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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정희 Sep 12. 2015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억과 기록

강운구의 사진과 함께 읽는 이야기

글과 사진이 함께 만들어가는 하나의 이야기.   


미술관에는 그림도 있고 사진도 있다. 사진은 그림에 비하여 순간으로 대상을 표현한다. 다만 그 찰나를 포착하려면 기다려야 한다. 빛이 순간을 장악하고 사물의 영혼을 확연하게 드러내는 순간, 셔트를 누른다. 해서, 사진은 빛에 기댄 예술이다. 반면에 빛은 또 사진 덕분에 살아남는다. 저물어가고 사라질 빛을 사각의 틀 안으로 부여잡아 영원성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사진이기 때문이다.   

미술관 옆 도서관 세 번째 이야기는 사진이 붙들어 맨 빛을 더듬어 사라져 버린 ‘기억’을 불러내고 그 덕분에 부활하는 ‘기록’을 읽고자 한다. 또한 수많은 빛들이 모여 장구한 역사가 되는 현장을 사진과 책이 각각의 장르에서 같은 주제로 변주한 장면들을 넘겨본다. 


소금창고의 염부꾼〉 젤라틴 실버 프린트, 11 ×14인치, 2002년작. /한미 사진미술관 제공  


 

2008년 송파구에 있는 한미 사진미술관에서 강운구의 사진전 ‘저녁에’(Embracing evening)가 열렸는데  그중 안면도 염전에서 촬영한 [소금창고의 염부꾼]을 주제로 한 세 컷의 사진이 전시되었다. 염부꾼이란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예전에, 바닷물을 끓여서 소금을 고던 사람’이다. 지금이 아닌, 예전에. 그렇다, 염부꾼은 이제 옛사람이다. 물을 끓여 증발시킬 만큼 뜨거운 빛 아래에서 평생을 일하는 동안 그의 얼굴은 새까맣게 탔다. 흑백 사진에서 셔츠는 백이요 얼굴은 흑이다. 강운구는 같은 장면을 세 번 나누어 찍었다. 천장 높은 소금 창고를 찍은 후 늙은 인부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가 더 다가가 얼굴을 정면으로 크게 찍었다. 그의 얼굴은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다시 읽힌다. 또한 그의 알 듯 모를 듯 한 얼굴을 들여다 본 후 소금 창고는 전과 달리 읽힌다.   


강운구가 카메라를 당겨 피사체에 다가가듯 책 4권을 함께 읽는다. 그런 후 어느 정도의 시간을 흘려 보낸다. 이번엔 책을 내려 놓고 멀리서 풍경을 조망하듯 사진을 살핀다. 사진과 글이 인간의 불완전한 기억을 어떻게 기록하는지, 기록으로 인간은 무엇을 하려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늠하는 시간이다. 





사진출처 : 강운구의 [마을 삼부작] 중에서 수분리 


함께 읽는 첫 번째 책 [마을 삼부작]은 강운구의 사진집이다. 강운구는 전통가옥을 촬영하고자 강원도 원성군 황골의 초가마을,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의 너와집 마을,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의 건새집을 찾았는데 지금은 이 세 마을이 모두 사라지고 사진으로만 남았다. 작가는 ‘시간과 겨루기에 슬프지 않은 것은 없다’고 했지만 마을은 시간 때문에 사라진 게 아니다. 개발과 근대화, 산업화 때문이다. 단지 집, 강, 오솔길, 산등성이만 사라진 게 아니다. 터전이 옮겨지자 집의 모습이 바뀌고 삶의 형태도 추구하는 가치도 달라졌다. 사람의 관계가 달라지고 자연과의 관계도 변했다. 강운구는 이를 두고 ‘나는 발견할 수 있었고 그들은 부수었다’고 했다.   염부꾼과 세 마을은 그저 옛 것이 아니다. 그 안에 오랜 세월 구축한 문화가 있다. 편리하고 새로운 것에 밀려 서서히 사라지는 것과 부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는 단절이다. 사진은 이 단절과 상실을 처절하게 고발하는 동시에 애잔하게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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