30세 자동자 도매업에 종사하는 싱글남.
만나자마자 일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며
넋두리를 시작했는데
그 이야기는 남자들의 유흥문화로까지 이어졌다.
남자후배놈
: "다른 것보다 제일 힘든 건 거래처 접대하는 거야.
처음부터 가고 싶다고 말하든가.
술 이빠이 취하면 그때서야 슬슬 압박을 준다니까?
대한민국 남자들 사회생활하면서 단란주점 안 가본 사람이 어디있겠어.
가는 것까지 좋다 이거야.
여자 불러주고 술값 계산해주고 적당히 장단 맞춰주면 되잖아.
근데 내가 지네들처럼 같이 더럽게 안놀면 그걸로 뭐라 한다니까?
지네만 더럽게 놀기 죄책감 느껴지는지 나한테도 강요해요 아주."
후배놈은 수입 자동차를 B2B로 거래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종종 고객사 담당자를 단란주점과 같은 유흥업소에서
접대해야 하는 것이 염증이 난다고 했다.
나
: 니 말대로 일이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면
그냥 사무적으로 적정선까지 맞춰주면 되는거 아니야?
남자후배놈
: 그 적정선이 문제인거지. 룸에서 여자들이랑 노는 거 보면
누나 정말 까무러칠껄??
나
: 피할 수 없으면 즐겨, 그냥.
니가 지금 결혼한 것도 아니고. 여자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니가 가진 신념이나 소신이 단란주점 절대 안돼-도 아니잖아.
남자후배놈
: 남자들이라고 다 좋아하는 건 아니야.
난 정말 그런데 싫어해. 일 때문에 가는거지
나
: 왜 내 주변 남자들은 하나같이 다 그런데 싫어한다고 얘기하냐 ㅋㅋ
암튼, 넌 그런데 가는거 왜 싫어하는데?
남자후배놈
: 아, 친구들이랑 편하게 재밌게 놀러가는 거면 몰라.
일하는 사람들이랑 가면 좋겠냐?
나
: 그럼 넌 그런델 가는 거 자체를 싫어하는 게 아니네.
그런데서 니 맘대로 못 놀고 불편한 사람들 속에서
일한다고 생각하니까 싫어하는거지.
남자후배놈 : ....아C 됐어. 술이나 마셔
나 : ㅋㅋㅋ 짜식...
잘 알려져있다시피 우리나라는 유흥의 강국이다.
업계. 직종에 따라 분위기와 정서는 많이 다르겠지만
아직까지 비즈니스를 하면서 거래처에 성매매를 포함한
유흥업소에서 접대를 하는 문화는 아직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나는 다행이도 그런 문화들이 엄격하게 금지된 조직에서
줄곧 일을 해왔지만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은
표면적으로만 드러나있는 애송이들의 정보일 뿐.
어쩌면 물밑에서는 접대의 고수들이 치열하게 작업 중일지도.
밤길을 걷다보면 우리는 수많은 유흥업소에 노출된다.
바닥에는 키스방. 립까페. 립다방.
입싸방 (이 전단지를 보고 나와 내친구는 경악을 하다가 이내,
작명의 우수함을 인정했다) 등
가격 29,900원이 친절하게 적힌 전단지가 낙엽처럼 밟히고
네온사인 컬러중에 가장 야시시한 색을 뽐내는 미인촌.
술집인듯 술집아닌 술집같은 간판의 단란주점들의
다양한 이름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각설탕. 야생마. 아우라. 초원의 집 등등
그 외에도 안마. 오피. 룸싸롱. 풀싸롱. 노래빠.
이미지빠. 창녀촌까지.
(사실 난 룸싸롱과 단란의 차이도 잘 모른다.)
우리나라의 급격한 경제성장의 피로도는 이러한 다양한 곳에서
민족의 얼과 흥으로 펼쳐졌던 것일까.
이러한 즤저분하고 레벨 떨어지는 문화.
고귀한 내 삶에선 전혀 상관없는 일이야라고 생각하던
나의 순수한 20대 중반.
내 남자친구는 아닐꺼야라는 반신반의 상태를
와장창 깨버린 계기가 있었다.
남친과 대판 싸우고 삼일간 서로 연락이 없었고
남친이 집앞으로 찾아와 사과함으로써 종결된
아주 흔한 연인들의 경험을 하고 있을 적.
난 먼저 자존심을 굽혀준 남친이 고마워 맛있는 걸 잔뜩 사서
그의 집으로 갔다.
다들 그렇듯 우리는 싸우고 난 뒤라 더욱 뜨거운 밤을 보냈고
남친은 이제 한숨 돌렸다 생각했는지 곯아떨어졌다.
난 잠이 오지 않아 남친의 노트북으로 인터넷 쇼핑몰을 뒤적뒤적하고 있었는데
(당시 폰으로 문자가 오면 네이트창으로 뜨던 프로그램이 있었음)
오른쪽 하단에 네이트온 문자가 띅- 하니 뜬다.
나도 몇번 본 남친의 회사 선배로부터 왔는데
- 원석아. 어제꺼 n분의 1. 17만원.
국민 042-21-1134-***
난 유흥업소 종류별로 금액대를 잘 모르긴 했지만
액수의 정도와 나의 크레이지촉으로 알 수 있었다.
순간 눈이 돌아간 나는 남친의 지갑과 책상을 뒤졌고
허술하게도 나에 눈에 띈건 수상한 명함.
옥구슬
최미영 실장 011-***-****
업소명의 느낌과 지나치게 심플한 디자인에 느낌이 왔다.
난 떨리는 마음으로 화장실에 가서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여자 - 여보세영?
나 - 아네 안녕하세요(인사는 왜 했는지..)
저 뭐좀 알아보려고 하는데 거기가 어디죠?
(젠장 지금 생각해도 질문이 이상하다)
여자 - 네?
나 - 뭐 문의 좀 드리려고 하는데 받으신 업소가 뭐하는 곳이에요?
여자 - .....뭐땜에 그러시는데요. 어떻게 알고 전화하셨죠?
준비없이 디립다 전화를 한 나는 망할 멘트를 던졌고
결국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한 채 전화를 끊고 말았다.
부들부들 몸을 떨며 나와,
자고 있는 남친의 대가리를 발로 차 깨운 다음,
어제 어디 갔었냐고. 더러우니까 꺼지라고.
그런 곳 간 주제에 앞으로 내 몸에 손댈 생각하지도 말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난 결국 아무 얘기를 하지 않았다.
왜 그날 그렇게 넘어갔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 이상의 충격을 감당하기 힘든
내 자신을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 일은 아주 오래된 일이긴 하지만
그냥 그날 남친을 추궁해서 변명이나 거짓말이라도 들어볼걸.
그래서 상상으로 나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걸.하는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어째든 그날 사건은 '내 남자는 아닐꺼야'라는 아름다운 믿음에서
'에이 거 안가본 사람이 어딨어. 남자라면 다 가지'라는
쿨하고 냉소적인 시각으로 나를 바꾸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미리 엄청난 유산을 물려 받아
직장은 취미로 다니고
매일 밤 유흥업소에서 돈을 뿌리고 다니는 37세 완재오빠
그는 강남의 왠만한 유흥업소는 다 섭렵한 유흥의 제왕.
텐프로니 뭐니는 진작에 마스터했고
애지간한 예쁜 술집근로여성들은 다 경험해서 염증이 나는지
3년전부터는 트랜스젠더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가끔 그를 만나러 나가면 콜리무진을 타고 기다리고 있다.
또다른 유흥업소를 가기위해.
그런 그를 동네포차로 데려가 진지한 얘기를 해보면
그 누구보다 공허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섹스를 원하는 것도 아닌데
술만 마시면 집으로 가듯 선릉역에 있는 단골 토킹빠에 가서
수지언니를 찾아 시시콜콜 모든 걸 얘기하고
곯아떨어지는 52세 도희부장님.
언젠가 한번 부장님이 권유해서 함께 그 토킹빠에 간적이 있었다.
젖가슴을 훤히 오픈한 20대 중반 여성들이
쉰이 넘은 그에게 "오빠아앙~"라고 불러주는 그 한마디에
그의 얼굴에 꽃이 피는 모습을 보며...한심하다는 생각보다는
뭔가 애처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접대 때문에 호스트빠에 가본적이 딱 한번 있다.
이름이 아직도 기억난다. <분홍신>
클라이언트가 40대 중반 미혼 여성분이었고
당시 우리 회사 여자 팀장님이 접대차원이라며
나를 끌고 가 셋이 가게 되었다.
룸에 앉으니 마담(?)역할을 하는 좀 늙은 오빠가 들어와선
술과 TC(Table Charge)를 설명해준다.
이내 키가 훤칠하게 큰 남자 5명이 입장하더니
오른쪽부터 차례대로 인사를 하며 자기 소개를 한다.
"안녕하세요. 1번 훈입니다"
"안녕하세요. 2번 민입니다" .....
처음보는 광경에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 심드렁해하는 언니들의 눈치를 읽은 난
초보티를 내기 싫어 쎈 척 말했다.
"다른 세트 없어요?" (용어가 맞는지도 모른채...)
곧이어 다른 5명이 들어오더니 인사를 또 했고
도찐개찐이라는 판단이 들었던 언니들은 한명씩 골라
옆에 앉혔다.
언니들이 고르고 남은 놈들 중에 착해 보이는 놈을
골라 내옆에 앉혔는데....
이게 왠걸. 술마시는데 술잔 채워주지. 거봉 까서 입에 넣어주지.
알아서 노래 부르지 춤추지.
어찌나 편하던지.
그날 난 남자들이 여자 나오는 술집을 가는 이유를
너무 쉽게 이해해버렸다.
'그래 남자들이여. 너희들이 이래서 이토록 가는구나.
대접받고 케어받으며 편하게 술먹는 이 느낌...'
결국 그날 난 클라이언트와 남자분이 2차를 가는 모습까지 보고
팀장님을 택시에 태워보내드린뒤
집으로 와서 기절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엄마의 잔소리 폭발.
뭔 놈의 기지배가 술을 먹고 다니느냐며.
빨리 국한그릇 먹고 출근하라며.
새로운 세계에 있다가 현실로 돌아온 느낌.
그런데 난 그게 좋았다.
술 따라주고 거봉까주는 호스트의 케어보다
지끈거리는 머리에 대고 술먹지마라는 엄마의 욕이
더 평온했다.
그리고 어제 그 룸에서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딱히 화려하거나 멋있게 보이지 않았다.
그때 이후론 호스트빠를 간적이 없다.
사실 돈이 아까워 안갔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나에게도 흥청망청 쓸 돈이 생긴다면
그러한 흥의 늪에 빠져버릴지도.ㅋㅋ
다행인지 뭔지
난 평범한 직장인이며
아직까지는 평범한 수준의 순수함이 남아 있으며,
영혼이 공허한 사람과 내면의 빛이 나는 사람의 모습을
분간할 정도의 판단력은 있다고 생각한다.
2차를 나가든 안나가든
난 잘 모르겠다.
어디까지가 허용되는 수준이고 아니고도 잘 모르겠다.
그들이 이러한 곳을 가는 이유도
머리로 이해는 간다.
전 남친처럼 단순한 쾌락의 충족 때문이거나.
완재오빠처럼 쾌락의 중독 때문이거나.
도희부장님처럼 외로움 때문이거나.
후배동생놈과 나처럼 일 때문이거나.
그러나 이 모든 이유가 어째든지간에
공통점은 '초라함'이다.
하루에 수백만원을 쓰는 오빠의 모습도 초라했고
내 모습도 초라했다.
겉이 초라한게 아니라 그냥 그 무언가가 초라했다는건
분명하다.
호스트빠를 한번 경험해본
지극히 아마추어로서 언급하는 발언지만
뇌의 도파민을 위해 룸싸롱을 가든 입싸방을 가든
함부러 판단하고 싶지 않다.
단지 '남들 다 해' '남들 다 가'
'안가는 남자 없어' '요즘 여자들 다가'라는
말은 하지 말자.
유흥업소 가는게 다수결의 원칙으로 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잘 아다시피 다수결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고 말이다.
누가 남 물어봤나.
너 물어봤지.
그것만큼 초라한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