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물등급분류 제도
게임물에도 등급이 있다고?
아이가 신생아일 때는 엄마 젖이나 분유를 먹인다. 신생아는 이빨도 없고 소화 기관도 채 완성되지 않았으니까. 그러다 점점 자라서 돌 즈음이 되어 이가 나기 시작하고, 소화 기관이 제법 기능을 갖추게 되면 이유식을 시작한다.
이유식은 씹는 음식을 접하는 첫 번째 단계로 부드럽게 만든 음식이다. 부드러운 정도를 조절하여 밥을 먹을 수 있게 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재료 또한, 알레르기 가능성이 적고 소화가 잘 되는 재료부터 시작해 종류가 다양해진다. 신생아로 태어나서 완전한 음식을 먹기까지 각각의 발달 단계에 맞는 적절한 수준의 음식을 먹는다.
게임물에도 등급이 있다. 게임물의 등급은 게임물의 내용을 청소년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인지 아닌지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몇 가지 나이로 구분한 단계를 말한다.
발달 단계를 고려해 음식을 각각 성장 시기에 맞춰 먹는 것처럼 게임물 역시 나이에 따라 성장 단계가 다르고,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에 맞는 게임물을 플레이하는 것은 게임과몰입 예방을 위한 가장 기본적이면서 간단한 방법이다.
청소년기는 옳고 그른 것, 좋고 나쁜 것을 구분하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치관을 만들어가는 시기이다. 때문에 청소년기에 어떤 친구를 만나고,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어떤 콘텐츠를 즐기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나이에 맞지 않는 잔인하거나, 폭력적이거나, 공포스럽거나, 선정적인 게임물의 내용은 청소년이 올바른 정서와 가치관을 만들어 가는데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또한 앞서 게임은 그 어떤 매체보다 몰입이 쉽고 빠른 콘텐츠라고 했다. 나이에 맞지 않는 게임물은 계속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게 만들고 이는 게임과몰입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아이들이 스스로 등급과 기준에 대해 올바르게 알고, 나에게 맞는 게임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국내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PC, 모바일, 비디오(콘솔) 게임은 전체이용가, 12세이용가, 15세 이용가, 청소년이용불가 4가지 등급으로 구분한다.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시설(예: 오락실)을 갖추고 제공하는 아케이드 게임물의 경우 전체이용가와 청소년이용불가 두 가지 등급으로 구분한다.
게임물 등급을 연령별로 구분할 때 나이는 생일을 기준으로 한다. 따라서 12세이용가 게임물은 초등학생 6학년이 생일이 지나야 이용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15세이용가 게임물은 중학교 3학년 생일이 지나야 이용할 수 있는 게임물이다.
국내 서비스하는 모든 게임물은 시험용과 등급 분류 면제 대상인 일부 게임물(영리 추구가 아닌 공익의 목적, 순수 창작 목적으로 개발한 게임물)을 제외하고는 게임산업 진흥법에 따라 게임물등급분류를 받아야 한다.
비디오와 영상물, 영화의 경우도 비슷한 등급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영화의 경우는 ‘보호자 동반 관람제도’라고 해서 청소년관람불가 영화가 아닌 경우 보호자와 함께라면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의 경우는 보호자와 함께라도, 혹은 보호자가 허락했다고 하더라도 등급에 맞지 않는 게임물을 이용하지 않도록 권장하고 있다.
‘게임’은 내가 직접 참여해야 하고, 조건을 달성해야 하고, 참여도와 조건의 달성도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기 때문에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다른 콘텐츠와는 다른 높은 몰입도를 요구한다. 그만큼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크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에 맞는 등급의 게임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청소년을 지도하고 보호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초등학생이 많이 하고 있는 ‘오버워치’나 ‘리그오브레전드’와 같은 게임물은 ‘12세이용가’로 서비스되고 있고, 해당 게임 개발사인 블리자드와 라이엇 게임즈에서도 만 12세가 넘어야 계정 생성이 가능하다.
그런데 주변에 ‘12세이용가’ 게임물을 이용하고 있는 많은 초등학생이 있다는 건 본인의 계정을 사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고, 계정을 생성해 준 보호자가 ‘게임물의 등급’과 게임물이 등급에 따라 구분되는 이유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감기에 걸리면 기침을 하거나, 열이 오르는 등 증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스스로도 주변에서도 아픈 걸 알아차릴 수가 있다.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다면 그 상처 역시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그에 맞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하지만, 청소년에게 해로울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게임의 콘텐츠를 청소년이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이용하게 된다면 당장 드러나는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 청소년의 마음과 정서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한편, 등급분류제도와 현실이 너무 달라 의미가 무색하다는 시각도 있다. 등급분류제도가 일부 보수적이고, 일관성과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는 아케이드와 PC, 온라인 게임물은 직접 등급분류를 하지만 모바일 게임물의 경우 자체등급분류사업자 지정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루에 수백만건의 게임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많은 게임을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 모두 등급분류를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게임물관리위원회는 2017년부터 일정한 기준을 만족한 게임물사업자를 자체등급분류사업자로 지정, 청소년이용불가 게임물을 제외하고 사업자가 직접 등급분류를 할 수 있도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23년부터 온라인 비디오물(OTT)에도 자체등급분류지정사업자제도가 도입됐다.)
사업자가 자체적으로 등급을 분류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게임물이라도 사업자마다 분류하는 등급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또한, 게임물은 한 번 만들어지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업데이트를 통해 내용이 수정, 보완, 추가되는 경우가 있고 그럴 때 기존의 등급과 달라지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등급분류 세부 기준의 구분이 모호하다 보니,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의 기준이 달라 등급분류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점도 게임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꾸준히 문제로 제기되는 부분이다.
지도자의 입장에서는 같은 학령기임에도 생일이 지났는지 여부에 따라 게임물을 이용할 수 있는 나이가 달라진다는 부분을 학생들에게 설득력 있게 이해시키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또한, 게임물과 게임물이 아닌 콘텐츠의 구분 역시 기준이 모호하다. 학년 구분 없이 초등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로블록스라는 게임물의 이용등급은 ‘12세이용가’이다. 등급분류제도를 따른다면 ‘로블록스’는 생일이 지난 6학년, 그리고 중학생부터 이용이 가능한 게임물이다.
그런데 사실 ‘로블록스’ 안에서는 누구나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기도 하지만 누구나 게임을 직접 만들 수도 있다. 따라서 게임의 카테고리를 확장하여 플랫폼으로 본다면 ‘로블록스’ 안의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게임물의 등급을 각각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로블록스’에 접속하면 게임물등급분류에서 구분하고 있는 4가지의 등급 기준을 따르지 않고 게임물을 배포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등급 확인이 되지 않는 게임물도 많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게임물은 국내 게임물등급분류제도에 따라 연령 등급을 구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게임 플레이어가 스스로 또는 보호자와 함께 스스로에게 맞는 적절한 등급의 게임물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고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물등급분류는 청소년을 보호하고 더욱 건강하고 안전한 게임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제도이다.
따라서 게임물등급분류제도는 현실과 업계의 흐름에 맞게 변화할 필요가 있고, 어른들은 청소년이 등급에 맞는 게임물을 선택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꾸준한 관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