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련함과 살아감 하나, 관덕정
제주의 인문학과의 연결은 타지역과는 사뭇 다르다.
지역적 성향이 강하고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우직하지만 잔잔하게 제주만의 색을 가지고 있다.
척박한 땅이라 역사적인 발전적 투자나 개발도 없었다.
중앙 정부로의 진출 또한 지역적 단점으로 한계상황이 었고.
그래 얼마 전 <가슴으로 안아야 하는 제주>란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대충 몇번 방문한 사람들은 제주를 다 안다고들 하지만… 그들 안을 들 여다 보지 않고는 결코 제주를 알 수 없다. 나 또한 아직도 멀었다.
그럼, 이제 제주의 자연, 음식, 사회, 역사, 뒷이야기를 섞어 연재를 처 음으로 시작할까 한다.
먼 옛날 양을나(良乙那), 고을나(高乙那), 부을나(夫乙那) 세 신인이 삼성혈에서 솟아나, 들판을 돌아다니며 사냥해 고기를 먹고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고 살다 하루는 동해 바닷가에서 자줏빛 진흙으로 봉한 나 무함이 떠오는 것을 발견해 열어보니, 그 안에 또 돌함이 있고 속에는 푸른 옷을 입은 처녀 세 사람과 망아지, 송아지, 오곡의 씨앗이 있었다.
세 신인은 나이 차례대로 세 공주를 부인으로 맞고, 물 좋고 땅이 기름 진 곳을 찾아 각기 활을 쏘아 화살이 떨어진 곳으로 터를 정하니,
양을나가 사는 곳은 제일도, 고을나가 사는 곳은 제이도, 부을나가 사는 곳은 제삼도라 일컫고, 비로소 오곡의 씨를 뿌리고 망아 지, 송아지를 기르면서 정착 생활을 했다.
그래서 제주는 양, 고, 부씨의 나라.
탐라국은 662년 신라의 속국이 되기 전까지는 독립국가.
925년 독립.
1105년 다시 고려의 속국. 이제 탐라군.
1273년 삼별초의 난 이후는 원나라 속국.
1367년 다시 고려 속국.
1402년 다시 조선 속국.
조선시대에는 유배지로나 사용하는 척박한 섬.
그래 추사 선생의 가르침이 작용한 곳, 변화의 시작
제주 유일의 보물건축이 있는 마을, 삼도.
관덕정 觀德亭
1448년 제주목사 신숙청 부임하여 왜구토벌을 위해 훈련장을 만들었다.
제주도는 현무암 밖에 없으니 초석으로 현무암을 놓고 전면 5개 측 면 4개의 기둥을 세우고 기와지붕을 얹었다.
안평대군을 찾아 현판을 받고...
관덕정 觀德亭
(사자소이 관성덕야 射者所以 觀盛德也 활을 쏘는 것은 훌륭한 덕을 보는 것이다. - 시경)
내부 대들보에는 7편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商山四皓 상산사호 난을 피해 바둑을 즐기는 선비들
醉過楊州橘滿轎 취과양주귤만교 두보는 귤을 던지는 여인의 교태에도 태연자약
大捷圖 대첩도 손권과 유비가 조조를 격파하는 모습
陣中西城彈琴圖 진중서성탄고도 10만 적군을 앞에 두고 태연하게 거문고를 타는 제갈량
鴻門宴 홍문연 유방에게 연회를 베푼 뒤 역습하려다 후환만 얻은 황우
大狩獵圖 대수렵도 군인들이 사냥하는 모습
十長生圖 십장생도 해 산 물 돌 소나무 달 또는 구름 불로초 거북 학 사슴
내부의 두 현판 耽羅形勝 탐라형승 은 김영수 목사,
湖南第一亭 호남제일정은 박선양 목사의 글씨다.
조선 초기의 문장가 서거정(徐居正)이 시를 읊었다.
눈이 꽃 사이에 가득한데, 푸른 새가 울고 서리가 울타리가에 깊었으니 누른 감자(柑子)가 익었도다.
구름이 봉도에 열리니 오잠(鰲岑)이 가깝고, 날이 부상에 나오는데 바다 기운이 휩싸였도다.
땅이 선도에 연하였으니 사람 살기가 좋고 공 바치는 것이 조정에 들어가니 산물 이 풍부하도다.
이름난 기마(騎馬)는 이미 대원(예전의 중앙아시아에 있던 나라 이름) 의 신기한 말인 요뇨(騕褭, 신라 때의 진기한 말 이 름)보다 진하고, 향기로운 감자는 한(漢)나라 포도(葡萄)보다 더 좋다.
1924년 일본인이 보수하면서 처마를 두자 잘라낸다.
복원 불가능.
해방 후 1948년 임시도청.
1952년 의회 의사당.
1958년 미공보원 문화원.
1963년 보물 322호로 지정되지만 돈은 없고.
2006년에야 완전 보수 복원.
조선의 지방 관리는 관찰사(도지사)-부사(직할시장)-목사(시장)-군수( 군수) 순.
사자소이 관성덕야 射者所以 觀盛德也
활을 쏘는 것은 훌륭한 덕을 보는 것이다. - 시경(춘추시대의 민요를 모은 중국의 가장 오래된 시집) 안평대군 현판 소실.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명필 이산해가 다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