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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잎 Feb 26. 2024

9-6 직장맘, 가사노동의 강도는?

어쩔 수 없어. 여자가 더 많이 해야 해


연장반에서 꼴지로 가는 아이


9AM-6PM로 일하면서 가장 나를 괴롭혔던 건 집안일이였다. 퇴근하고 서둘러서 아이를 하원하려고 하면 7시 10분이 늘 간당간당했었고, 아이는 때로 기다림에 지쳐 울기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느날은 연장반 선생님이 이런 말도 해주셨다. "00가 친구들이 먼저 하원하면, 우리 엄마도 곧 올거거든? 하면서 씩씩하게 말하더라고요. 기특했어요." 연장반에서 본인 나름대로 시간을 잘 보내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이 일찍 끝나서 6시에 하원하는 날이면 뛸뜻이 기뻐하는 아이를 보며 매일 6시에 하원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했었다.


또한 두돌 전에는 얼마나 많이 아프던지. 회사에 죄송하다고 하고 급하게 연차를 소진했던 기억이 강렬히 남아있다. 펄펄 열이 끓고, 코에 바람만 들어갔다 하면 누런 코가 나오는 아이를 보며... 어린이집에서 오래 있어서 그런가 늘 고민을 했었다. 그 빈도가 얼마나 많았으면, 남편 회사 상무님은 "왜 너희 아가는 자주 아픈 것 같냐?"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남편은 워낙 서글서글한 성격이라 "상무님도 아기 키워보셨잖아요. 어렸을 땐 자주 아파요."라고 말했다지만, 나는 회사 눈치가 엄청 보이는 상황이었다. 아이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매번 아기방에다가 수건을 걸어놓고 자고, 면역력에 좋다는 약도 먹여가며 열심히 노력했지만 금방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골칫덩이였던 저녁 메뉴


이렇게 아이를 하원하고 나면, 집에서 기다리는 것은 편안한 휴식이 아니라 저녁 준비였다. 아이 밥과 반찬을 만들었고,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면 국물을 자주 먹이는게 좋다고 해서 국물도 끓이고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어른밥까지 해야하니. 정말 정신이 없었다.


나는 요리를 잘하는 편이 아니다. 무조건 유튜브 선생님이 있어야 요리를 할 수 있고,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거라곤 김치볶음밥이 전부였다. 그런데 남편 입맛이 워낙 고급이라 매일 똑같은 메뉴는 못 드신댄다. 그렇다고 직접 해먹으라고 하면 그냥 배달 음식이 습관이 된 사람이라 다른 메뉴를 만들려고 노력했었다. 초보자 분들은 아시겠지만 요리를 자주 하는 편이 아니었어서 어느 날은 성공이였고, 어느 날은 실패인 날도 있어서 남편의 반응도 극과 극이었다. 열심히 했는데 요리가 맛이 없으면 그냥 시킬 걸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렇게 배달 음식을 먹는 날이 늘어갔고, 살도 점점 쪄갔다. 배달 음식도 질리는 기분을 아는가. 나랑 입맛이 다른 남편이라 시키고 싶은 메뉴도 달랐고, 맛도 없고 영양가도 없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통장 잔고도 배달 음식을 시키는 만큼 훅훅 줄어갔다. 정말 이래선 안되겠다 싶었고, 단축을 하게 되면 단축한 시간에 재료들을 구입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갖게 되었다.




아이 씻기기, 재우기


겨우 밥을 먹고, 이제 좀 쉬려고 하면 아이를 씻기고 재우는 시간이 다가온다. 단축을 안할 땐 진짜 요리하고, 밥먹고, 쉬지도 못하고 바로 육아의 시작이었다. 아이 씻기는 것은 보통 남편과 분업을 해서 진행이 됐고, 재우는 것은 대부분 내몫이었다. 남편은 또 아이를 씻기고 로션을 바르고 옷을 입히는 것까지 하지 않았다. 항상 아이를 씻기고 "엄마한테 가"라는 말을 한다. 그러면 나는 로션을 바르고 옷을 입히고 재우는 것을 하게 되는 거다. 아이가 잘 따라주면 순조롭게 진행되는데 워낙 개구진 아이라 도망가는 아이를 붙잡고 하다보면 정말 진이 빠지고, 원하지 않던 협박도 하게 되고... 내 삶이 정말 고갈됨을 느꼈다.


우리는 분리수면은 일찍한 편이었지만, 스스로 잠드는 것은 아직 알려주지 못했다. 내년에는 꼭 스스로 잠드는 연습을 시킬 예정이다. 아이를 재울 땐 책을 한 5권 정도 읽어준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또 책으로 인해 표현도 풍부하고 말도 잘하는 아이라서 마음이 지치더라도 책을 읽어줬다. 너무 힘들어서 책을 읽지 않고 자는 날이면, "기분이 안 좋아"라고 표현하는 아이였기 떄문에 늘 그것을 채워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아이를 재우고 일어나면 되는데, 매번 함께 잠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잠들어 버리는 나를 항상 자책했다.




집안 청소


여느 아이집처럼 우리집도 아기 장난감들이 거실에 있었다. 그랬더니 아이가 놀고 나면 정말이지 못볼꼴이 됐다. 특히 우리집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거실이 보이는 형태인데, 거실에 널부러져 있는 것을 보면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지금은 내가 이 부분을 해결하려고, 아이 방에 모든 장난감을 넣었고 들어가지 않는 것은 버렸다. 그랬더니 평화가 조금은 찾아왔다)


아이를 재우고 나왔을 때 거실을 보면 스트레스가 밀려왔고, 저녁 설거지조차 안되있는 것을 봤을땐 더 스트레스였다. 남편이 새벽 출근하느라 더욱 집안일에 손을 아예 안댈 때면 정말 머릿속이 아득해지고 숨이 막혀오는 기분이었다. 이해하려고 정말 노력했지만, 하루 이틀이지. 그게 1년을 넘어가면 이제 한계에 다다른다.


어느날은 집에 놀러온 한 친구가 "너희 집 아예 관리가 안되는데?"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을 듣고는 솔직히 상처를 받았고, '나도 정말 어쩔 수 없어...'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나자신조차 집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자 더욱 더 육아 단축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 설 명절에 가족중 어르신을 봬러 갔었다. 어르신은 나한테 이렇게 물으셨다. "아기 보는 거 힘들지?" 나는 이 말에 "일하고, 아이 보고, 집안일 하는게 힘드네요."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어르신이 "원래 여자가 더 많이 해야 해. 남자는 일만 하면 끝이지만, 여자는 할게 많아. 여자가 더 해야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말을 들었을 때 괜히 마음이 울컥했고, 정말 내 상황과 똑같아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내 근무 환경을 바꾸기로 했고, 육아 단축을 더욱 추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육아 단축 이야기를 시리즈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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