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두 가지 질문을 던지는데 첫 번째는 ‘어떤 게임을 하고 있나요?’이다. 아이들이 대답하는 게임의 제목을 듣는 것만으로 요새 유행하는 게임이 어떤 것인지, 학년별로 혹은 성별에 따라 좋아하는 게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 수 있다. 아이가 게임을 여가 시간의 활용 도구로 잘 이용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도 가늠할 수 있다.
두 번째로 ‘게임은 좋은 걸까요? 나쁜 걸까요?’라는 질문이다. 물론 게임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는 걸 대부분의 아이들이 잘 알고 있다. 재미있는 건 게임의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이들보다 나쁜 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매체를 통해, 혹은 주변의 어른들을 통해 게임의 좋은 점보다 나쁜 점에 대해 훨씬 많이 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언뜻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게임의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이 먼저, 그리고 많이 떠오른다. 구체적으로 게임의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나쁜 것일까?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이 생각하는 게임의 좋은 점
게임의 장점
적당한 게임은 두뇌발달에 도움이 된다. 2013년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소와 샤리테의과대학병원이 공동으로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슈퍼마리오 64’라는 게임을 매일 30분씩 플레이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비교했고 두 달 뒤 두뇌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유의미한 연구 연구 결과를 확인했다.
2022년도에는 미국 국립 약물남용연구소(NIDA)에서 청소년뇌인지개발에 대한 연구로 최소 3시간 이상 비디오 게임을 하는 679명을 포함해 1957명의 9세와 10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단기기억과 충동 조절을 측정하는 검사를 한 결과 3시간 이상 비디오 게임을 하는 그룹이 기억력에서 훨씬 더 높은 점수를 받았고, 시각적으로 주의를 지속하는 시간과 사건에 빠르게 반응하는 능력을 측정하는 퀴즈에서도 더 좋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게임이 두뇌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많은 연구 결과가 게임을 많이 하는 게 좋다는 뜻은 결코 아니며 연구진들도 그 부분을 늘 강조한다. 중요한 건 적당한 시간, 이다.
게임은 또 협동심이나 소속감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기도 한다. 많은 아이들은 친구와 함께 팀을 이뤄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게임을 플레이한다. 공간이 달라졌을 뿐 우리가 어린 시절 운동회에서 힘을 합쳐 줄다리기를 하거나 박을 터트리면서 느꼈던 협동심이나 소속감과 다르지 않다. 게다가 팀으로 함께 플레이하고 전략을 짜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능력을 기를 수도 있다.
2019년에 시작된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블루를 겪었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코로나 확산의 억제를 위해 글로벌 게임사들과 ‘Play apart together, 떨어져 있지만 함께 즐기자’라는 슬로건으로 게임을 권장하기도 했다.
게임은 운동 능력이나 학습 효과를 높여주기도 한다. 닌텐도 위로 즐기는 스포츠 게임이나 저스트 댄스와 같은 게임물은 실내에서 가벼운 운동을 돕는다. ‘마인크래프트’, ‘로블록스’와 같은 게임은 학습 효과를 높여주기 위한 툴로 사용되기도 한다.
의료계에서도 게임 기술이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 2023년 11월, 서울대 병원 소아외과에서는 증강현실과 AR을 이용한 수술이 이뤄졌다. 직접 만질 수 없는 신체 기관을 게임기술을 이용해 접근하면 수술 시간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디지털 치료제로의 게임도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는데, 2020년도에 ‘Endeavor Rx’라는 게임을 미국 FDA에서 8~12세의 ‘ADHD’ 어린이들을 위한 치료제로 승인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치매나 우울증을 예방하는 디지털치료제의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다.
게임의 단점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생각하는 게임의 나쁜 점
현재 우리 아이들이 즐기는 게임 플랫폼의 90% 이상이 모바일과 PC 플랫폼이다. 오랜 시간 하다 보면 눈이 나빠지고 자세가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 게임의 단점으로 꼽을 때 가장 먼저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부분이다.
게임은 또 휴식시간이나 잠자는 시간을 빼앗기도 한다. 게임에 빠지면 진짜 내가 해야 할 일들은 우선순위에서 계속해서 밀리게 되기 때문이다. 성인도 조절하기가 쉽지 않은데, 아이들은 더더욱 게임 시간을 스스로 조절하고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게임과 현실을 잘 구분하지 못하게 되거나 나도 모르게 게임 속 행동을 따라 하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무분별하게 접하는 다양한 게임 콘텐츠 안에는 옳고 그른 것, 좋고 나쁜 것들이 뒤섞여 있고 자라나는 청소년 시기의 아이들이 선별되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콘텐츠를 무방비로 받아들이다 보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돈을 쓰는 게임에 빠지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게임 내 여러 콘텐츠 중 확률형 아이템, 사행심을 유발하는 과금 체계, 도박 모사류의 게임을 접하다 보면 게임을 통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될 수 있고 이는 청소년 도박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 굉장히 주의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게임의 모든 단점은 ‘게임과몰입’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게임과몰입'의 결과가 게임의 단점을 만들고, 우리가 ‘게임’하면 부정적인 느낌을 먼저 떠올리는 이유가 된다.
도대체 왜 게임은 한 번 하면 자꾸 하게 되고, 오래 하게 되고 과몰입하게 되는 걸까? 우리가 즐기는 다른 취미 생활은 '과몰입'이라는 단어를 잘 쓰지도 않을뿐더러 쓴다고 하더라도 '과몰입했다.'라는 의미를'게임'처럼 부정적으로 단정 짓지도 않는다. '과몰입'이 게임에만 인색한 이유는 책, 영화, 음악, 웹툰과 같은 콘텐츠와는 분명히 구분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책, 영화, 음악, 웹툰과 같은 콘텐츠는 창작자가 만든 완성물이고 우리는 완성물의 형태를 일방적으로 수용한다. 따라서 보기 싫고 듣기 싫은 부분은 우리의 자유 의지와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눈을 가리고 귀를 막거나 건너뛸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은 어떨까, 플레이어가 눈을 가리거나 귀를 막거나 단계를 건너뛰면 절대로 미션을 클리어할 수 없다. 플레이어는 직접 참여해야 하고 조건을 달성해야 한다. 플레이한 결과에 따라 보상이 차등적으로 주어진다. 게임에 접속하는 시점부터 로그아웃 하는 시점까지 매 순간이 촘촘한 피드백으로 짜여있다. 게임의 이러한 상호작용성은 그 어떤 콘텐츠보다 높은 몰입을 요구하며, 그만큼 플레이어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크다. 게임의 과몰입에 대한 우려가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게임 산업은 세계적으로도 그 시장이 해마다 높은 수치로 커지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는 게임과 연관되지 않은 산업을 찾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게임의 좋은 점은 취하고 나쁜 점은 멀리 할 수 있을까?
나는 어른들이 게임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하고, 더 많이 알아야 하고, 바로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이 게임을 마주할 때 장점과 단점을 분명히 구분해 스스로를 해치는 무기로 사용하지 않고, 미래를 잘 살아갈 수 있는 레어템으로 만들 수 있도록 어른들이 그걸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