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드 Sep 22. 2015

나는 기생충의 숙주가 아닐까

한 때 기생충에 감염되면 물을 찾아가 죽게 된다는 영화가 있었다. '연가시'다. 실제로 연가시는 인간을 숙주로 살아갈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전, EBS 다큐프라임 ‘기생’편을 보면서, 비록 연가시는 아니지만 인간도 진화된 어떠한 기생충에 의해 조정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을 하게 되고 끌리는 것도 인간을 숙주로 하는 기생충의 조종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 허황된(지금으로서는 허황된 생각일지 모르나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생각을 하게 된 건 바로 다음과 같은 지구상의 기생충들의 진화 모습을 보고 난 이후다. 


첫 번째 이야기. 물가를 찾은 사마귀의 죽음


숲 속 곤충계에서 정점을 차지한다는 사마귀, 땅에 사는 사마귀가 스스로 물가에 가서 빠져 죽는다. 연가시라는 기생충의 조종 때문이다. 연가시는  사마귀뿐만 아니라 딱정벌레, 귀뚜라미 등 여러 곤충의 내장을 뚫고 들어가 2M에 이르는 길이로 성장하기도 한다. 연가시는 물에 빠진 사마귀의 몸속에서 나와 짝짓기를 하고 수천 개에서 수백만 개의 알을 낳는다.  

사진= EBS 다큐프라임 ‘기생’편 방송 갈무리 화면

물속에서 부화된 유충은 장구벌레와 같은 작은 곤충의 먹이가 된다. 장구벌레가 모기가 되어 물밖으로 나오면 사마귀의 먹이가 되고 연가시 유충은 사마귀의 장 속에서 성장한다. 연가시는 숙주를 조종하는 직접 신경전달물질을 만들기도 하고 숙주가 신경전달물질을 많이 만들도록 숙주의 유전자를 변형시키기도 한다. 이를 통해 연가시는 숙주를 물가로 이동하도록 조종한다. 


두 번째 이야기, 개구리의 다리


환경보전이 잘 되어 있기로 유명한 미국 남서부 지역에서 다리가 3개이거나 없거나, 눈이 없는 등 기형인 상태로 서식하는 개구리들이 나타났다. 환경오염의 문제인 줄 알았지만 이 개구기들은 레베이로이아 온다트레(Ribeoroia ondatrae)라는 편형 흡충류에 의해 기형을 일으킨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 EBS 다큐프라임 ‘기생’편 방송 갈무리 화면

이 흡충류는 달팽이의 몸을 숙주로 알에서 유충으로 증식하고 2차 숙주로 올챙이를 선택해 개구리가 될 때까지  몸속에서 잠복한다. 다리가 나오는 개구리가 되면 유충은 특수물질을 만들어 개구리 다리를 변형시킨다. 이러한 이유는 개구리의 활동성을 떨어트려 새들에게 먹잇감이 되게 한다. 3차 숙주인 새 몸으로 들어 간 레베이로이아 온다트레는 이제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는 종족 번식의 유리함을 갖는다. 


세 번째 이야기, 기생충의 아바타 스파이더 크랩


태평양에서 가장 흔한 스파이더 크랩은 기생충에 감염되어 가짜 크랩과 똑같이 생긴 기생 따개비가 되기도 한다. 이 기생 따개비는 껍데기만 크랩일 뿐, 몸 안은 따개비가 온통 차지하고 조종한다. 기생 따개비는 게의 호르몬을 변화시켜 수컷을 암컷으로 만들기도 한다. 크랩의 배 안주머니와 근육, 신경 등 모든 부분은 기생 따개비의 일부가 된다. 따개비는 게를 조종하여 자신의 알을 돌보고 이들을 바다에 풀어 놓는다. 바다에서 부화된 따개비의 알들은 플랑크톤 형태의 애벌레가 된다. 감염된 게는 죽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으며 자신이 감염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오히려 크랩을 행복하게 만들고 오래 살도록 해 자신의 알과 새끼를 보살피게 한다. 

사진= EBS 다큐프라임 ‘기생’편 방송 갈무리 화면

아주 먼 옛날 한 따개비는 우연히 게의 등에  붙어사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그 후손 중 어느 놈이 게의 껍데기 위에 서식하다가 수 백만 년 동안 진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게의 영양소를 흡수하는 법을 배웠을 것이고, 게의 성별과 행동을 조종하는 것을 개발했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기생충으로 진화했을지 모른다. 


네 번째 이야기, 물가에 발을 담그는 인간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을 조종하는 기생충이 있다. 메디나충은 숙주의 피부를 화끈거리게 해서 그 부위를 물에 담그도록 조종한다. 환부가 물에 닿는 순간 메디나충은 수백만 마리의 유충을 물속에 배출한다. 유충은 이때부터 자신의 삶을 시작한다. 물속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다 물벼룩들에게 기꺼이 잡아 먹힌다. 물벼룩이 들어 있는 강물을 마신 사람은 메디나충의 새로운 숙주가 된다. 1년 뒤 메디나충은 그 숙주 피부에 물집을 만들고 통증을 유발해 다시 강물에 환부를 담그도록 조종한다.

사진= EBS 다큐프라임 ‘기생’편 방송 갈무리 화면

지금까지 나열한 기생충의 진화가 과연 곤충과 일부 열대 지방의 후진국에서만 발생하는 일일까. 어느 날 내가 벽에 머리를 부딪혔다면, 갑자기 우울한 생각에 빠져 자꾸 술을 먹는다면, 누군가가 미치도록 그립고 보고 싶다면 혹시 이건 인간의 몸속에서 우리의 생각을 조종하고 있는 기생충의 명령이 아닐까...


이 내용은 EBS 다큐프라임 기생(寄生). 1부 - 보이지 않는 손 편이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가죽소파가 잘못했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