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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슈퍼 Oct 13. 2023

첫 출근날 생기는 일들

우물쭈물의 연속


첫 출근이라 너무 떨렸다. 걱정하느라 밤을 꼬박 새서 피곤했다. 10시 정각에 시간을 맞춰서 회사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사무실 문이 잠겨 있었다. 팀장에게 전화했지만 받지 않아서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렸다.


삼십 분쯤 지나니 직원 한 명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저 오늘부터 출근인데요. 오늘 나오는 날 맞죠?"

"저희 원래 좀 늦게 출근해요."


11시 반쯤 되니 전 직원(5명) 모두 도착했다. 지각에 너그러운 회사였다. 팀장은 제일 늦게 왔는데 오자마자 직원들에게 날 소개해주며 말했다.

"신입이니까 다들 잘 가르쳐줘."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정적에 조금 놀래서 팀장의 표정을 살폈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선배들은 엄청나게 피곤하고 모든 게 귀찮은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며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이 분위기 뭐지?


꾸벅 인사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옆자리 선배가 밥 먹으러 가자고 말했다. 그 선배는 출근한지 10분도 안 된 시점이었다. 여기 진짜 널널하다..라고 생각했다.(야근을 겪어보기 전에는)


아무도 팀장에게 점심 안 먹냐는 말을 안 했는데 매번 그런 건지 자연스러워 보였다. 팀장을 빼놓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팀장은 헤드폰을 끼고 게임을 했다.


그 회사에서 처음 먹은 점심은 설렁탕이었다. 내가 제일 어리고 후배라는 생각에 수저를 챙기고 있는데 선배가 단호하게 말했다.

"안 그래도 돼요."

그래서 내 물컵에만 물을 따랐다. 어느 학교 나왔냐, 집은 어디냐 이런 걸 물어볼 줄 알았는데 아무도 내 정보에 대해 묻지 않았다. 선배들은 무한도전 이야기를 했다. 나는 무한도전을 안 봐서 할 얘기가 없었다.


각자 카드로 각자 몫을 계산한 후 스타벅스로 갔다. 메뉴를 훑고 있는데 선배가 말했다.

"법카로 계산할 거니까 비싼 거 먹어도 돼요."

또 다른 선배가 말했다.

"법카 점심때 쓰지 말라고 했는데."

"어제 야식도 못 먹게 했잖아. 그냥 써."

선배들은 큭큭 웃었다.

아메리카노를 먹으려고 했는데 다들 비싼 걸 시키길래 나도 그린티 프라푸치노를 시켰다.


법카로 산 커피를 손에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선배 둘은 담배를 피우러 가고, 한 명은 양치질을 하러 가고 팀장은 자리에 없었다. 사무실엔 나 혼자였는데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팀장 자리였다. 아.. 어떡하지? 당겨 받아야 하나? 심장이 쿵쿵 뛰었다.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회사에서 전화를 받거나 걸어본 적이 없었다.


전화벨이 울리는 그 짧은 순간에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둘까? 안 받으면 핸드폰으로 걸겠지 뭐.'

'중요한 전화면 어떡해.'  


벨소리가 너무 커서 받기로 결정했다. 팀장의 자리로 가서 수화기를 들었다.

"네. 000스튜디오입니다."

"이팀장 자리 아니에요? 누구세요?"

팀장님을 팀장이라고 부르고, 빠르게 본론부터 말하는 걸로 봐서 왠지 높은 직급에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 쫄았다..


"저는 오늘부터 출근한 사람인데요.. 지금 팀장님이 안 계셔서.."

"오면 전화 좀 달라고 하세요. 저 이현영(가명)이에요."

"아.. 네. 알겠습니다.

포스트잇에 메모를 하려는데 그새 이름을 까먹어버렸다.

"죄송한데요, 성함 한 번만 더.."

"이. 현. 영이요."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이현영은 회사 일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클라이언트사의 부장이었다. 전화를 약간 맹하게 받은 것 같아서 얼떨떨해짐과 동시에 수화기로 전해지는 상대방의 포스에 눌린 게 자존심 상했다.


처음으로 업무 전화를 받아봤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다. 포스트잇에 메모를 적어놓고 자리로 돌아갔다.




3시쯤에는 손님이 왔다. 전에 이곳에 다녔던 사람인데 근처에 왔다가 들렸다고 했다. 케이크를 사 왔다. 선배들은 엄청 반겼다. 조금 부러웠다. 다들 회의 테이블로 모여들어서 안부를 주고받았다. 티타임을 가질 분위기였다.


나도 회의 테이블로 가야 하나, 좀 고민이 되었다. 혼자 자리에 앉아 있기도 이상하고, 모르는 사람이 사 온 케이크를 먹으러 가는 것도 이상했다. 일이라도 많으면 바쁜척하면서 자리에 앉아 있을 텐데 첫날이라 아직 일을 받은 것도 없었다.


괜히 바탕화면에 폴더를 뒤져보며 시스템을 파악하는 척하고 있는데 선배가 불렀다.

"이것 좀 먹고 하세요."

우물쭈물하며 쳐다보니 다들 합심해서 날 불렀다.

"유명한 데서 사 왔대요. 빨리 오세요."

나는 망설이는 척하며 테이블로 갔다. 선배가 의자를 빼주고 케이크를 그릇에 덜어주었다. 먹는 내내 굉장히 어색했고 내가 모르는 대화내용에 낄 수도 없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그 날은 회사를 다닌 모든 날 중에 가장 평온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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