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해지는 피맛골의 추억 넷, 해장국
1415년(태종 15년) 도로를 정비하면서 대로는 폭 17.48m(56척), 중로는 5m(16척), 소로는 3.42m(11척)로 정했다.
조선시대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 ‘공전편’의 도로 정비 규정에따라 광화문 사거리에서 흥인문까지 종로를 따라 양쪽으로 길의 폭은 3.43m(11척)였다.
피맛길은 그런 작은 길로 계획적으로 만들어졌다.
현재 남은 피맛길은 종로를 기준으로 북쪽으론 서울YMCA에서 인사동 입구 사이, 탑골공원에서 단성사 사이정도다.
남쪽에도 약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피맛길에 서민이 많이 다니다 보니 목로주점·모주집·장국밥집 등이 자연스럽게 들어섰고, 이게 20세기 말까지 이어져 왔다.
무교동낙지, 빈대떡 열차집, 이문설렁탕에 이어 오늘 늘어 놓을 이야기는 국밥집이다.
청진동 해장국 골목
해장국 골목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명성을 날리는 곳은 단연 서울 종로구 청진동이다.
요즘은 프랜차이즈로 변신한 청진동 해장국집이 지방에서도 드물게 눈에 띄일정도다.
어릴 적부터 자주 들어 그런지 '청진동 해장국 골목'이란 단어가 무척 익숙하다.
청진동이 한창 명성을 날리던 1970~80년대엔 선짓국집만 10곳이 넘었다고 한다.
늦은 밤보다 새벽 시간에 손님이 줄을 이었다고 하는데 통행금지가 없어지면서 청진동 해장국 분위기도 가라앉아 지금 같이 몇몇 가게만 불을 밝히고 있다.
청진동 해장국의 뿌리는 조선 말기로 올라간다.
근처에 땔감 장터가 있어 자연스럽게 이들을 상대로 한 술과 밥을 파는 집들이 들어섰다.
24시간 가마솥에서 푹 고아낸 소뼈 국물에 밥을 말고 선지와 내장, 우거지, 콩나물, 파 등을 듬뿍 올려 다시 국물을 여러 번 부었다 따랐다 하는 토렴으로 밥을 데워 낸다.
사실 요즘 맛집 소개하며 토렴이라는것이 얼마나 특별한것처럼 포장하고 전문용어인양 이야기하는데, 당시 토렴은 국밥집에서 흔히보는 보편적인 방식이었다.
뚝배기에서 바글바글 끓지 않아 후다닥 먹을 수 있었고, 선지 덩어리는 좋은 술안주가 됐다.
청진옥
일제시대 1937년 문을 연 청진옥은 피맛골의 터줏대감으로 자리하고 있다가 2008년 도심재개발로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가게 간판에 ‘since 0000년’이라고 쓰는 것이 유행처럼 번진 한국의 식당가의 마케팅 전략이다.
서글프지만 1990년대는 물론이고 2007·2008년까지도 등장한다.
10년 남짓 되는 것도 역사가 되는 한국의 현실이 드러난다.
그만큼 오래된 가게가 드물다는 뜻이다.
이에 비교 할 수 도 없을 만큼 오랜 시간을 지켜온 청진옥은 현재까지 80년을 이어온 老鋪노포(대대로 물려오는 점포)중에 노포다.
설설 끓는 무쇠솥, 김이 허옇게 오르는 뚝배기, 그리고 한 그릇의 해장국.
우리 음식의 상징으로 가장 먼저 꼽히는 음식인 해장국은 국물요리 중심의 한국요리에서 고단한 세월을 드러내는 음식이기도 하다.
청진옥의 해장국은 언듯 생각이드는 해장국의 걸죽함이아닌 맑고 깔끔한 국물이 특징이다.
얼큰한 맛을 원한다면 준비되어 있는 양념과 고추가루를 넣으면 된다.
싱싱하고 큼직한 선지와 내장이 듬뿍 들어있어 건더기 맛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콩나물과 우거지는 시원한 국물맛과 식감을 더해준다.
반찬은 단촐하게 깍두기 하나지만 맑은 해장국 국물과 잘 어울린다.
청진옥은 현재 3대째인 최준용(49)씨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피맛골의 잃어버린 한을 안고 여전히 뚝배기에 불을 넣고 있다.
청진옥이 본래의 자리를 잃어버린 것 역시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다.
피맛골 재개발은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포크레인이 상징하는 도시개발은 우리 음식문화사의 한 자락까지도 걷어버린 셈이다.
최씨는 이야기한다
지금도 이 일대를 보면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입니다.
2008년 8월 3일 오후 5시.
청진옥이 본래의 자리에서 사라지던 순간이지요.
어떻게 그날을 잊을 수 있겠어요.
그는 일부러 원래 청진옥이 있던 청진동 89번지 쪽을 쳐다보지 않는다고 한다.
고향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 살아 남은 자들에게는 멍에가 얹어진다.
청진동 89번지.
도심 재개발로 얻은것(?)도 있겠지만, 도시의 역사를 한꺼번에 매몰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