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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욕을 삼키는 엄마가 되련다.

자식이 어렵다.

큰 아이는 언제나 어렵다. 첫째.. 처음... 나에게 모든 순간을 처음으로 알려주고 경험시켜 주는 이 존재를 만난 지 만 13년.. 아니 이젠 곧 만 14년이 되어간다. 10년 넘은 시간을 함께 했겄만 여전히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참 좋다.


엄마만을 찾던 아이, 엄마가 있으면 행복했던 아이 입에서

"엄마가 학교 앞에 오니 부끄러웠어요" 란다.


날 좋은 날, 하교 시간에 맞추어 운동을 나갔다. 아이 학교까지는 걸어서 30분이니 왕복이면 1시간, 딱 좋은 코스다.

학교 앞에서 깜짝 놀라게 해 줘야지 하고, 아이가 이용하는 길목으로 들어서니, 저 멀리 내 딸이 보인다.


가운 마음에 발을 빨리 놀려 가까이 다가가니 옆에 학교 친구가 서 있고 둘이 걸어오는 중이랬다. 아이가 날 보더니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친구와 가고 싶어 하는 눈치가 보여

"엄마 스타벅스 들렸다 갈게"라며 먼저 보내버렸다.


스타벅스는 무슨... 아이와 다른 길을 선택해서 집에 왔다.


며칠 뒤, 아이 집에서 나온 말이 부끄러웠다는 말이었다. 솔직히 속으로 충격을 좀 받았다. 난 좋아할 줄 알았으니까.

아이가 컸나 보다. 이젠 엄마보다 친구랑 걷는 게 더 좋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겉으로는 장난스럽게 신랑과 이야기를 나눴지만, 진짜 속으로 좀 많이 섭섭했다.



비몽사몽 겨우 일어난 아침부터 속이 뒤집힌다. 씻고 도시락 싸야지, 수업 준비해야지 바쁜 나에게 와서 오늘도 아니고 다음 주 날씨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누가? 큰 딸이..


"다음 주에 26도까지 올라간대 엄마. 더워서 어떻게 해?"


"그럼 반팔 입고 다녀 잠바 입지 말고"


"반팔이 없단 말이야"


머릿속에서 갑자기 화가 솟구치려 한다. 입을 옷이 없다고 투덜대는 통에 한 달 전 두 딸을 데리고  몰에 갔었다. 그때 옷을 사준다고 내가 쓴 돈이 얼마인데????


'옷이 없어???? 그럼 내가 사준 옷은??'


"엄마가 저번에 사준 옷 있잖아"


"그건 운동할 때 입으려 산거고"


 말을 뒤로 흘리며 샤워실로 들어가 버렸다. '대체 운동할 때 입을 옷을 왜 그렇게 고심하며 골랐는데? 아무거나 입으면 되지'라는 말이 목구멍을 뚫고 나오려는 걸 삼키며..


샤워를 하는 내 옆에서 계속 조잘거리며 옷이 없다고 투덜대는 녀석의 말을 들으며 나는 씻는 내내 속으로 욕을 삼켰다.

나오는 성질대로 아이에게 쏟아낼 말들을 머릿속으로 곱씹고 있자니 너무 상처가 된다. 아침부터 이 말들을 다 쏟아내면 나도 저 아이도 하루가 무너질 듯하다.


'사춘기가 오나?'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엄마와 항상 전쟁 같은 싸움을 했다. 아빠와 꼭 닮은 성격에 욱하는 성질머리 하며, 원하면 해야 하고 싫으면 못하는 절대 고집까지 장착한 나를 키우며 우리 엄마는 나 때문에 숨어서 울고 살았다고 한다.


내가 엄마랑 사이가 좋아진 건, 결혼을 하고 나서도 몇 년이 지나 첫 아이를 낳고 나서이다. 첫 아이를 낳고 나서 아이를 바라보며 했던 질문이 "엄마도 나 낳고 이뻐서 이렇게 쳐다봤어?"었다.


엄마가 그랬다. 내가 너무 이뻐서 힘들고 졸린데도 나를 계속 보게 되더라고. 내가 울 큰 딸을 그렇게 보고 있었는데..

첫 아이를 낳고 나서 엄마한테 너무 미안해서 참 많이 울었다. 잘해준 게 없고 속만 썩이고 마음만 아프게 한 딸인 게 너무 죄송했다.


그렇게 엄마와의 감정이 풀린 뒤로는 엄마가 무슨 말을 하든, 다 들어준다. 그게 엄마가 나에게 주는 사랑인 게 이제는 온전히 느껴져서 '듣기 싫다'는 마음이 안 생긴다.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사춘기를 엄마와 싸우며 지냈던 내 모습 때문인지, 네 명의 아이들이 나에게 보여주는 '반항'적인 모습에 나는 코웃음을 치는 엄마가 되었다.


큰 딸의 고집스러운 모습이 나의 모습인 걸 깨달은 순간부터, 난 이 아이와의 언쟁을 중단했다. 뭐라 하던 그 말들을 듣고 쏟구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튀어나오는 못난 말들을 내 속으로 삼켜 버리기 시작했다.


간혹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적당히 해. 나중에 커서 엄마한테 미안해질 거야."


그러면 아이는 동그란 눈을 떠서 '무슨 뜻?'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곤 한다.


'그래. 지금은 모르겠지'란 나의 속 이야기는 뒤로 하자.


너와 나는 단지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거뿐이라고 여기며 아이와의 대화를 '다음 시간에...'라는 암묵적 표현으로 넘겨버리는 중이다.


시간이 때로는 약이 되고 솟구치는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선사해주는 건 사실이니까.


큰 딸 또래의 엄마들이 나에게 하소연을 한다. 사춘기가 되니 자꾸만 감정적인 소모가 일어나 힘들어진다고 한다.

이해가 가면서도 문득 우리 딸은 어떤 마음인지 궁금해진다.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며 쉬는 내 옆에 큰 딸이 와서 함께 나란히 누었던 어느 날, 물었다.

"딸! 넌 엄마한테 화 안나?"


무슨 말이냐듯 못 알아듣는 아이에게 구구절절 설명을 한다.


"엄마가 너 못하게 하는 거 많잖아. 티브이도 많이 못 보게 하고, 게임도 안된다 하고.. 또 동생들 때문에 티브이 프로그램도 골라보게 하고... 음... 너 하고 싶은데 안된다고 할 때가 많으니, 너 엄마한테 화날 거 같아서 물어보는 거야"


그런 나의 설명을 듣던 아이가 대답을 한다.

"엄마가 하지 말라는 건, 나한테 안 좋으니 하지 말라는 건데, 기분이 왜 나빠요. 괜찮아요."


이런 감동이라니.... 아이의 대답에 가슴이 뭉클해져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아이를 바라본다.


그 와중에, 방에 들어온 둘째 딸이 이야기를 듣고 오히려 본인의 기분 나쁜 감정을 드러낸다.

 '그래 또 다른 내가 저기 하나 더  있었지... '


아직 아이들의 사춘기가 심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다.

기특하게도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큰 딸, 이제 사춘기로 접어들어 입술이 삐죽이 나올 때가 많은 둘째 딸~

그리고 별생각 없는 아들 둘.. 곧 차례차례 나랑 부딪히기도 하며 서로를 찔러대는 날이 오겠지만, 엄마는 화가 나 욕이 나도 삼켜볼게.

가시나무: 인터넷 출처 이미지

가능하면 우리 가시 돋은 말로 서로에게 가시를 꽂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시는 결국 자기를 보고하기 위해서 있는 건데, 사춘기를 겪어온 우리들도 결국 그 시기에 가시를 보이면서 우리 자신을 보호하려 했던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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