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걷기 여행
걷는다.
어제 한 말이 죽도록 후회될 때, 이 길이 나에게 맞지 않는 건 아닌지 의심될 때, 지인과의 관계를 정리해야 하나 고민될 때, 노쇠한 엄마 아빠가 걱정될 때, 남편이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코로나는 대체 언제 끝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다 지쳐버릴 때, 쟤는 왜 저럴까 의문스러울 때, 이만큼 살았으면 된 거 아닌가? 삶은 너무나 긴 것이 아닐까? 따위의 생각이 들 때, 이렇게까지 열심히 번뇌 속에서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까지 들 때,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을 때.
그럴 때 나는 걷는다.
땀이 잘 마르는 티셔츠를 입고. 나풀거리는 편안한 바지 혹은 레깅스를 입고. 가장 중요한, 가볍고 편안한 트레킹화를 신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걷는다. 하염없이.
집 근처 천을 따라 걷는다.
둘레길을 하염없이 걷다 산 하나를 넘어버리기도 하고.
낯선 동네로 가 골목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다 발견한, 한 번쯤 가보고 싶은 식당의 이름을 적기도 한다.
우연히 만난, 꽤 괜찮은 버스킹 공연을 들으며 공원 벤치에 한참을 앉아있기도 한다.
삶의 의욕이 충만한 강아지들을 보며, 아, 나도 개처럼 충만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어? 좀 괜찮아졌나…. 싶은 마음이 든다.
후회되는 말은 아직 남아 있지만, 이미 해 버린 말인데 어쩌겠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 길은 정말 내 길이 아닌가 싶다가도, 내 길이 아니면 어때 가다 보면 길이 되는 거지, 너무 아닌 것 같으면 그만 걸으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머릿속을 어지럽게 헤집고 다니며 마음을 괴롭히던 바늘같이 아프고 무시할 수 없는 고민이 어느새 무뎌지거나, 귀여운 강아지들을 구경하느라 잊히거나,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게 모든 고민의 해법이냐면….
에이, 그건 아니지.
다만, 고민에 리듬과 호흡이 생긴다. 한 발 두 발 걸어 나가는 두 다리 움직임에 박자에 따라, 들이쉬고 내쉬는 숨결을 따라, 고민에도 리듬과 호흡이 생긴다. 생각에 전환이 생긴다. 천을 따라 하염없이 걷다가 짓다 만 건물의 철근이 보일 때. 좁은 골목길 사이를 걷다가 거대한 도서관 건물이 보일 때. 땀을 뻘뻘 흘리며 걷다, 유리창 너머에서 얼음이 가득 든 커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이 보일 때. 덫에 걸린 것처럼 잡혀 있던 생각에서 벗어나, 보지 못했던 모퉁이 너머의 어떤 것이 희미하게 보일 때도 있다. 그리고 집중하게 된다. 걷고 걷다 보면, 내가 걷고 있다는 것도 잊을 만큼 내 생각에 푹 빠져버린다. 중요한 고민 시답잖은 고민 가릴 것 없이, 순서도 없어, 이런저런 생각에 푹 빠진다. 그렇게 푹 빠졌다가 나오면 걸러진다. 쓸데없는 고민과 그저 나 자신의 위안을 위한 고민, 그리고 정말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할 고민이.
그리고 그 무엇보다 좋은 것.
미친 듯이 걷고 나면, 술맛이 끝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