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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번째 소재
글, 그림 쑥
나에게 있어 '사랑'이란,
상대를 위해
나를 '희생' 하는 것이다.
특히 이런 생각이
정말 강하게 들었던 이십 대 초반에,
나는 이 영화에 심취해 있었다.
첫 눈에 서로에게 반해
머리를 하얗게 비우고
서로를 갈망하는 젊은 남녀.
그들에게 집안의 반대,
주위의 우려,
뻔히 보이는 어두운 미래는
전혀 걱정이 대상이 아니었다.
결국 죽음의 길도 함께 걷게 되니까.
난 매일 같이 생각했다.
스무 살의 내가 자라,
스물일곱이 되면
꼭 이런 사랑을 하리라.
한 여름 사막보다 더 뜨겁고
그 길 한가운데 자리한
오아시스보다 더 아름다운,
그런 사랑과 희생을 보여주리라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런 영화였다.
사랑이 가냘프다고?
너무 거칠고, 잔인하고 사나우면서도 가시처럼 찌르는 게 사랑이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가 아프고 괴로워도,
희생이 따라도 상관없는,
그런 이유를 알려준 영화였다.
ⓒ 2015. (쑥) all rights reserved.
"엄마, 내는 꼭 저런 남자 만날기다."
"저렇게 잘생긴 남자는 니 안 만나준다."
"아니, 잘생긴 남자 말고.
내를 위해 고마 콱 죽어삘 남자 말이다."
"... 아이고 됐다 고마. 빨리 자자."
엄마는 저런 사람도 없고,
저런 사랑도 없다고 내게 말했지만
난 그 꿈을 품고 자라고 자라,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난 이제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을 쏟진 않는다.
단, 부러움의 눈물을 아주 조~금 흘리긴 해도...
이상과 현실은
엄마의 말대로 참 많이도 달랐으니까.
그래도
'사랑' = '희생'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나를 희생하는 것만이 사랑이 아님은 알게 되었다.
꼭 내가 희생하여 상대를 따르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까?
당신을 위해 내가 날 포기하고,
나를 위해 당신을 포기시키는
그런 희생이
정말 내게 행복을 가져다줄까?
그리고 영화 <댄싱퀸>이
내게 이 대사를 들려주었다.
니 꿈만 꿈이고, 내 꿈은 꿈도 아니야?
나는 결혼할 맘을 먹고 나서부터,
남자에게 알게 모르게
"나를 위한 희생"을 강요했던 것 같다.
자기 속 얘기를 잘 안 하는 이 남자가
일이 조금 힘들다고 얘기했을 때도,
그저 '조금만 참고, 힘내.'라고 말했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나는 왜 당신에게
나와, 훗날 우리의 삶을 위한 희생만을 강요했을까.
당신에게도 당신의 삶이 있고, 이루고 싶은 꿈이 있을 텐데.
스무 살의 내가 그토록 바라고 바랬던 희생은,
서른이 되어서야 그 모습을 바로 찾았다.
나와 너를 위한 희생이 아닌,
우리를 위한 희생.
나와 당신을 포기하지 않고,
우리를 조금 어르고 달래어 뒤로 한 발 물러섰다가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것.
그런 희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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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저게 진정한 희생이야."
"내가 너랑 같이 살아주는 것도 희생이고."
"...죽고싶냐."
<로미오와 줄리엣>이 젊은 날 내게 뜨거운 희생을 알려줬고,
<댄싱퀸>이 서른의 나에게 행복한 희생을 보여줬다.
이제 우리는
우리만의 영화를 만들어 가게 될 것이다.
주인공은 너와 나.
어떤 조연이 나타날지,
어떤 악당이 우릴 괴롭힐지 몰라도
한 번 잘 해보자.
쑥뽕삼의 <같은 시선, 다른 생각>은
서른을 맞이한 동갑내기 친구 3인의
같은 소재, 다르게 보기 활동을 사진, 그림, 글로 표현한 공동작품 모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