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평범한 개발자 Feb 03. 2017

대기업 개발자의 스타트업 생존기 (4)

04. 밑바닥에서

 무더워져 가는 여름.

 맥북의 열기는 뜨거워져갔고 나는 1인용 선풍기를 구입했다. 모니터는 듀얼이다.


 갑자기 일이 없기 시작했다.

 '일이 없다.'라는 것. 매출과 상관없이 스타트업에 그런 상황은 존재할 수 없다.

 다만, 난 흙수저가 아니던가. 당장 생계를 위해 매출을 발생시키는 것에 대해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초조해졌다. 밖은 정글이다. 그리고 나는 생존을 위해 죽창을 든 원시인이다. 어느 날은 바람이 불어 풀잎이 흔들리는 소리에도 죽창을 던진다. 하지만 막상 그곳에 가보면 죽창만 덩그러니 놓인 채 아무것도 없다. 그런 나의 모습을 누군가가 본다면 당연히 비웃을 것이다.


 '대기업 출신'이라는 커리어. 경력증명서를 내밀지 않는 이상 그건 믿거나 말거나다. 고객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적절한 가격에 내가 필요한 것(또는 생각지 못한 그 이상의 것)을 상대방이 줄 수 있는지의 여부다. 기분 탓일까? 대기업 출신이라 하니 오히려 의심의 눈초리가 느껴질 때도 있었다. 너 그 좋은데 나와서 왜 힘들게 이러고 있니?


 나는 초조했고, 일단 매출을 발생시켜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 같은 것에 사로잡혀 어느 날은 불리하게 협상이 진행되는 일도 생겼다. 그때 한 멤버와의 대화 중 마찰이 붉어졌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마찰의 정도가 심해졌으며, 누군가가 드라이버로 내 머리를 조이는듯한 통증을 느낄 정도였다. 결국 멤버를 달래고, 협상이 엎어지는 일도 생겼다.


망했다.


 이 생각이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사실 관계만 따지면 별일 아니었다. 다만, 이런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니 그 생각이 나를 괴롭고 고통스럽게 했다.

 모든 게 불안정하게만 느껴졌다. 안 밖으로 나에게 예측 가능한 것은 없었다. 


 '나의 무능력함은 극복될 수 없는 것인가?' 

 '애초에 되지 않는걸 무식하게 되게 하려고 했던 건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려고 했었던가?'


 하루는 정말 아무 의욕이 생기지 않아서 아무 생각 없이 햇빛을 쬐며 집 앞 벤치에 앉아있곤 했다. 


 그런 와중에 학교 선배로서 인연이 닿아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한 대표님을 뵙게 되었다. 

 점심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그 당시에 나는 불안과 초조의 대명사와도 마찬가지인 상태였으므로 아무 생각 없이 나의 힘든 부분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징징댔다.


그런 와중에 선배님이 말씀하시길 무협지에 등장하는 '철사장'으로 나의 현재 모습을 비유하셨다.


 "그 철사장이라는 게 있잖아.. 손을 단련하려면 뜨거운 모래에 왼손을 넣었다가 빼고 그다음 오른손을 넣었다 빼고 그렇게 반복하면서 손에 굳은살이 생기고 단단해지는데.."


너는 지금 왼손만 한번 넣고.. 으악!! 뜨거워요! 뺄까요? 말까요?


라고 나에게 묻고 있다며.. 


 그리고 본인이 존경하는 손정의 회장의 이야기도 하셨다. 수많은 사람들의 롤모델인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손정의 회장도 미국에서 Sprint와 T Mobile 합병이 무산되자 극심한 좌절감과 스트레스에 머리카락이 새하얘졌다며. 그것이 사업가의 길이라 하셨다.


 그 순간 나는 어린아이 같았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내가 선택한 길에서 발생할 수 있는 너무도 당연한 일들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나는 경험이 없으니 그게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어린아이처럼 이렇게 칭얼댔던 것이다.

지구에 공기가 있어요. 지구에 공기가 있어요.


 이게 내가 선택한 길이다. 평생 처음 겪어 보는 일들을 겪어나가면서 잠시 망각했던 사실이다. 그 사실이 명백해짐에 따라 모든 것이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생각으로 다시 결연한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다시 또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니 많아지기 시작했다. 나의 불안함과 초조함은 기우에 불과했다. 


 운과 네트워크의 중요성 또한 깨달았다. 내가 만약 선배를 알지 못했다면 이러한 작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만약 그 선배가 매출 몇백 억대 규모의 회사를 맨손으로 시작해 10여 년에 걸쳐 만들고 이끌어 오신 분이 아니었다면 나에게 그런 효과적인 조언을 해주실 수 있었을까.


 갓 태어난 회사. 갓 달은 대표라는 직함. 아직 신뢰와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사업 초기 일의 시작은 내가 사업을 시작하기 이전부터 '나'라는 사람을 믿어주신 분들 그리고 또 그중 운 좋게도 사업에 직,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들 의해 더 큰 동력을 얻게 되었다.


 우리의 엔지니어링 파워를 필드에서 테스트해보고 싶기도 했고, 일들을 하나씩 처리해나가는 과정에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러 측면에서 우리의 강점과 약점도 하나씩 정리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갈길은 아직도 한참 멀었고, 해결 해나가야만 하는 문제들은 계속 발생했다. 그리고 가장 큰 위기는 회사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찾아왔다.

 직장이나 학교를 다닐 때 흔하게 보였던 '리더십'이라는 단어. 나에게 가장 필요할 때 내가 처한 현실 세계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았고, 그 누구도 나에게 펼쳐진 상황에 맞춤형으로 가르쳐줄 수 없었다. 나는 직장이나 학교에서 봐왔듯이 그 '리더십'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다음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기업 개발자의 스타트업 생존기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