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왔나요

국토종단하다 이혼할 뻔 06

by 두지

“네?”

“웨어 아유 프롬?”

할아버지가 다시 물었다.

“아 저희요? 여기서 살아요. 한국.”

"아니 아니. 웨어 아유 프롬!"

“아…. 이 외국 친구요? 이 친구도 저랑 한국에서 살아요. 서울.”

“에이그. 그게 아니라. 애초에 어디서 왔을 거 아냐.”


아. 외국인의 고향을 묻고 싶으셨던 건데 내가 눈치도 없이…. 근데 그게. 음…. 애초에 온 곳이라…. 그니까 고향. 더스틴의 고향….


"아이엠 프롬 엘에이."

더스틴이 말했다. 아, 그게 아니고요. 내가 말을 받았다. 할아버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사이 더스틴이 뒤에서 손을 내저었다. 아 그래…. 알았어. 아무 말 안 할게. 그냥 엘에이라고 해라.


"아! 아! 엘에이! 엘에이 알지 엘에이!"


할아버지는 더스틴이 결승전 퀴즈의 정답이라도 맞힌 양 기뻐하며 어깨를 툭 쳤다.


“여기는 뭐하는데에요?”

내가 물었다.

“쌀 도정하는 데지.”

“구경해도 돼요?”

아 그럼. 내가 물어봐줄 수 있지. 앞장서는 할아버지를 쫓아갔다. 어이 치프! 도정장 안으로 빠르게 걸어 들어간 할아버지가 외쳤다. 복잡해 보이는 커다란 기계들 사이에 서 있던 4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여기, 이 사람이 이 도정장의 치프야.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말했다.


“영어로 소개 좀 해봐. 외국 사람 왔잖아.”

할아버지가 남자에게 말했다. 이 사람 고향이 엘에이래 엘에이! 자네도 엘에이 알지? 남자가 불편한 웃음을 흘려보냈다. 왓 아유 두잉 히어? 남자가 물었다.


“국토종단해요. 철원에서, 부산까지, 가요.”


백마고지역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연습한 한국어 문장이 더스틴 입에서 띄엄띄엄, 흘러나왔다. 아이고, 멀리도 가시네. 치프가 말했다. 여기 구경 좀 시켜줘. 할아버지가 말했다. 아 구경…. 뭐…. 뭘 보여드려야 하지. 음…. 이 큰 기계는 쌀이 들어오면 무게를 쟤는 데 써요. 트럭 컴 히어. 위 웨이 라이스 히어. 치프가 한국어, 영어로 차례로 말했다. 얼마나, 톤? 더스틴이 안 되는 한국말로 천천히 물었다. 음…. 유쥬얼리…. 어 데이…. (보통 하루에….) 나는 뒤에 서서 그들의 대화를 잠자코 지켜봤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은 영어로,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은 한국어로 말하는 저…. 처절한 친절함. 저희 이걸로 배낭 무게 좀 재봐도 돼요? 내가 치프에게 물었다. 쌀 무게를 쟤는 커다란 기계 앞에는 작은 중량계가 한 대 놓여있었다. 살던 집에 체중계가 없었어서, 배낭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못 쟤보고 왔거든요. 아 그럼요. 쟤 보세요. 치프가 말했다. 더스틴이 내 배낭과 제 배낭을 차례로 올려봤다. 내 배낭 12.50kg. 더스틴 배낭 20.38kg…. 우리, 제정신이 아니구나. 이걸 들고 부산까지 걷겠다니.


“우쥬 라이크 썸 커피? (커피 한 잔 할래요?)”

치프가 물었다. 네. 캄사합니다. 더스틴이 말했다. 할아버지와 함께 치프의 사무실로 가서 믹스커피를 얻어마셨다. 달콤한 액체가 혈관에 척척 달라붙는 기분. 엘에이가 고향이라고 하길 잘했다. 끝끝내 한국에서 산다고 주장했으면 도곡장 투어도, 달콤한 믹스커피 두 잔도 없었을 거야.


download (9).jpeg 쌀 도정장 투어




"아까 왜 엘에이라고 했어? 할아버지가 어디서 왔냐고 물었을 때.”

내가 물었다. 쌀 도정장을 나와 장흥리 방향으로 걷는 중이다. 아스팔트가 깔린 좁다란 도로. 차는 한 대도 없다. 사람도 한 명 없다. 길 위엔 우리뿐이다.

“그럼 뭐라고 말해. 내가 어디서 왔는지 설명하려면 반나절이 걸리는데….”

더스틴이 말했다.


“그래도 고작 6개월 산 엘에이가 고향이라고 하는 건 너무 뻥이야.”

“그럼 이렇게 말할까? 저는 오클라호에서 태어났지만 갓난아기 때 떠났기 때문에 딱히 거기가 고향이라고 할 순 없어요. 워싱턴 주랑 사우스다코타주에서도 몇 년 살았는데, 고향이라고 부를 만한 시간 동안 살지는 않았죠. 대학교 가기 전에 스물다섯 번을 이사했거든요. 그래서 아까 수지가 말한, 서울에서 왔다는 말도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에요. 왜냐하면 제가 태어난 오클라호마에서보다 서울에서 훨씬 더 오래 살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아 알았어. 됐어. 그냥 엘에이라고 하도록 하여라.”

“거봐.”


“근데. 그렇게 스물다섯 번을 이사하며 사는 건 어떤 느낌이야?”

“미련이 없어져. 나는 한 사람하고 깊게 친해지는 타입이라 늘 베스트 프렌드가 있었는데, 그렇다고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 베스트 프렌드들을 지금에 와서 찾고 싶고…. 그런 마음은 전혀 없어. 그때의 친구는 그때의 친구니까.”

“그러면 좀 외롭지 않아? 결국에는 남는 친구가 없잖아.”

“아니. 원래 인생이라는 건 이동하고 변화하는 거잖아. 그리고 난, 이사를 자주 가서 외로운 것보다, 한 곳에 오래 있어서 답답한 게 더 커.”

“…. 이렇게 다르게 살아온 우리가 만나서 같이 사는 것도 신기하다. 난 한 동네에서 자라고 학교 다니고 생활하고 그랬잖아…. 어디로 멀리 떠나도 늘 다시 돌아왔으니까, 서울이 삶의 기준이었고.”


교환학생으로 미국 갔을 때 1년 떠나 있었던 거 말고는 서울에서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었으니까. 이번에 여행 오려고 집 정리할 때, 너는 뭐든 쉽게 잘 버렸지만 난 못 그랬잖아. 결국 짐을 네 박스나 채워 엄마 집으로 보내고…. 서울을 떠난다는 게 너와 나에겐 다른 의미였지. 너에겐 네가 거쳐온 수많은 도시들 중 한 곳을 떠나는 일이었지만, 나에겐 내가 태어나고 자란, 부모님과 친구들과 내 과거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뭍어나 있는 곳을 떠나는 일이었어. 늘 다시 돌아갔지만, 이번에는 모르니까. 이번에는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download (11).jpeg 철원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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