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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한 Oct 26. 2015

그로스해킹

그로스해킹이라는 말은 이 책을 읽기 전부터 각종 포스트를 통해 많이 보아왔다. 대강의 컨셉과 예시도 그러한 글을 통해 모호하게나마 알고 있던 것이었다. 기업, 특히 스타트업이 성장을 위해 마치 해커들이 해킹을 하는 것처럼 다양한 요소들을 깊이 분석하고 그 결과를 적용하는 방법론 혹은 접근법, 그게 내가 알고있던 그로스해킹의 개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로스해킹이란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그로스해킹이 그저 기존에도 존재하던 것을 새로운 용어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는 의견을 가진 글도 많이 보아온 터였고, 결정적으로 스탠포드 대학 스타트업 강의에서 Y Combinator 폴 그레이엄 역시 그로스해킹에 대해 부정적인 뉘앙스의 의견을 피력했기 때문이었다. 아 그냥 말장난이구나, 그래 어떤 기업인들 성장하고 싶지 않을까, 그런 노력을 두고 그로스해킹이라고 단지 이름을 붙였을 뿐이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로스해킹이라 할 수 있는 경험들을 하고 나서 이 책을 읽게 되어서일까, 이제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앞의 에서도 밝혔던, 부족한 자원으로 인해 흔히 말하는 마케팅- 이를테면 TV광고나 언론 노출, 런칭 행사 등을 할 수 없었던 환경에서 내가 고민하고 선택했던 방법들, 그게 다름아닌 그로스해킹이라 저자는 말하고 있었다. 오히려 저자는 지금까지 제대로된 정량적인 평가나 피드백 없이 이루어져 온 모든 기존의 마케팅 방법들은 모두 그저 경험과 직관에 의존한 과학적이지 않은 방법들이었다고 말한다.


그로스해킹의 핵심은 정량분석이다. 기존에는 정량적으로 분석하지 않던 것들까지도 정량화하여 표현한다. 가능한 모든 것들을 정량화하여 표현하고 그 변화를 추적한다. 그리고 그 수치들에 기반해 판단한다. 그 판단의 결과는 다시 정량적으로 피드백에 반영한다. 그로스해킹을 이야기하면서 종종 함께 언급되는 기법으로 퍼널 분석, 코호트 분석, A/B 테스트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 퍼널 분석의 예를 보면 위의 정량화에 대한 개념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기존에는 우리의 제품이 얼마나 좋은지 알리기 위해 TV 광고나 언론 노출, 쇼케이스 행사 등에 막대한 돈을 지출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프로모션에 노출되기를, 그리고 반응하기를 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 충분히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시키고 나면, 이제 남은 일은 그 프로모션에 노출된 사람들이 우리 제품을 많이 사기를 기도(?)하는 것이었다. 경험적으로 조금 더 성공적인 마케팅을 진행하는 노하우가 있었을지는 모르나, 근본적으로 직감과 운에 의존한 마케팅이었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로스해킹에서 중요시여기는 것은 다른 부분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제품에 노출되는지가 아니라, 우리 제품에 노출된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제품을 구매하는지 그 비율을 중요시 여긴다. 그리고 제품을 한 번 구매한 고객이 다시 우리 제품을 구매하는 비율, 그리고 그렇게 지속적으로 우리 제품을 구매하는 단골 고객이 새로운 고객을 유입시키는 비율을 본다. 이를 위해서는 제품 안에 위와 같은 수치를 추적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들을 넣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렇게 각각의 부분에서 비율이 정량적으로 나오면, 이제는 그 각각의 부분에서 유지되는 비율을 올리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용자의 유지율(리텐션)을 높이는데 집중하는 것을 퍼널 (깔대기) 분석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그로스해킹을 위해 A/B 테스트라든가 코호트 분석 등 다양한 기법이 활용되기도 하는데, 사실 그 기법들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로스해킹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건 단지 수단일 뿐이다. 핵심은, 가설을 설정하고, 지속적인 실험과 그에 대한 정량적인 평가를 통해 가장 효율적인 마케팅 방법을 찾고, 그 방법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끊임없이 테스트하면서 사용자들이 반응하는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해간다는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린 스타트업에서 말하는 방법론과 같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있던 마케팅과는 근본적인 접근법이 달랐다. 이건 마치 과학 논문을 쓰는 것과 같았다. 독립변인, 통제변인, 종속변인을 설정한다. 변화를 줄 것 (독립변인), 기존과 똑같이 유지되어야 할 것 (통제변인), 그리고 그 결과로 변화된 것 (종속변인). 예를 들어 아무런 마케팅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오로지 TV광고만 했을 때 앱 다운로드 수의 변화를 본다. 좀 더 구체적으로, 오전에 TV광고를 했을 때와 오후에 TV광고를 했을 때, 스포츠 이벤트 전에 했을 때와 뉴스 전에 했을 때를 비교한다. 다른 모든 변수들을 통제한 상황에서 하나씩만 바꿔가면서 그 변화를 보는거다. 이런 실험을 지속하고, 그 결과를 축적해가면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찾다. 이러한 방식은 정확히 과학의 실험 방법과 같다.


이런 측면에서 사실 그로스해킹의 대표적인 예라고 나오는 핫메일의 예시는 흥미롭기는 하지만 정말 그로스해킹이 맞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건 아주 간단하면서도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을 뿐, 다양한 실험 끝에 찾아낸 최적해의 느낌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핫메일이 그런 다양한 실험을 했었다면 이 책에서는 그런 다양한 실험의 과정들을 소개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그로스해킹이라는 것이 왜 이렇게 갑자기 어디서 툭 튀어나온 것일까. IT의 발전이 마케팅에까지 영향을 미친 결과물이 바로 이 그로스해킹이란 것이 아닐까. 구글의 출현과 함께 기존의 다른 산업 영역에 비해 IT 기반의 서비스들은 훨씬 빠르고 구체적으로 소비자를 분석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Google Analytics로 대변되는 온라인 분석 툴을 활용하면 지금 이 순간 전세계에 몇 명의 사용자가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지, 그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우리 서비스에 머무는지,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무엇인지, 우리의 광고가 몇 명에게 노출되고 있고 그들 중 몇 명이 우리 광고에 관심을 보이는지, 그리고 그들 중 몇 명이 우리 제품을 구매하는지, 그들의 나이는 몇 살인지, 그들의 학력은 어떠한지를 포함한 굉장히 다양한 지표들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 이렇게 고객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획득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적극적으로, 빠르게, 과감하게 모든 것을 통제하며 다양한 마케팅 기법들을 실험하는 것이 가능해진 느낌이다. 주로 IT에 포커싱하거나, 아니면 IT를 기존의 산업에 융합하는 형태로 시작하는 최근의 스타트업들이 '그로스해킹'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다양한 시도들을 굉장히 적극적으로 하는 것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잘 쓰여진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독자들의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낼 만큼 충분히 그로스해킹의 개념과 그 예에 대해 풀어놓지 못했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 그로스해킹이란 이런 모습이기도 하고, 저런 모습이기도 하다며 설명하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고, 무엇보다 이 책이 쓰여지던 시점에서 이보다 더 명확하고 자신있게 그로스해킹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임을 감안해야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그로스해킹이라는 개념을 널리 퍼뜨리는데 큰 역할을 했을 이 책은 충분히 그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특히 그저 뜬구름 잡는 소리 같았던 마케팅이라는 것에 대해 나와 같은 이학/공학 베이스의 학생이 쉽게 이해하고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제법 괜찮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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