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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한한량 Feb 11. 2024

너를 너무 몰랐다

아이의 성격을 알게 된 날

토요일


큰아이 음악회가 있는 날이다.

매년 진행하는 행사인데, 올해는 졸업반인지라 유독 감회가 새롭다. 이젠 큰아이의 음악회든 재롱잔치든 유치원에서 할 수 있는 그런 이벤트를 볼 수 없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수개월 동안 각 반별로 공연을 준비한 모양인데 그 종류가 참으로 다양하다. 아이들이 이런 것까지 하나 싶었지만, 유튜브로 검색해 보니 아이들이 꽤나 완성도 높은 공연을 진행하는 게 아닌가. 하나만 준비한 건가 싶지만, 7세 반인 큰아이는 5개의 공연을 준비한 거에 입이 쩍 벌어진다. 수화, 치어리딩, 바이올린, 사물놀이, 단체곡 합창 등 종류가 다양하다.


단체곡 합창에서는 큰아이의 단독 내레이션이 예정되어 있어, 긴장이 좀 된다.

이번 음악회가 더욱 기대가 되는 부분은 아빠인 내가 부모님 오프닝 공연에 직접 참여를 한다는 거다.

거의 한 달간의 시간 동안 조별 인원들과 빠듯한 시간 할애하며, 공연 준비에 열심히였다. 이런 기회가 흔치 않으니, 각자 본인의 가족들에게 특히 유치원에 다니는 자녀들에게 엄마 아빠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주 귀한 추억이 될 것이기에. 나 역시 훗날 기억될 영상을 남기기 위해서다.



연말 시상식의 뒷모습이 어수선하고, 부산스럽고, 공연시간에 민감한 환경은 유치원이라고 별단 다르지 않게 긴장감이 상시 유지된다. 동선 하나하나 선생님의 지도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다가도, 하나의 공연이 끝나면 또다시 선생님의 진심 어린 위로와 응원과 수고들이 이어진다.

나는 공연을 보면서 뭔가 대견한 마음이 가득 채웠다기보다는 선생님도 아이들도 고생한 과정을 생각하니 왜인지 모를 짠한 안쓰러움이 좀 더 밀려왔다.


큰아이의 5개의 공연이 하나씩 끝나고 퇴장할 때마다 엄청난 목소리로 이름을 불러주다가도 잽싸게 사진도 찍어 둔다.

그리고 아들의 표정을 눈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놓치지 않고 끝까지 바라본다. 입을 앙 다문 모습이 뭔가 결의에 찬 모습이다가도 안도하는 표정도 깃들어 있어 보인다.


이제 큰아이는 이런 공연을 할 기회는 거의 없을 지도 모른다.

아이도 그런 아쉬움이 있을지 그건 잘 모른다.

이야기를 적다 보니 한번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난다.

까먹지 말아야지.


사실 이번 주 대부분의 시간에 큰아이의 표정이 안 좋았다.

말 수가 줄었고, 표정도 좋지 않았다. 말을 듣지 않아 혼나기 바빴고, 밥 먹는 것도 시원치 않았다.

그래서 공연하는 그 날도 걱정스러웠다.

걱정은 기우였는지, 거의 틀린 적 없는 동작과 노래는 걱정한 게 무안할 정도다.

항상 뭔가 정석 스타일인 아들답게 오늘도 큰 재미는 없었지만, 공연 자체로 만 보면 거의 완벽했다.

자랑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엄마의 성격을 닮아 그런지 참 FM스럽다.

순식간에 끝나고 다음날 일정 시간이 지나고 뭔가 깨닫게 되었다.


공연이 끝나고 다음 평일 아들의 근심 어린 표정이 해소되었다.

말을 듣지 않고 4살 터울 동생을 이유 없이 괴롭히던 부분이 많이 사라져 있다.

한차례 망치를 얻어맞은 기분이다.

무대에 올라 공연해야 하는 압박감과 집중되는 솔로 내레이션 때의 긴장감.

아들은 부담이었던 거다.


물어봤다.

아주 살짝 틀린 부분이 있었는데,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긴장했었단다.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틀렸는지도 모르는 부분을 아들은 꽤나 신경이 쓰였나 보다. 모든 공연이 무사히 끝냈다는 거에 대한 안도감이 밀려왔나 보다.

압박감은 사라지고, 더 이상 연습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에 해방감을 느꼈나 싶다.

이런 공연이 의미가 있나 싶다. 몇 개월 동안 학부모나 방문한 지인들에게 보여줄 공연을 준비하느라 부단히 연습했을 아이들의 모습이 짠하다. 하지만 성취욕을 느끼긴 위한 경험도 중요하긴 할 터.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난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아이를 너무 몰랐다는 거에 참 미안하다.

아이의 성격을 좀 더 자세히 알게 된 건 다행이다.

또래보다 유난히 말도 빠르고, 키도 큰 아이는 누구보다 섬세하고 꼼꼼한 성격을 가졌음을 알게 되었다.

그에 대한 성향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많이 다른 성향 때문에 부딪힌 그때의 행위는 이번의 경험으로 달라진다. 성을 넘어 아이에게 질문으로써 고민하게 되고, 나 스스로에게 질문의 방향을 질문하는 행위로 거듭하게 되었다.


좀 더 신중하게 질문하자.

좀 더 아이의 성향을 섬세하게 알아가자.


아이의 시각으로 다가가는 건 나로서는 매우 어려운 부분이다.

나도 지나고, 경험한 시기이나 기억이 나지 않는 사라진 존재이기에 공감이라는 건 까마득한 먼 얘기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내 기준대로 아이를 단정하지 말자는 다짐이 생긴다.


아빠는 너를 너무 몰랐다.

그래서 미안하다.


큰 아이의 마지막 유치원 공연이 끝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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