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수업으로 이동 중이던 어느 오후, 나에게 수업을 맡겨준 지역 ‘게임힐링센터’ 담당자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지난주 출강했던 한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들었던 아이가 집에 돌아가 보호자에게 ‘오늘 학교에서 게임과 관련한 교육을 받았는데 하루에 30분 정도 게임을 하는 건 머리가 좋아진다고 하니, 나는 이제부터 하루에 30분씩 게임을 할 것이다!’라고 선언을 했단다.
영문을 몰랐던 보호자는 아이가 받은 교육이 어떤 교육인지, 정말 학교에서 게임에 대해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해하셨고, 정확한 내막을 알기 위해 센터로 전화를 주셨던 것이다.
앞서 짚어보았던 ‘게임의 장점’ 중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연구한 결과를 학교에서 수업 때 똑같이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준다. 그리고 반드시 덧붙이는 한 마디가 하루에 30분 정도 뇌에 적절한 자극을 주기 위해 게임을 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오늘 집에 가서 이런 이야기를 쏙 빼고 ‘게임하면 머리 좋아진대!’만 전달하면 절대로 안 돼요!!!라고 당부에 당부를 하는데도 늘 이런 소통의 오류가 발생한다.
보호자를 대상으로 하는 게임리터러시 강의를 하거나, 주변의 지인들을 만날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아이의 게임 시간이 얼마가 적당한가?’라는 질문이다.
학생들에게도 정말 많이 받는 질문이다. 그래서 내가 하루에 얼마 정도 시간은 게임을 해도 괜찮은 건지, 아이에게 게임을 하는데 얼마의 시간을 쓰도록 허락해야 하는 건지, 아이도 어른도 정확한 수치로 확인하고 싶어 한다.
어른의 시각에서 이 질문을 다르게 바꿔볼 수 있다. 오늘부터 넷플릭스에서 완결된 드라마를 정주행 하기로 했다고 치자. 하루에 몇 편을 보는 게 적당할까?라는 질문에 뭐라고 답을 할 수 있을까? 넷플릭스에서 오늘부터 완결된 드라마를 정주행 하기로 한 모든 사람은 하루에 한 편씩만 시청하는 게 정답일까? 그게 가능하긴 한 걸까?
하루에 한 편을 볼지, 두 편을 볼지, 밤을 새워 전편을 볼지, 혹은 기대를 안고 시작했는데 기대와 달라 한 편도 미처 보지 못할지는 시청하는 사람의 상황, 컨디션, 시간,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오늘부터 내가 일주일 동안 휴가라면 앉은자리에서 전편을 모두 볼 수도 있다.
매일 출근해야 하고, 하루 일과를 마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한 시간, 혹은 두 시간이라면 한 편에서 두 편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가장 가깝게 OTT 시청을 예로 들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취미를 대입해도 답은 동일하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게임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취미 생활’의 일부일 뿐이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게임을 하기에 적당한 시간 역시 ‘정해진 정답’이 없다. 아이들이 각각 처한 상황과 보호자의 가치관, 게임의 취향에 따라 모두 다르다.
그리고 게임은 특히 어떤 게임을 하느냐에 따라 플레이 시간이 천차만별이다. 3분 이내로 짧게 끝나는 게임이 있는 한편 한 번 플레이할 때마다 3~40분에서 때에 따라 그보다 더 걸리는 경우도 있다. 아이가 약속된 게임 시간을 지키지 않고, 매번 어긴다면 ‘왜 약속을 해놓고 지키지 않을까?’ 보다 ‘아이가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먼저 궁금해해야 한다.
대체로 초등학생이 하루에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보호자와 약속한 시간은 대략 30분에서 한 시간 남짓이다. 만약 아이가 매일 하루에 30분씩 게임을 할 수 있는데 그날따라 플레이가 길어져 30분이 지났다면, 그리고 보호자가 게임을 멈출 것을 강요한다면, 2시간 30분짜리 영화를 몰입해서 보고 있는데 마지막 20분을 남겨놓고 갑자기 상영관에서 나가라고 내쫓는 경우와 비슷하다.
또한, 한 판에 3~40분이 걸리는 게임은 혼자서 플레이하는 경우보다 4~5명이 팀을 이뤄 함께 경쟁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임 중간에 약속 시간이 되었다고 나 혼자 플레이를 종료해 버린다는 건 농구 경기나 축구 경기를 하다가 갑자기 혼자서 뛰쳐나가는 경우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아이들은 ‘약속된 시간이 지났잖아, 이게 컴퓨터를 꺼라, 핸드폰을 내려놓자.’라는 말에 ‘잠깐만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게임 플레이를 통해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경험을 하는지 알지 못한 채 ‘게임 시간’에만 집착한다면 결국 아이와의 소통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게임 시간에 대한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시간’은 보호자가 정하고 아이는 그저 따르기 때문이다. ‘약속’이 아니라 ‘동의를 가장한 지시’다.
‘왜 약속을 해놓고 안 지키는 거야?’라는 물음에 아이들은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원해서 한 약속이 아닌데…’ 사실 아이들은 게임을 더 하고 싶을지도, 일방적인 게임 시간에 만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이에게 주도권을 주고, 마음껏 원하는 때까지 게임을 하도록 허락해야 할까? 그건 더더욱 아니다. 게임은 몰입하기 가장 좋은 요소들로 굉장히 정교하게 짜인 집합체이다. 어른도 한 번 빠져들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게임을 아이에게 제한 없이 허락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가장 좋은 방법으로 아이와 함께 시간표를 짜 보는 것을 추천한다. 하루 일과가 대략 머릿속에 그려지는 어른과 달리 아이들은 자신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가장 규칙적인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은 바로 아이들이다.
내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구체적인 일과를 알고 있어야 하루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가 있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되고, 계획할 수 있다. 학교 가는 시간, 학원 가는 시간, 밥 먹는 시간, 숙제를 하는 시간을 포함해 가족 구성원으로서 할 수 있는 집안일이나 스스로를 돌보는 일 등을 모두 하루 일과에 넣고, 남는 시간을 확인한다. 그 시간 중 게임을 하는 시간 혹은 그 외 다른 취미 활동을 하는 시간을 나누어 넣으면 아이는 스스로 자신의 하루를 계획할 수 있다.
스스로 작성한 계획은 지킬 수 있는 동기가 되고, 계획한 대로 잘 실천한 하루는 목표한 바를 달성한 보상이 된다. 이러한 습관이 잘 만들어진다면 고학년이 되어서도 스스로 자신의 일을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고, 공부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
평일에 학원을 2~3개 정도 다니는 초등학생을 기준으로 시간표를 작성해 보면, 취침 시간을 10시 기준으로 했을 때 대략 하루에 게임을 할 수 있는 여유 시간은 1시간 정도 된다. 초등학생의 하루 게임 시간이 얼마가 적당 할까에 대한 답을 꼭 하자면 평일 1시간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시간표를 아이와 함께 작성했는데도 혹시 게임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아이가 있다면 주말에 게임을 조금 더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도 좋다.
만약 아이가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면 자유 시간이 많을 테고, 그러면 학교 다녀와서 자기 전까지 많은 시간 게임을 해도 괜찮은 걸까? 걱정이 되는 보호자도 있을 것이다. 시간표를 작성하는 과정을 동일하게 하되, 이럴 때에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을 때 모두 게임에 쓰지 않도록, 친구들과 뛰어놀거나 다른 취미 활동도 골고루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이가 게임과몰입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가장 큰 기준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게임에 할애하는가’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게임이 ‘얼마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가.’이다.
‘게임’ 말고도 좋아하고 몰입할 수 있는 다른 어떤 것을 아이와 함께 찾아가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가 하는 게임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지는 것부터가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