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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반짝 May 25. 2021

'전쟁'의 슬픔에 잠식당하고 말았다.

로즈메리 웰스 <붉은 조각달>


  성장소설이라고 하면 환장을 한다. 유년시절의 기억에서 더 멀어질수록 나를 끈질기게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은 그 시절의 추억들이다. 그 추억이 무엇이 간대 나를 성장 중이라고 말하며 계속 머무르게 하는지 알 수 없지만, 문학을 통해서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을 메우려 하는 하는지도 모르겠다. <붉은 조각달>을 읽게 된 연유도 그랬다. 작가며 출판사가 모두 낯선 상황에서도 '성장소설'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무척 예쁘다는 첫 이미지 이외에도 왠지 모를 슬픔이 묻어나는 것이 감지됐는데, 자꾸 올라오려는 그 슬픔을 애써 무시하며 눌러 버렸건만, 결국 그 슬픔에 잠식당하고 말았다. 


  쉴 틈 없이 꼼짝 않고 책을 읽을 수밖에 없던 이유는 잠시 시선을 돌려 버리면 내가 느끼고 있는 이 분위기에서 빠져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또한 열여섯 살 소녀 인디아의 슬픔을 놓쳐 버리고 구경만 하게 될 것 같아 두려웠다. 이 책의 배경이 전쟁이라는 사실, 그리고 미국의 남북 전쟁 가운데서도 가장 치열했던 샤프스버그 전투가 배경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아무리 성장소설이라고 해도 책을 집어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풀어낼 곳조차 없는 남모를 슬픔에 잠식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흐트러지는 이 마음을 가누려 애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마음이 둘 곳 없다고 이 책을 피해버렸다면, 잊힌 전쟁에 관한 진상은 결코 내게 와 닿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는 전쟁의 안타까움을 전하기 위해 <붉은 조각달>을 썼다고 한다. 12년 간 남북 전쟁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해서 한 권의 책을 썼다는 사실 앞에 숙연해 지면서도, 한 소녀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의아했다. 그러나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이란 사실을 부정할 수도 없어, 오랜 시간 동안 조사하고 연구한 전쟁의 참상을 어떻게 펼쳐낼지 궁금했다. 1861년부터 1865년까지 4년 동안 일어났던 남북 전쟁이 북군의 승리로 끝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버지니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시작부터가 마음 아팠다. 그러나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자는 마치 전쟁의 참상이 다가오지 않을 것처럼 태연하게 인디아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차분함 때문에 전쟁이 배경이 된 소설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인디아의 주변을 살피며 그 소녀가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에만 관심이 갔다. 트림블 가의 아들인 에모리와 실험실에서 지식을 탐하는 것을 보고 인디아가 대학에 갈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앎에도 전쟁의 배경을 배제하고 훌륭하게 성장해 나가기를 바랐다. 에모리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인디아의 재능은 빛났고, 팍팍하게 돌아가는 삶의 잔상 속에서도 그들의 꿈이 이뤄지길 바랐다. 그들에게 처해진 환경이 너무 눈에 띄지 않았기에, 혹은 너무 멀리 있는 것처럼 흘러갔기에 이후에 처해질 고난에 대해서 아무런 대책이 없기는 독자인 나도 마찬가지였다. 12년 동안 조사하고 연구한 흔적을 남기듯, 너무나 평이하게 흘러가다가 고통은 점진적으로 커져만 갔다. 제발 그만 두라고, 더 이상의 고통을 주는 것은 잔인하다고 스스로 되뇔 때까지 전쟁의 잔인함은 그칠 줄을 몰랐다. 


  전쟁이 일어날 당시 12살이었던 인디아는 넉넉하지 않았지만, 아빠와 엄마 남동생, 정신이 오락가락 하신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잔잔한 행복도 잠시, 전쟁은 그 모든 것을 앗아갔다. 어느 날 갑자기 전쟁이 닥쳐와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갔더라면 한 무더기의 고난을 한꺼번에 감당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전쟁의 양상에 따라, 북군과 남군의 대치 상태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상황 속에서 전쟁은 그들의 피부에 조금씩 와 닿더니, 급기야는 피부를 뚫고 나와 그들을 철저히 파괴해 버렸다. 과학자를 꿈꾸는 에모리는 병사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도록 의학의 수준을 끌어 올리려 하지만, 전쟁 중에 그들의 의식을 바꾸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총알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 단순한 질병으로 인해 병사들이 목숨을 잃어갈 때는 할 말 조차 잃어 버렸다. 인디아의 아빠도 그런 질병을 앓고 있어, 에모리에게 도움을 청해 약을 받았지만 아빠는 이미 전쟁터로 떠난 뒤였다.  


  인디아는 에모리가 준 약을 아빠에게 전해주면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아빠를 찾으러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옥수수 밭이 순식간에 말끔하게 베어졌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끔찍한 샤프스버그 전투의 잔상을 목격하게 된다. 수많은 영혼들이 하늘로 올라가고, 붉은 조각달이 떠 있는 신비로운 광경까지 목도하는 인디아를 보는 순간부터 희망을 잃어버렸던 것 같다. 아빠가 살아서 돌아올 거라는 믿음, 전쟁이 끝나면 에모리와 함께 연구를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한 마을에서 북군과 남군의 병사가 갈리는 애매모호한 현상까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북군이 승리하고 전쟁이 끝나 평화가 깃들고, 남군은 패배했지만 노예제도가 없어질 거라는 역설적인 긍정조차도 무의미할 정도의 잔인하고 또 잔인한 전쟁의 참상은 수그러들 줄 몰랐다. 


  과연 그곳에 신이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전쟁의 참상은 고난 받을수록 깊어지는 그들의 신앙과 극명하게 비교 되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건만 아빠는 결국 떠나가고, 인디아의 가족은 빈털터리가 되어 삭막한 외삼촌네 집으로 들어간다. 인디아에게 더 이상 아빠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디 그들뿐이랴. 한 가정의 가장으로, 자식으로, 연인으로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덧없이 쓰러져 간 남자들이 너무나 많았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에모리와의 연구 자료마저 같은 동네의 청년에 의해 불살라지고, 모든 것이 파괴되는 절망을 맛본 인디아에게 힘을 내라는 말조차 건넬 수 없었다. 대학을 갈 수 있는 도시로 가라는 위로도, 에모리가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란 한 줄기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인디아는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그 모든 일을 감내하고 희망을 놓지 않았고, 북군 장교를 돕기도 했으며, 에모리와 극적으로 만나고, 마음속에 품은 뜻을 펼치기 위해 도전하고 있었다.  


  철저히 남북 전쟁 당시로 독자를 끌어들였음에도 현재 진행형으로 끝을 맺은 소설에 잠시 멍해지기도 했다. 더 이상 파괴될 것이 없었기에 전쟁의 끝이 보였지만, 그 이후의 삶이 궁금했기에 여전히 진행 중인 결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저자가 인디아의 삶을 단정 지어준다고 해서 단정 지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모든 상처를 극복하고 에모리와 같이 연구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재회하기만을 바랐다. 인디아 뿐만이 아니라 전쟁의 폐해를 겪은 모든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똑같은 참상이 일어나질 않기를 진정으로 바랐다. 바램과는 다르게 현실은 여전히 전쟁과 기근, 재난과 가난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 가운데서도 아이들이 자라나고, 희망을 품는다는 사실을 아프게 깨달았기에 그 참상을 어른들이 조금이라도 막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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