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
나는 아직도 캐나다에서 학교 생활을 시작한 그 첫날을 잊지 못한다. 2001년 9월의 첫 번째 월요일이었다.
H. B. Beal Secondaey School
이곳이 내가 다닐 학교임은 정문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알 수 있었다. H.B. Beal은 뭐지, 사람 이름인가. 아마도 이 학교를 세운 사람의 이름이겠지,라고 정문으로 들어서며 생각했다.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단지 이 학교 건물이 공립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태어나서 그 당시까지 본 학교 건물 중 최고였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확실히 불과 몇 달 전까지 다니던 고등학교의 그것과는 달랐다.
일종의 교무실 격인 “Student Office” 에서 상담을 받으며 힐끔힐끔 주위를 스캔했다.
많이 어색하고 얼떨떨했다. 몇 달 전의 그곳과는 달리 나를 포함한 모두가 사복을 입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여자 사람이 참 많았다. 그것도 백인, 흑인, 아시아인, 라틴계 인종을 가리지 않고,
여자 사람이 참 많았다.
고백하건대, 사실 그날 내 눈에 남자 사람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말이지 남중, 남고 4년 동안 지겹게 봐 왔던 사내 녀석들을 이곳에서까지 자진해서 눈에 담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적어도 그 날 만큼은 내가 초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남녀공학에 다니게 되었다는 사실을 온전히 만끽하고 싶었다.
유학 오길 참 잘했다.
스스로를 격려했다. 미친놈. 가족들과 눈물을 흘리며 헤어진 지 불과 삼일 후 되는 날이었다. 나를 혼자 두고 떠나려니 발길이 안 떨어진다며 눈물을 훔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불현듯 떠오르는 듯했지만, 어이없게도 이미 내 머릿속 가족들과 한국에 두고 온 친구들은 천천히 사라지는 듯했다. 거참,
유학 오길 참 잘했다.
재미있는 건, 이곳에 대한 이런 긍정적인 마음이 극단적으로, 아주 극단적으로 변하게 되리라고 그날의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생각해 보면 아마도 그날이 내가 유학을 떠나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순수하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 말이다.
입학 수속을 마치고 카운슬러와 상담을 마친 나는 첫 수업을 듣게 될 반으로 올라갔다. 들었던 대로 지어진 지 몇 년 안 된 티가 나는 새 건물에 모든 게 깨끗해 보이는 학교였다. 나는 앞으로 이 학교에서, 그리고 이 나라에서 어떤 일을 겪게 될지를 상상하며 계단을 올랐다. 물론 행복한 상상이었다.
상상을 하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전혀 예상할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심지어 내일조차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이 되지를 않았다.
그래서 흥분됐고, 기대됐다.
2001년 9월 3일이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알고 살아가던 일상에서, 내일 일어날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상으로의 변화. 지루하지만 안정적인 일상에서, 다이내믹하지만 불안정한 일상으로의 변화. 나와 같은 피부색과 머리칼 색을 가진 인간들과의 일상에서, 뭐 하나 나와 같은 점이 없는 인간들과의 일상으로의 변화.
내 작은 전쟁터에서의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