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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반짝 Aug 03. 2022

우리는 엉망진창이었다.

루리 <긴긴밤>



나는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의 심정을 이해할  있을 것만 같았다.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나간 노든의 아내 마음을 이해할  있을 것만 같았다. 아직 죽지 않은 연인을 뒤로하고 알을 데리고 도망쳐 나오던 치쿠의 심정을, 그리고 치쿠와 눈을 마주쳤던 윔보의 마음을, 혼자 탈출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던 앙가부의 마음을, 코끼리들과 작별을 결심하던 노든의 심정을 이해할  있을 것만 같았다. 124



새벽에 일어나 문득 펼친 책장에서 만난 문장은 울컥하다 못해 눈물이 줄줄 흐르게 만들었다. 눈물이 차오르고 눈앞이 흐려진다는 표현을 실감할 정도로 글씨는 자꾸 흐려지고 눈물은 왈칵 쏟아졌다. 누군가 그랬다. 같은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어른과 그런 어른을 멀뚱히 바라보는 아이는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의 차이라고. 바다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하는 아기 펭귄의 마음에서 나는 무엇을 경험했던 걸까? 하루 종일 내리는 비를 보면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자꾸 눈물이 난다. 노든, 치쿠, 윔보, 아기 펭귄이란 단어만 떠올려도 곁에서 내가 그들을 다 지켜본 것 같아서, 나 혼자 ‘긴긴밤’을 보낸 게 아닌 것 같아서 자꾸 마음이 시린다.



나는 절벽 위에서 한참 동안 파란 세상을 바라보았다. 바다는 너무나 거대했지만, 우리는 너무나 작았다. 바다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지만, 우리는 엉망진창이었다. 124쪽



아기 펭귄이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바다를 보면서 다른 동물들의 마음을 이해한 장면을 말하기 전에 이런 생각을 한다. 꼭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이 세상은 거대했지만 나는 너무 작았다. 이 세상은 아름다웠지만, 나는 엉망진창이었다.’ 라고 들려 하루 종일 눈물바람이다. 아마도 현재의 내 상태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매일 하루살이처럼 하루를 버티지만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늘 지배적이다. 계획도 없이 눈에 보이는대로 해치우고, 그렇게 보내다 보면 잠들 시간이 다가온다. 하루를 되돌아보면 정리된 건 하나도 없이 엉망진창이고, 또 그렇게 보낼 내일이 예상되는 게 요즘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엉망진창이 괜찮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엔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삶인데, 대부분 다 그렇다고, 나만 그런 게 아니니 아름다운 이 세상을 바라보라고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여기, 우리 앞에 훌륭한 한 마리의 코끼리가 있네. 하지만 그는 코뿔소이기도 하지. 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군그래.” 16쪽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115쪽~116쪽



그러면서 굳이 나에게 앞으로 더 ‘훌륭한’ 내가 되라고 말하지 않는 것 같아 더 뭉클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나 자체로 훌륭하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코뿔소 노든을 돌봐주던 코끼리들이 바깥세상을 향해 망설이던 노든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중에 노든이 아기 펭귄에게 똑같이 말해 주었던 것처럼, ‘난’ 이미 훌륭하니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도 된다는 말처럼 들렸다. 훌륭하다는 말이 뭔가 꼭 잘해야 하고, 뛰어나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존재 자체에 의의를 두는 것처럼, 누군가 나를 믿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노든과 아기 펭귄이 내디뎠던 낯선 세상으로의 발걸음은 두려움만이 지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저 바닷물 속으로 곧 들어갈 것을,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을,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 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125쪽



인생에서 반짝였던 시기는 누구나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순간일 때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지속적일 수도 있다. 그리고 아직 그 반짝임이 오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보통 순간의 반짝였던 기억을 가지고 오랫동안 긴긴밤을 견뎌내는 게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렇게 긴긴밤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받으며 자란 아기 펭귄은 강했다. 코끼리 무리에서 사랑 받으며 세상을 향했던 노든처럼, 자기 새끼도 아닌데 기꺼이 알을 품었던 보쿠와 윔보처럼, 그들이 보여주었던 연대는 아기 펭귄이 긴긴밤을 이겨 낼 힘을 만들어주었다. 노든의 상처와 분노를 가라앉혀 준 것도 사랑이었고, 그 사랑을 아기 펭귄에게 되돌려 준 것도 사랑의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까지도 누군가에게 계속 사랑을 빚진 자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이렇게 버틸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외면한 사랑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사랑 받으며 자랐다. 그걸 잊어먹었거나 부족하다고 느낄 뿐, 나를 사랑한 사람은 이 세상에 분명히 있고 있어 왔다. 그 사람이 단 한사람이었대도 그걸로 족하다. 그리고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야 할 때다. 지금의 상태가 엉망진창이더라도 훌륭한 코뿔소 노든처럼, 훌륭한 아기 펭귄처럼 진정한 내가 되는 일만 남았다. 그리고 아기 펭귄은 스스로 이름을 찾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 삽화에서 펭귄의 무리에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던 펭귄은 더 이상 아기 펭귄이 아닌 이름을 찾아가고 있다고 여겼다. 노든이 굳이 아기펭귄 이름을 지어주지 않아도 찾아낼 수 있다고 한 것처럼 우리도 스스로의 이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시작되었다. 나를 비롯해 우리는 이미 이 곳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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