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이 없는 일상의 연속
은에게
얼마 전 네게 전화가 왔을 때 너무 반가웠어. ‘어떻게 지내?’라는 질문과 함께 우리는 1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폭풍 수다를 떨었지. 내가 ‘와 우리 1시간이나 통화했어’라고 말하니 네가 ‘예전보다 적게 했네’하는데 얼마나 웃기던지.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참 가깝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 너는 그곳에서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고, 공부도 참 열심히 하더라. 나는 육아도 열심히 하고, 일도 조금씩 하고 있다고 말했지. 나이대가 비슷한 우리가 이렇게 180도 다른 삶을 살고 있다니 너무 신기했어.
한참 통화 중에 ‘우리의 삶에 대해 써보자.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 대해서’라는 말을 했지. 무엇을 적으면 좋을까 하다가 얼마 전에 회사에 복귀한 이야기들, 그리고 워킹맘이 되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들, 생각들에 관해 적어보려고 해
빨리 회사에 복귀하고 싶었다
7개월 동안 아기를 키우며 매일 들었던 생각이 있었어. ‘회사에 복귀하고 싶다’. 매일매일 다른 육아 일상으로 인해 거의 좀비 같은 하루들을 보내고 있던 나는 어쩌면 그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 하루라도 푹 자고 싶었던 날이 많았고, 평일엔 어쩔 수 없이 육아를 도맡아 하면서 지칠 때도 있었어. 회사에 복귀하면 내가 짊어진 ‘육아의 무게’가 조금은 덜어질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었지.
또 회사에 복귀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나를 찾고 싶어서’였어. 주변 친구들이 이직해서 멋지게 회사에 적응하는 모습들, 프로젝트를 성공해 승진하는 모습들을 보며 ‘나는 지금 뭐 하고 있지’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나 봐.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다양한 생각들이 나를 짓눌렀고 불안하게 했어.
일을 찾기 시작했다
남편이 집안일에 관해 무심코 던진 이야기들이 나에겐 화살이 되어 오기 시작하자 나는 더욱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항상 집에 있는 사람’이 되기는 싫었던 것 같아. 언제든 집에 있어서 뭐든 대신 일을 처리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싫었다고 해야 하나. 수동적인 사람이 돼가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던 것 같아
일을 막상 알아보려고 하니 아기가 없을 때 일을 찾던 거랑은 정말 많이 다르더라고. 우선 아기 어린이집 맡기는 시간을 고려해야 했고, 등 하원을 내가 도맡아 해야 했기 때문에 너무 먼 곳은 지원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일까? 지원하는 곳도 적었고, 그나마 넣은 곳에서는 서류 탈락을 하곤 하더라고. 남편 직장과 가까운 곳에 사느라 내가 기존에 일하던 지역과는 너무 멀어진 상태여서 어디 한 곳 쉽게 지원할 수 없었어.
출산하기 4개월 전까지 일했는데도 괜히 그 공백이 길게 느껴지고, 갑자기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 ‘너무 일찍 결혼했나?’, ‘사회에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아기를 가졌어야 하나?’ 예전에는 내 직종이 프리랜서도 되고, 기업에서도 일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는데, 이제는 그거에 대한 메리트를 못 느낀다과 해야 할까? 그냥 막막하기만 하더라고
현실과 점점 타협하기 시작했다
부끄럽지만 난 빨리 일을 구하고 싶어서 현실과 점점 타협하기 시작했어. 경력도 제대로 쳐주지 않고, 페이 낮은 곳은 쳐다도 안 보겠다는 다짐과는 달리 오는 일을 막지 않게 되더라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지금 따져봤자 일하는 시간을 미룰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왜 이렇게 항상 마음이 조급한 걸까. 그저 나를 써주는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된 것 같아. 한 곳이었으면 정말 용돈 벌이도 안 되겠지만, 두 곳을 이번에 면접 보게 되면서 같이 일을 병행하게 됐는데 처음에는 감사한 마음이었다가 벌써부터 버거운 마음이 든다.
어린이집 보낸 그 짧은 시간에 일을 얼른 끝마칠 수 있을까, 육퇴 하고 내가 마음을 잡고서 일을 할 수 있을까. 이 두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점점 복잡하게 했어. 내가 이 고민을 말하니까 주변에서는 ‘네가 선택한 일이야’ 이러더라. 그래 맞는 말이야. 내가 선택한 일이지. 그런데 부담되는 걸 어떡하라고. 내 마음 상태가 이랬다 저랬다 어떤 상태인지 가늠이 되지? 참 마음이 복잡해
회사에 복귀했지만
여전히 독박 육아 중
결국 그렇게 조금씩 일을 하기 시작했어. 아기는 10시부터 3시까지 맡기고, 나는 그 사이에 촉박하게 일을 시작했지. 아기가 어린이집에 적응했으니까 어느 정도 규칙적으로 일할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웬걸 아기가 계속 아프기 시작하더라고. 우선 콧물은 기본적으로 달고 살아서 거의 일주일에 한 번, 많게는 세 번까지도 소아과를 가게 되고, 또 콧물이 나오면 요즘엔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어서 가정 보육을 계속하다 보니 낮에 일을 할 수가 없더라고.
아기가 잠드는 낮잠 시간, 30분에서 많게는 1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일을 막 처리하는데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하… 제시간 안에 할 수 있나?’하는 생각들이 나를 괴롭히더라고. 그리고 아기랑 하루 종일 놀아주며 집안일을 하고 육퇴를 하면… 완전 기진맥진 해지는 거 있지? 그래도 참고하다 보면 새벽 5시… 다음날 너무 힘들더라고… 아기랑 이유식 전쟁하고, 씻기고, 놀아주고, 책 읽어주고 재우러 들어가고…
회사에 복귀했지만 여전히 평일에는 내가 전담해서 봐야 했기 때문에 거의 독박 육아 느낌으로 하루를 보내게 됐어. 남편이 퇴근하면 아기가 자고 있으니까 사실상 모든 걸 하는 건 엄마더라고. 집안일, 육아, 업무가 한꺼번에 쌓이다 보니까 스케쥴러는 빽빽해지고, 하루에 꼭 해야 하는 일을 못하게 되는 날이 점점 많아지더라고. 계속 이런 일상이 반복되니까 그냥 회사를 다니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 난 진짜 어떡하면 좋을까?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자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지만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just do it’이야. 일단 해보는 것. 워킹맘으로서 일을 하며 아기를 돌보는 건 처음이니 그냥 잘해야 한다는 생각들 다 내려놓고 그저 도전하기.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듯해.
일을 하는 것 자체도 어떻게 보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시작한 일이니. 우선순위를 잘 정해서 해보려고. 언젠가 내 생각이 난 다면 꼭 기도해줘.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보다는 사랑하면서 하기를.
보고 싶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