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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뽕삼 Sep 30. 2015

소규모 에세이 ; 내가 사랑한 시간 by 뽕

3인 3색, 같은 소재 달리 보기

아홉 번째 소재


내가 사랑한 시간


글 , 사진 / 뽕



# 라디오 듣는 시간

 - 네 목소리를 갖고 싶어


초등학교 6학년. 

친구들이 HOT와 젝스키스에 열광할 때 

난 ‘창작동요’에 마음을 빼앗겼다. 

물론 나도 그들 중 가장 좋아하는 멤버가 있었고, 

당장이라도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었지만 

진짜 좋아하는 건 ‘창작동요’였다. 

서정적인 가사를 티 없이 맑은 목소리로 듣고 있으면

 마음이 요동쳤다

FM 104.5 , 4PM <오후의 음악선물>

나도 노래 부르는 아이들처럼 

고운 음색을 가지고 싶었다

그 목소리가 탐나서 

시키지도 않은 노래 연습을 했고,

오후 네 시가 되면 주파수를 맞추고 

라디오 앞에 앉았다. 



당시 EBS에서는 창작동요로 선곡표를 채운 

<오후의 음악선물>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다. 

오후 네 시부터 다섯 시. 

나는 이 시간을 정말 사랑했다. 

친한 친구가 생기면 집으로 초대해 

‘나만 아는 귀한 것을 나눈다.’는 마음으로 라디오를 함께 들었다. 

라디오에 내 사연이나 동생의 사연이 나오면 

팔짝팔짝 뛰면서 기뻐했고, 

그 기쁨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공 테이프에 녹음을 했다. 

라디오를 통해 펜팔 친구를 구해서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그 때 그 아이도 많이 컸겠지? 



# 중학교 국어시간

 - 예쁜 표정으로 앉아 귀 기울여야 해


이마에 좁쌀 여드름이 올라오기 시작하던 때에 

내가 다니던 여자중학교에

총각 선생님이 새로 부임하셨다. 

하얀 얼굴에 테 없는 안경을 쓰고 

슬픈 눈빛으로 국어를 가르치던 선생님.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그 선생님을 좋아했고, 

자연스럽게 팬클럽이 생겨났다. 

당시 나는 

모두가 좋아하는 선생님은 좋아하지 않겠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스승의 날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을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선생님 선물을 사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친구가 고르는 선물만 봐주고 오려고 했는데, 

결국 선생님 선물을 사서 돌아왔다.

 무슨 선물을 드렸는지 생각나지 않지만 

편지와 함께 드렸던 것은 기억이 난다. 


  “제 꿈은 작가예요.” 


눈을 반짝거리던 국어시간 

 스승의 날을 맞아 감사 편지를 쓰면서 

왜 느닷없이 꿈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이후로 선생님은 날 눈 여겨 봐주셨다. 

내가 교내 및 교외 글짓기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자

 선생님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다. 

나는 선생님에게 받는 

‘다른 아이들과 차별화된 관심’이 좋았고, 

어느덧 국어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국어 과목이 있는 날은 잔잔한 설렘을 느꼈고, 

더 예쁜 모습으로 수업에 임하기 위해 

거울 앞에서 표정 연습을 하기도 했다. 


다수의 아이들이 엎드려서 잠을 자거나 떠들 때에도 

나는 수업에 집중했다. 

자연스럽게 선생님과 눈맞춤(eye-contact)하는 횟수가 늘었고, 

그 덕분에 선생님이 매우 가깝게 느껴졌다. 

흰 피부 때문에 유독 붉게 느껴졌던 입술과 

애잔한 눈빛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내가 그토록 수업을 열심히 들었던 것은 

피그말리온 효과였을까? 풋사랑 효과였을까? 



# 호주에서의 산책 시간 

- 이대로 시간이 멈추면 좋겠어


 2008년 1월. 나는 호주에 있었다. 

호주의 제주도라고 불리는 태즈메이니아 주의 론세스톤.  

그곳에서의 시간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당시 나는 타즈매니아 대학교 기숙사에 머물며, 수업을 들었는데, 

하루 일과는 오후 4시면 끝났다. 

그 이후 시간은 자유였다. 

기숙사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한 뒤 학교 주변을 산책했다. 

나는 그 시간을 참 좋아했다. 


잊을 수 없는 '밤 산책'과 '별무리'


한번은 숙소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밤 산책을 간 적이 있는데, 

그 때 잔디에 누워 보았던 별들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엄청나게 크고 밝았던 별 무리들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별들이 내 가슴으로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았던 호주의 밤하늘.


 그곳에서 한 달을 머물면서 많은 추억을 쌓았는데, 

나는 그날 밤 산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날 우리의 머리 위에서 수없이 반짝거렸던 별들을 

그들도 기억하고 있을까? 




쑥뽕삼의 <같은 시선, 다른 생각>

서른을 맞이한 동갑내기 친구 3인의

같은 소재, 다르게 보기 활동을 사진, 그림, 글로 표현한 공동작품모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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