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리 Dec 05. 2015

일기에 관하여

내가 기록하는 이유

얼마 전 고등학생  때부터 20대의 초반까지 썼던 일기장을 보게 되었다.

그곳에는 엄마의 일기장을 몰래 보았던 일, 한동안 눈물짓던 짝사랑을 혼자 이별하던 일, 수능 시험 직전에 혼란스러운 마음과 직후에 망연자실했던 내가 있었다.

수능 이후 진로 결정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던 나는 뒤늦게 열망을 품은 학과에 어렵사리 들어갔지만, 한창 학교를 신나게 다닐 무렵엔 일기가 공백기였다. 한편,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상실감에 휩싸여 있을 무렵엔 다시 일기가 빼곡히 차있었다. 그 고통이 여실히 드러날 정도로 내밀하게 기록돼 있었다.

사실 일기장을 다시 읽고 나서 한동안 '가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게 기록은 그랬다. 삶에서 고통을 마주할 때면 그렇게  몸부림치듯 일기를 썼다. 마치 살아있다는 증거를 남기기위해 안간힘을 쓰듯이 말이다.




2년 전 선물받은 책을 통해 '문학치유'란 분야를 알게됐다. 문학치유란 소위 우리가 문학이라고 말하는 것(시,  소설뿐만 아니라 더 넓은 범위에서 영화까지도 포함)을 매개체로 하여 글쓰기를 하면서 치유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일찍이 저널(일기)을 통한 글쓰기 치료가 연구되고 입증되면서 학문으로도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도 아직 널리 알려져있지는 않으나 글쓰기 치료를 주제로 한 각종 세미나, 자격증, 사설 교육센터 등이 존재한다.

사실 문학치유라는 분야를 알기 전에도 문학이나 글쓰기를 통해 위로를 얻으며 치유를 경험한 적이 있다. 내 마음을 훤히 알듯 공감을 쏟아내는 책과 영화를 몇 번이고 탄성을 지르며 다시 본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때때로 어려운 속내를 누구에 의해서도 끊어내지 않고 끝까지 쏟아낼 수 있는 글쓰기는 내게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중에서도 일기는 누군가에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떤 의견도 듣지 않을 자유를 가진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나의 고통을  이해받고 싶어 하는가. 그래서 끊임없이 이 얘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찾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꺼내놓고도 얼마나 많은 허무와 씁쓸함을 경험하는가.

언젠가 친구에게 내 고통을 털어놨을 때 들었던 인상 깊은 말이 있다.


내게 꺼내놓는 건 괜찮아.
그런데 네가 내일 아침에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된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일은 쉽지 않은일이다. 굳이 이걸 털어놨어야 했나싶은 뒤늦은 후회가 밀려올 때, 어렵사리 털어놓은 마음이 공감을 얻기도 전에 섣부른 해결책으로 돌아올 때, 내 고통을 상대에게 이해시키려 했던 어설픈 노력에 자책하던 수많은 순간들.

"이럴 바에 절대 말 안 해야지."란 마음을 먹고 무시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속으로 감싼 고통이 잊혀지지 않고 가슴에 맴돌게 되면 나는 결국 일기장을 찾았다.

어쩌면 일기는 그런 게 아닐까. 내 고통을 타인 앞에 꺼내기 전에 스스로가 그 고통을 바라보고 감싸 안는 과정 말이다. 정작 내 것을 적나라하게 대면하고 살펴보기도 전에 타인에게 넘겨버리지는 않았는지 생각하게 된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것이 솟구치는 날에는 일기장에 하염없이 털어놓고 스스로의 마음을 인정해주는 것은 어떨까.  

작가의 이전글 위로에 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