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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반짝 Sep 06. 2022

나는 안중근의 ‘대의’보다도, 그의 가난과 청춘과 그의

김훈 <하얼빈>



나는 안중근의 ‘대의’보다도, 실탄 일곱 발과 여비 백 루블을 지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그의 가난과 청춘과 그의 살아 있는 몸에 관하여 말하려 했다. 306쪽


몇 년 전 우연히 카페에 들고 간 『안중근 재판정 참관기』에서 한 장의 사진을 보고 한참 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그 사진은 하얼빈에서 암살을 앞둔 안중근, 우덕순, 유동하의 마지막 기념사진이었다. 의거 3일 전에 마지막을 예감하듯 이발소에서 머리를 단장하고 의식을 치르듯 찍은 사진이었다. 왜 이렇게 이 사진이 나를 사로잡았을까? 눈물이 맺히고 마음이 울컥하게 만들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안중근 의사의 나이는 31세, 우덕순은 34세, 유동하는 19세 라는 나이(『하얼빈』에서는 안중근과 우덕순이 동갑으로 나온다) 때문이었을까? 그 이유를 알고 싶어 안중근 의사의 재판이 열린 재판장으로 기꺼이 들어갔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한반도를 넘어 동양 평화에 위협을 가중 시키는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이유를 낱낱이 들여다봤다. 거기에 ‘의병으로서 행한 일이기에 전쟁포로로 이 재판장이 있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국제공법, 만국공법에 따라 처리되기를 희망한다.’고 자신의 죄를 당당히 밝히는 안중근 의사가 있었다.


그래서 『하얼빈』을 마주했을 때 당당했던 안중근 의사와는 좀 다른 이야기일 거라 예감했다. 『칼의 노래』에서 외로웠던 이순신 장군을 목도 했던 것처럼 안중근의 가난과 청춘과 그의 살아 있는 몸에 관한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약간은 예상을 할 수 있었다. ‘대의’에서 한 발짝 벗어 났지만 오히려 내면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간 안중근 역시도 외로워 보였다. 하지만 처연해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 운명을 찾아갔을 뿐, 때론 왜 그런 선택을 해야 했는지 ‘동양 평화’라는 이유 외에 자신의 직감을 적확하게 설명할 수 없어도 나 또한 그렇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향해 자신의 살아 있는 몸을 밀어 또 다른 생명을 해하려는 행위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안중근의 정치성은 이토와 코레아와 세계 공통어 ‘후라’를 그의 한 몸의 리듬으로 연결시키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을 거쳐서 대련에 닿는 철도를 따라서 전개되고 있었다. 217쪽


저자가 안중근의 ‘대의’에 집중했다면 이토를 향해 총을 쏜 순간을 굉장히 중요하게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중근이 이토를 향해 6초간 7발의(소설에서는 한발이 남은 걸로 설정했다) 총성이 울린 장면은 말 그대로 순식간에 지나갔고, 사실만 전달하려는 것처럼 간결했다. 웅장하지도, 그 순간을 정지시켜 장황하게 설명하지도 않았다. 이토의 마지막 순간도 그저 ‘이토는 곧 죽었다. 이토는 하얼빈역 철로 위에서 죽었다.’ 라고만 표현했다. 이토가 도착하는 순간을 요란하게 맞이했던 많은 얽힘과 목적을 뒤로한 채, 이토가 하얼빈에 왜 오는지를 알 필요조차 없다고 느낀 안중근이었다. 이토가 온다고 하기에 하얼빈으로 향했을 뿐, 거기서 그는 깔끔하게 목적을 달성했다. 이토를 저격한 뒤 ‘코레아 후라’라고 외친 것처럼 그는 이 순간을 위해 존재하고 존재했던 것처럼 보였다.


안중근은 한 나라도 어쩌지 못한 거대한 운명을 어떻게 혼자 짊어질 생각을 했을까? 안중근이 이토를 쏜 총알이 당연하게도 우리나라도, 동양 평화도 지켜내지 못했지만 ‘그 사내는 땅에 결박되어 있으면서도 땅 위에 설 자리가 없었다.’라고 남편 안중근에 대해 말했던 김아려처럼 그는 자신의 설 자리를 내어 기꺼이 ‘대의’를 행했다. 그는 가난했고, 포수였지만 무직이었고, 젊었다. ‘도마’라는 세례명을 받은 천주교인이었으며, 자신이 한 행동의 결과를 세상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알고 있었다. 그가 걸어간 묵묵했던 길에 반해 이토의 잘못된 길은 오만하게 드러났다. ‘이 세계는 인간이 만드는 구조물이다. 이것이 우리의 앎이다. 우리의 앎은 사물을 향해 나아간다.’라고 생각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이것이 제국의 길이다.’라고 오도를 향하는 모습은 안중근과 대조적일 수밖에 없었다. 길은 각자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길을 어느 누구도 틀안에 가둬 단정 지을 권리는 없다. 이토의 그런 생각에 책을 읽다 말고 ‘헛소리!’라고 일갈할 뿐이었지만 안중근은 그를 향해 총을 쐈다. 안중근의 총알이 이토의 몸을 뚫지 못했다면 또 다른 이의 시선처럼 어쩌면 우리는 ‘일본에게 완벽하게 종속’ 되었을 수도 있다. 


저자의 의도처럼 왜 안중근은 이토를 향해 총을 쏠 수밖에 없었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그는 총을 쐈지만 깨어있는 지식인이었다. 이 책에는 안중근의 정치성을 거의 드러나지 않아 자칫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의문으로 남을까 염려된다. 하지만 『안중근 재판정 참관기』에서 바라본 그는 교육으로 깨어 있었고, 또렷한 근거를 바탕으로 제국주의에 휩쓸리는 동양을 거시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미래를 염려하는 행동파로 보였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의 동양을 보며 안중근 의사는 무슨 생각을 할까? 저자가 ‘영웅’ 안중근을 걷어내고 ‘인간 안중근’에 집중해 ‘가장 치열했던 일주일’을 표현한 것도 어쩌면 내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은 잠시 내려둔 채, 자신의 삶을 잘 지켜내는 것만으로도 결은 많이 다르고 조금은 억지스럽더라도 치열함의 근본은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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