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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한한량 Feb 04. 2024

집에만 머물 때 발생하는 미안함

0점짜리 아빠가 되는 길

8평일 동안 지각하는 일 없이 회사에 성실하게 출근하고, 뭐 딱히 대단한 일 없이 퇴근시간에 맞춰 집으로 귀가했다. 아이들 재우고 나면 그 귀한 시간에 독서도 하고 지금과 같은 나만의 기록을 남겼다. 나름 올해는 발전된 모습을 기대하며 천천히 나아가고 있고, 좋아하는 걸 은근 진행 중이다.


그때뿐이고 집에 있을 때의 나의 얼굴 표정은 그러지 못했나 보다. 너무 나의 시간만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더 나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욕심부리다 보니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스스로 뭔가 해주길 바란 듯하고 그 욕심은 짜증으로 전달되거 같다.


큰 아이와 강요로써 독서를 권한 건 아닌가 싶다가도, 귀찮으면 스마트폰을 주며 좋아하는 게임을 하게 내버려 뒀다. 유튜브 시청은 게임이 지루하게 되면 보게 되는 덤이었을 것이다. 이제 막 8살이 된 아이에게 스스로의 통제를 바란 거 자체가 문제였는데 아내와 나는 알아서 하길 바랐던 게 문제다.


주말의 첫날에 다 같이 도서관에 같을 때 눈치챘어야 했다. 마트 갔을 때도 눈치챘어야 했다. 아니 눈치챘어도 그냥 넘어가거나 무신경했다. 귀찮았던 무책임한 부모였다. 지루해 하고 있을 아이의 행동을 애써 무시했다.




주말이 되어서 어디 외출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이들과 진심 어리게 놀아주거나 대화하는 일도 없었다.
오죽했으면 옆에 공원에서 공차러 가자고 말까지 했나 싶다. 물론 공놀이는 핑계고 공원 앞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 파는 각종 군것질거리를 사고 싶어서 였음을 안다. 공원에선 꽤나 많은 시간을 보냈어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 있었던 듯하다. 자기도 집에서 게임만 하거나, 유튜브나 보거나 하는 그런 빈둥빈둥한 하루가 지겨웠음이 분명하다.

결국 제대로 부모 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했으면서, 큰 아이를 크게 야단쳤다.
야단치면서도 많이 미안했다. 아이의 속마음을 묻는데 서툴렀고, 기분을 묻는 질문에 아이는 무서워했다.
대화에 철저하게 실패하다 보니 아이와의 관계가 점점 소원해지는 듯해 무섭다. 이제 겨우 8살인데 나중의 사춘기나 고등학생, 어른이 되었을 때의 단절이 온갖 소설로 뒤섞여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냉장고에 있는 반찬들 대충 꺼내고, 냉동실에 얼려둔 갈비 대충 구워서 밥을 차려도 잘 먹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아이들도 정성껏 만든 식사가 아니란 걸 잘 안다. 중복되는 건 없었어도 그렇다고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을 한 주 동안 먹지 않았던 것도 안다. 1주일의 주말 식사때 한 번쯤은 햄버거나 스파게티, 치킨, 피자같이 좋아하는 음식 먹었어도 되는데 사주지 못한 게 너무 마음에 걸린다.
그게 뭐라고.

월요일 유치원에 가서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 하다가 '주말에 우린 어디 갔는데 엄청 재밌었어'라든가 '주말에 아빠랑 같이 oooo 만들어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다음에 또 할 거야. 너희 아빤 해줘?' 이런 말 하면 우리 아이의 기분은 어떨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글을 적는 지금 얼굴이 화끈거려 뭘 어떻게 더 써야 할지 먹먹하다.

아이가 그러고 있을 때 아빠라는 사람은 자기만의 시간에 홀라당 빠져가지고선 시시덕 거린게 한심하다.
가장이라는 작자가 자기만의 시간만 생각했다. 이번 주의 아내도 마찬가지다. 그 부분 서로 인정했기에 망정이지 그것마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아이의 상처가 얼마나 컸을까.
어쩜 그럴 수가 있을까?

아이가 말을 너무나 안 듣는 건 분명 화가 날 만하다.
떼를 쓰고 원하는 걸 말하는 건 당연하다.
가족들이 다 있는 주말 시간 집에만 있으면 답답한 게 당연하다. 아이들이라면 특히 더.


모두 부모의 탓이다. 성향이 그렇다면 성향을 따라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고, 아이의 기분을 눈치채고 대화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얼마든지 함께할 수 있는 즐길 거리들이 많은데 하지 않았다.

다음 주 평일에는 아이들과 함게 할 수십 가지의 것들을 한번 나열해 봐야겠다.
그리고 매주 행동으로 옮겨 아이들이 지루해 할 틈도 없게 하자. 기억에 남게 하고, 월요일 유치원에 가서도 친구들에게 즐거웠던 일들을 해맑게 말할 수 있는 아이가 될 수 있도록 하자.

아이들에게 이번 주말의 시간은 참 별로였다.
주말의 머묾은 온통 부모 탓이다.
그 미안함을 기억하자.


아무것도 남지 않는 머묾은 다시금 없도록 하자.


[추억도 없는 기억나지 않을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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