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현질을 허용해도 될까?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가 가장 돈이 아깝다고 느낀 순간은 쓸모라곤 아무리 찾아봐도 도무지 찾아지지 않는 또봇, 타요, 터닝메카드와 같은 조립 장난감에 기꺼이 지갑을 열어야 하는 어린이날, 생일, 크리스마스와 같은 기념일이었다. 그런 장난감들은 힘 조절이 잘 되지 않는 아이들의 손에서 너무나도 쉽게 부러지고 망가졌다.
조립 장난감이 관심사에서 멀어질 즈음, 스마트폰이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일상을 차지했고, 어느날부턴가 아이들은 현물 장난감 대신 게임 아이템이나 구글 기프티콘을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가 두 번째로 돈이 아깝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순서는 두 번째였지만 아깝다고 느낀 강도는 첫번째보다 훨씬 컸다. 장난감은 일단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어 현실감이 든다. 함께 선물 코너에 가서 아이가 직접 장난감을 고를 수 있도록 한 뒤 결제를 하고 큼지막하고 묵직한 상자를 아이에게 건네는 과정에서 부모로서의 역할을 제법 잘 하고 있다는 만족감과 뿌듯함 사이의 어떤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온라인 결제라니!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심지어 금세 싫증이 나서 지워버릴 게 뻔한 게임에 돈을 쓴다고?! 게임을 하는 동안 버리는 시간도 아까운데 거기에 돈까지 쓴다고?!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도 모르는 아이의 게임을 위해 내가 도대체 왜 돈을 써서 아이템을, 스킨을 결제해줘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고 몇 번은 안 된다고, 몇 번은 못 들은 척 외면했었다.
어느 기념일이었던가, 두 아이 중 하나가 제안을 했다. 장난감을 사주는 대신, 게임 결제를 해 달라고. 게임에 돈을 쓴다는 것이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지만 결국 아이들의 제안에 동의했다.
동의를 했던 첫 번째 이유는 장난감이나 게임 결제나 쓸모 없다는 점에서는 같았지만 일단 아이들이 제안했던 결제 금액이 만 원 정도로 작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고, 장난감의 가격대를 몰랐으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이제 흥미가 떨어진 비싼 장난감보다 당장 하고 있는 게임에 투자할 수 있는 아이템의 효용 가치가 훨씬 높았다. 비용적인 면에서만 따지자면 내가 손해볼 게 없는 장사였다.
두 번째 이유는 선물을 하는 목적이 아이들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아이들이 원하는 쪽에 비용을 들이는 게 맞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이들에게 게임 과금으로 기념일 선물을 대신한 이후 형체도 없고, 무언가를 주고 받는 행위도 없어 늘 헛헛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그 동안 받을 사람이 아닌 주는 나를 위해 선물을 고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일 년에 네 번 어린이날, 두 아이의 생일, 크리스마스에는 아이들 각자가 만원에서 3만원까지 게임을 할 때 필요한 걸 살 수 있도록 했다. 초등 고학년이 되어서는 한 달에 만 원정도를 필요할 때마다 결제할 수 있게 해주었는데, 보통 두 세 달에 한 번씩 만 원 정도를 썼던 것 같다. 두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서는 체크 카드와 인터넷 뱅킹으로 자신들의 용돈을 스스로 관리하고 있으며 게임에 필요한 과금을 할 때에도 용돈 범위 내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나와 아이 아빠와 상의해서 결제를 한다.
아이들이 즐겨 하는 모바일 게임의 대부분은 ‘인앱 결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처음 다운로드는 무료지만 계속해서 게임을 플레이하다보면 아이템을 강화하거나, 일정 레벨에 빠르게 도달하기 위해서 혹은 스킨을 업그레이드하거나, 캐릭터를 수집하는 등의 이유로 추가 결제가 필요한 구간이 생긴다. 플레이어가 지갑을 열고 싶게 만드는 환경과 타이밍을 게임 회사가 굉장히 정교하게 설계하기 때문이다.
게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보호자가 걱정하는 또 하나의 주제가 바로 ‘현질’이다. 과연 아이들에게 ‘현질’을 허락해도 되는지? 그러다 더욱 더 게임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현질’은 허락해도 된다. 오히려 막을 때 더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한, 아이들이 ‘현질’을 한다고 해서 절대로 더욱 더 게임에 빠지지 않는다.
몇가지 조건만 고려한다면 아이들은 좋아하는 게임을 더 재미있게 하기 위해 부모의 눈치를 보거나 몰래 과금하지 않아도 되고, 보호자는 아이가 게임에 과하게 집착하고 빠져드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가장 먼저 게임을 플레이하는 아이는 물론이고 보호자 또한 과금의 용도에 대해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과금이 필요한 이유가 스킨인지, 아이템인지 얼마나 잘 쓸 수 있는지, 정말 필요한 게 맞는지 등을 아이와 꼼꼼히 따져보고 합리적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내 경우에는 평소 아이들이 사고 싶은 무언가가 생길 때마다 ‘소원 노트’를 작성하게 했다. ‘소원 노트’에는 사고 싶은 물건, 사고 싶은 이유를 적게 하고 금액도 적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비슷한 물건 2~3개를 검색해 가격대와 차이점을 간단하게 비교해볼 수 있도록 했다. 게임에서 과금을 하게 될 때에도 같은 방식으로 ‘소원 노트’를 작성하게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고 싶은 이유를 생각하고, 비슷한 물건을 검색해보면서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게 맞는지 신중하게 고민하고, 적절하게 소비할 수 있는 습관을 기를 수 있었다.
두 번째는 금액 사용에 대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한 번 게임 과금을 하기 시작하면 당연하게 여기며 계속해서 조르거나, 비슷한 용도의 과금을 반복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 결제할때 얼마 정도를 허용할 것인지, 결제하는 주기는 어떻게 정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정해져 있어야 무분별한 과금을 막을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한 달에 만 원 정도 필요할 때 결제를 할 수 있도록 했었는데, 추석 연휴에 큰 용돈이 생긴 큰 아이가 갑자기 6만원 정도 하는 스킨을 결제하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과금에 부정적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초등학생이 한 번 결제에 6만원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평소 한 달에 만원을 최대 한도로 기준을 두고 있었기에 단호하게 안 된다고 했다. 아이는 며칠 뒤 한 달에 한 번 만원을 결제할 수 있으니 한 번에 6만원을 결제하고 6개월 동안 과금을 하지 않으면 안되냐고 제안을 해왔다.
한 번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다른 건 안 보이는 아이다. 게다가 아이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나에게는 아이가 제시한 제안을 반박할 논리가 마땅히 없었다. 그래서 조건부로 허락을 했다.
네가 얼마나 그 스킨을 원하는지의 마음을 담아 ppt로 만들어서 가족에게 프리젠테이션을 한다면 이번엔 허락을 해주겠노라고. 3일쯤 뒤인가 내 수준에는 너무나도 형편없었지만 아이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이미지와 글을 편집해 대여섯장 짜리의 ppt를 만들어 거실에서 가족들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했고, 원하는 6만원짜리 스킨을 얻었다.
그리고 채 삼일도 되지 않아 아이는 순간의 욕심을 6개월의 시간과 바꿨다는 현실을 깨달았고, 후회했다. 6개월 사이 몇 번을 살짝 조르기는 했지만 결국 아이는 약속을 지켰고, 6개월이 지나고도 한참을 과금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 사고 싶은 것을 사긴 하지만 이제는 ‘소원 노트’를 굳이 적지 않아도 물건을 살 때나 게임할 때 무리한 돈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게임에서 결제가 필요한 상황에서 보호자의 허락을 구하려고 하는데 ‘무조건 안돼!’ 라는 말로 아이가 납득하지 못하게 ‘금지’를 할 때 문제가 생긴다.
아이들은 허락 없이도 게임에서 과금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는다. 온라인 상에서 알게된 친구들과 게임 관련 아이템을 거래 하거나, 사이버 갈취를 하거나, 가족의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상품권이나 기프티콘을 받는 등 돈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행동은 범죄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하고 이런 경우 반드시 보호자에게 빠르게 알리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아이들은 몰래, 허락하지 않은 행동을 했기 때문에 보호자에게 알리지 않고 숨기거나,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다가 문제나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래서 부모가 반드시 아이의 게임 생활, 결제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고, 아이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문제가 생겼을 때 빠르게 보호자에게 알리고 피해가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하지말라면 더 하고 싶고, 못하게 하면 더더욱 그것만 생각하기 마련이다. 게임에 돈을 쓰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면 돈을 쓸 방법을 찾을까 궁리하게 되고 오히려 그 과정이 게임 과몰입을 부추기게 된다.
그래서 나는 현금 결제에 대한 태도는 유연하게, 기준은 단호하게 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보호자를 신뢰하고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제한 없이 나눌 수 있어야 하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한 소통이 아이의 게임 과몰입을 예방할 수 있는 중요한 백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