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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섭섭 Apr 22. 2016

산골 마을을 감싼 하늘의 색이 그러했고

모로코 쉐프샤우엔

나는 하얀색과 파란색 사이의 색들을 아주 좋아하는데, 이 색들은 더러워지기가 쉬워요. 그래서 내 배낭엔 회색과 검은색 사이 색의 옷만 가득하답니다.


모로코 여행의 마지막 며칠을 북부의 조그마한 마을 쉐프샤우엔에서 보냈습니다. 나는 이 마을을 정말로 사랑하였는데, 그 이유는 내가 예쁜 여자를 사랑하는 이유와 비슷합니다. 마을의 구할 이상이 하얀색과 파란색 사이의 이름 모를 수백 가지 색들로 채워져 있어서, 그 풍경이 보기에 참 좋았노라- 하였습니다.


작고 사랑스러운 산골 마을을 감싼 하늘의 색이 그러했고, 옹기종기 모인 집들의 지붕들과 벽들의 색이 그러했고, 그래서 이곳에 사이도 좋게 모여 사는 사람들의 마음의 색이 그러했습니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페인트칠을 하여 마을을 파랗고 하얗게 유지한다고 합니다.

딱 봐도 먹고 살기 어려워 뵈는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그 수고를 할까 잠깐 궁금하지만 묻진 않습니다. 세상엔 생각 같지도 않은 생각과 말 같지도 않은 말이 정말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생각 같지도 않은 생각을 하며 멍하니 파란 벽을 바라보고 서 있으니, 인상 좋은 형아가 "너도 한번 해 볼래?" 하고 붓을 쥐어 줍니다. 두 달 치의 때가 묻은 벽에, 상하로 두 번 좌우로 여덟 번 티티카카호수파란색을 칠했는데, 회색과 검은색 사이 어디쯤의 내 못난 마음도 덩달아 티티카카호수파란색이 되는 기분이었답니다.


동화 같은 마을 쉐프샤우엔에서 나는, 캐럴 대신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하는 동요를 흥얼흥얼 거리며 26살의 크리스마스를 하염없이 걸었답니다.



아프리카와 유럽 대륙 사이의 파-아란 지브롤터 해협을 배를 타고 건너는 건 내 오랜 로망 백서의 한 페이지였습니다. 76번 로망의 현실화를 목전에 두었던 어느 오후, 저-먼 곳에서 마음이 파-아란 친구 하나가 나를 보러 온다 합니다. 모로코 쉐프샤우엔에 있는 나를 보러 스페인 마드리드에 가는 저의가 무엇인지 그 하-아얀 머리통 속에 뭐가 들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으나, 나는 보물처럼 간직했던 페리 표를 가로 한번 세로 한번 찢고, 새벽같이 일어나 첫차와 첫 비행기를 타고 마드리드로 날아갑니다. 

그렇게 '날아갑니다."하고 말하고 나서 날아가는 기분이, 정말로 날아가는 기분입니다.


기류의 문제라기보다는 저가항공 기체의 문제 때문에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는데, 이마를 한쪽 손으로 누르고 남은 손으로 창문 덮개를 살짝 열어보니 글쎄, 하늘이 파-아랗고 바닷물은 더 파-아랗고 구름이 하-아얗습니다. 아름다워도 아름다워도 어쩜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요.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예요~ 겨울엔 겨울엔 하얄 거예요~"하고 기분도 좋게 흥얼중얼거리면서 오랜 친구 놈을 만나러 가는 길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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