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해지는 피맛골의 추억 셋, 설렁탕집
주부들이 여행하려면 사골국물만 한 솥 끓여놓고 나가면 된다는 우스개 소리처럼 곰탕이나 설렁탕은 허해진 기력을 충족하기위해 장기간 먹어왔던 국민보양식으로 그 자리를 확고히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설렁탕을 먹기 시작한 지는 500년이 넘는다고 한다.
그만큼 설렁탕은 우리의 영양식이었던 것이다.
설렁탕을 사전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소의 머리, 내장, 뼈다귀, 발, 도가니 따위를 푹 삶아서 만든 국.
또는 그 국에 밥을 만 음식
소의 온갖 부위를 다 넣고 끓인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렇게 조리하였으나, 현재 한국의 식당에서 팔리고 있는 설렁탕은 이 조리법에 따르지 않는다.
쇠머리와 내장등은 누린내가 난다하여 이를 뺀 설렁탕이 많다.
발과 도가니도 따로 탕을 끓여 우족탕이나 도가니탕으로 낸다.
쇠뼈를 푹 곤 뿌연 국물에 소의 살코기가 들어가는 것이 요즘의 설렁탕이다.
살코기는 비싼 구이용 빼고는 여러 부위가 다 들어간다.
설넝탕은 물론 四時사시에 다 먹지만 겨울에 겨울에도 밤 자정이 지난 뒤에 부르르 떨리는 어깨를 웅숭크리고 설넝탕 집을 찾아가면 우선 김이 물씬물씬 나오는 따스한 기운과 구수한 냄새가 먼저 회를 동하게 한다.
그것이 다른 음식집이라면 제 소위 점잔하다는 사람은 앞뒤를 좀 살펴보느라고 머뭇거리기도 하겠지만, 설넝탕집에 들어가는 사람은 절대로 解放的해방적이다.
그대로 척 들어서서 ‘밥 한 그릇 줘’ 하고는 목로 걸상에 걸터 앉으면 일분이 다 못되어 기름기가 둥둥 뜬 뚝배기 하나와 깍두기 접시가 앞에 놓여진다.
파·양념과 고춧가루를 듭신 많이 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가지고 훌훌 국물을 마셔가며 먹는 맛이란 도무지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가 없으며 무엇에다 비할 수가 없다.
- 1929.12.1. 잡지 別乾坤별건곤, 牛耳生우이생
1920년대 중반 설렁탕 한 그릇의 값은 10전에서 15전 사이였다.
담배 한 갑이 10전 할 때이니, 설렁탕 한 그릇 값이 담배 한 갑과 거의 맞먹었다.
지금이야 수육이 설렁탕보다 몇 배가 비싸지만, 당시에는 고기를 5전어치 더 달라고 하면 되었다.
이렇게 따져보면 그야말로 설렁 탕은 무척 싼 음식이었다.
막노동을 하던 가난한 사람들도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손쉽게 사먹을 수 있었던 음식 이 바로 설렁탕이었다.
아마도 1900년 이전부터서울 종로의 뒷골목에는 설렁탕 집이 여럿 있었을 것이다.
이른바 1세대 설렁탕, 곰탕집들…
근대도시로 진출한 백정들은 정육점과 설렁탕집을 함께하며 같은 천민이었던 옹기장이들 이 만든 뚝배기에 담아냈다.
100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설렁탕 하나로 한자리를 지켜온 피맛골의 설렁탕집이 있다.
아쉽게도 역시 개발의 물살에 2011년 자리를 뒷쪽 골목으로 옮겼다.
이문설농탕(里門-)은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위치한 설렁탕 식당이다.
1904년 서울 종로구 공평동에서 개업한 '이문옥'을 자리를 옮겨 4대째 이어가고 있다.
영업신고제도도 제대로 없었던 시절이니 정확치는 않다.
지금의 주인, 주인 집안이 문을 연 것은 아니지만 가장 오래된 노포로 인정받고 있다.
112년의 세월이 60대도 이 집에선 ‘어린 단골’로 통한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홍씨가 서울 종로구 공평동에 ‘이문옥’을 연게 시작이었다.
이후 주인이 두 번 바뀌면서 3대 주인이던 고 유원석 할머니 대부터 본격적인 대중 음식점의 면모를 갖추었다.
지금 주인 전성근씨는 유 할머니의 아들이다.
건국 후 서울시 음식점 허가 1호이기도 하다.
마라톤 영웅 손기정, 남로당 거물 박헌영, 풍운아 김두한 등 단골의 이름만으로도 현대사다.
2012년 농림수산식품부와 한식재단이 선정한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한식당 100선>에 꼽혔다.
대한민국보다 긴 역사를 이어온 비결은 담백한 국물 맛이다.
비법은 잔재주가 아니다.
현재 주인인 전성근(71)씨.
좋은 재료와 오래 끓이는 정성, 그 이상의 비법은 없다.
이문설농탕은 양지·도가니·사골 등을 솥에 넣고 16~17시간을 끓인다.
연료가 장작에서 연탄으로, 다시 가스로 바뀌었을 뿐이다.
200~300그릇에 해당하는 대형 솥에 순수한 한우 사골을 곤 다음 기름을 말끔히 걷어내고 양지와 머릿고기 등을 알맞게 삶아내 탕 맛을 돋운다고 한다.
뽀얗게 우러난 진국에 잔잔한 기름이 비치는 구수한 뒷맛이 100년 설렁탕의 진수라는 평을 듣는다.
수요미식회에 나온 무수옥은 정육점이 붙어 있으니 설렁탕 전문점이라기보다 고기집인데 식사메뉴로 설렁탕도 팔고 육회, 육회비빔밥도 내놓는 한국전쟁후 생긴 이른바 2세대 설렁탕집이다.
2세대 설렁탕집에는 문화옥, 보건옥, 미성옥, 풍년옥, 무수옥, 마포옥등이 있다.
개발에 밀려 사라진 원래의 이문설렁탕 건물은 식당보다 더 오랜 건물이었다.
그나마 뒷골목으로 옮겨져 명맥을 이어가지만 보존에 대한 아쉬움이 진 하게 남는것이 사실이다.
현재 남아 있는 광 복 전의 이문설농탕을 비롯 잼배옥, 옥천옥등이 사라지지 않고 오랜 시간을 우려내는 설렁탕처럼 오랜 세월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