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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연 Mar 16. 2024

그날, 온 더 플래인

I just woke up in the early morning.


눈을 뜨니 생각보다 일찍 잠에서 깬 것 같다. 조금 더 잤어야 했는지, 아직도 피곤함이 느껴진다. 귀가 먹먹하고, 눈꺼풀은 무겁다.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승무원들이 분주하다. 밥시간이 다 되었나 보다.


"생선 요리와 소고기 요리, 그리고 비빔밥 준비되어 있습니다.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비빔밥으로 주세요."


그래, 기내식은 비빔밥이지. 이상하게 비행기 비빔밥은 맛이 참 좋았다. 남김없이 다 먹어치웠다.


몇 시간 뒤 승무원들은 승객들에게 작은 종이를 나누어 주었고, 이어서 전달된 종이를 기입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아마 입국 신고서와 면세품 관련 신고서던가, 그래, 그렇게 두 장이었던 것 같다. 배 터지도록 기내식을 먹고 또다시 졸음이 몰려오는 와중에 상당히 귀찮았지만, 다시 한번 나오는 안내 방송을 듣고는 꾸역꾸역 기입했다.


정신이 멍- 한 상태로 한두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볼 만한 영화는 이미 다 봤고 (한 다섯 편쯤), 이제 뭘 해야 할지... 역시나, 13시간을 훌쩍 넘기는 비행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기장의 방송이 나왔는데도 나는 정신을 아직 차릴 수가 없었다. 귀도 막힌 듯 아프고 살짝 어지러운 듯 멍-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비행기가 몇 분간 흔들거렸다. 기분 나쁘게 덜컹 거리는 비행기 때문인지 귀가 또다시 멍- 해지더니, 비행기가 하강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 그렇구나. 조금 전 기장의 방송이 도착을 알리는 방송이라는 걸 깨달았다. 십 여분 지났을까? 용기를 내 창문 덮개를 열고 하강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장난감처럼 작게만 보이던 건물들이 점점 내 눈앞으로 다가왔고, 덜컹- 하면서 바퀴가 땅에 닿는 느낌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드디어 도착, 토론토 피어슨 국제공항!


신기했다. 그리고 믿어지지 않았다.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하고 짐을 찾으면서, 내 평생 그렇게 다양한 종류의 피부색들은 처음 목격했으니까. 그렇게 생소하기만 한 광경에 정신이 없는 채로 5번 게이트에 도착했다.. 게이트를 나서니 많은 사람들, 엄청나게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도착하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 저 쪽에 내 이름이 한글로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보인다. 선글라스를 끼고 계셔서 잘은 몰라도, 인상은 넉넉해 보인다. 아마도 저분이 미스터 킴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본명은 알지 못했고, 그저 미스터 킴이라는 이름만 들어 알고 있었다. 앞으로 런던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 법적인 가디언을 해 주기로 해주신 분이었다.


"캐나다에 온 걸 환영한다, 테리."


그는 웃으며 나를 맞아주었다. 아직 어색하기만 한 영어이름으로 나를 불러주며. 매우 친절하고 젠틀해 보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는 앞으로 살게 될 런던이라는 도시까지는 두 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했다. 그의 멋들어진 은색 닷지-카라반 (Dodge Caravan) 벤에 낑낑대며 가지고 온 이민 가방 두 개를 겨우 넣고 런던으로 출발했다. 그는 런던으로 가는 차 안에서 캐나다 생활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제야 실감이 나더라. 그래, 상상만 하던 캐나다에서의 생활이 드디어 시작된 거야. 그래, 그렇게 난 이곳에 도착했다.


정말 아무것도 예상되지 않았지만, 그냥 모든 게 다 잘 될 것만 같았다. 조금 피곤했는지 눈이 감겼다.






두려워하지 말고, 떠나





나는 아직도 기내식으로 나오는 비빔밥을 좋아하지만, 다른 모든 것들은 참 많이도 변했다. 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고, 나는 어제의 나와도 다르다. 열여섯 그날의 나는 지금의 나와 얼마나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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