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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Jul 13. 2016

생각의 계절에 서서

그곳에서 오랜 꿈을 되새기다.

엄마와 나는 둘만의 여행을 꿈꿨다. 텔레비전에서 여행지 소개될 때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중에 저곳에 함께 가보자."라고 했다. 하지만 결국 오랜 꿈으로 남았다.




 스무 살 무렵 엄마는 갑작스레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나는 종종 혼자 여행을 떠나곤 했다. 작년 여름엔 휴가를 맞아 무작정 남해로 향했다. 그 무렵 나는 유난히도 혼자 걷고 싶은 갈망에 쌓여있었다. 회사 점심시간과 퇴근길에도 홀로 걷는 시간이 잦아졌다. 남해여행은 그 갈망을 채워주는데 안성맞춤이었다. 그렇게 떠난 남해에서 왜 내가 이곳에 왔는지 문득 깨닫게 된 시간이 있었다.


생각의 계절이 있는 평산리 마을


  남해에 도착한 지 둘째 날 해안가 작은 마을에 있는 '생각의 계절'이란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무엇보다 이름이 마음에 들어 예약하게 된 곳이었다.

 오전에는 숙소에서  거리가 있는 독일마을에 갔다가 파독전시관이 휴관이어서 아쉬운 걸음으로 돌아왔다. 저녁 무렵 게스트하우스의 공용공간에 앉아 쉬고 있는데,  새로운 게스트가 도착했다. 문을 열어 맞이했고 짐을 나눠 들었다. 게스트는 인자한 미소를  중년 여성이었다. 자연스레 나도 씽긋 웃어 보였다. 곧이어 일행인 30대의 자도 등장했다.  사람은 한눈에 보기에도 모녀 같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이 함께 짐을 옮기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게 되었다. 여느 평범한 모녀의 모습이었지만 내게는 훈훈한 광경이었다. 모녀는 지금  부산에서 왔다고 했다. 중년 여자는 내게 혼자 여행을 왔냐고 물었고 마치 자신의 젊었을  모습을 보는  같다며 반가워했다. 딸은 무화과를 씻으며 넉살 좋은 엄마를 쳐다보더니  표정을 살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엄마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에게는 괜스레 마음이 열리곤 했다. 딸은  호의적인 반응에 마음이 놓인  같았다. 곧이어 여자는 무화과를 그릇에 담고 샴페인을 꺼냈다. 속으로 특별한 날인가 싶었다. 여자는 1층에 있는 카페에 같이 내려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둘만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자리를 비키려 했지만, 모녀는 이미 서로 지겹도록 얘기를 나눠서 나와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1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남해는 파도가 무척이나 잠잠하여 호수 같았다. 바깥 온도는 춥지도 덥지도 않아서 체온과 비슷했다.


모녀는 종종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여자는 혼자 여행하기 위해 아버지 몰래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2주간 다녀온 여행기, 젊어서 히치하이킹  경험, 이성 펜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서 대전까지 내려갔던 이야기 등을 늘어놓았다. 회상한 젊은 시절에 자신감이 느껴졌다. 낯선 곳에서 어쩌면 다시   사람에게 마음껏 솔직해질  있는 자유가 느껴졌다. 딸은 엄마의 얘기를 처음 들은  같았다. 곧이어 '엄마가 나보다  했으면서 자신에겐  그토록 보수적이냐' 불만을 토로했고 한동안 모녀는 투닥였다.  모습이 정겨워 한참 눈을 떼지 못했다.


생각의 계절에서 펼쳐지는 야경

 

 긴밀하게 연결된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빛나는 모습은 제삼자가 되어야만 볼 수 있는 걸까. 적당한 무관심, 애증, 함께하며 닮아진 모습과 두 사람만의 시너지를 말이다. 엄마와 딸이 여자로서 공통점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무렵, 나는 엄마와 여행을 하고 싶었다. 엄마는 여행의 어떤 부분에서 감흥을 얻는지, 열린 마음으로 털어놓는 엄마의  옛날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자연스레 잊게 된 마음속 바람이었다.


다음  아침 모녀는 게스트하우스에서 가장 일찍 아침 식사를 했다. 여자는 내가 식사를 어떻게 할지 다음 행로는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했고, 딸은 괜한 참견이라며 말렸다. 나는  마지막 행선지를 들렸다 서울로 돌아갈 참이었다. 왠지 모를 아쉬움을 여자가 나눠준 바나나를 먹으며 채웠다. 전날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편했고 다정했다. 모녀는 나의 마지막 행선지까지 차로 데려다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마지막 행선지


  그날은 엄마와 오래도록 함께 꿈꾸던 순간을 듣고 보고 담는 순간이었다. 한편엔 아릿한 그리움이 맺혔지만 그것이 아니었으면 이 모녀와의 만남이 그리 특별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부러운 만큼이나 모녀의 여행이 앞으로도 길게 이어지길 바랐다.

하고 싶은 것은 결국 경험하게 되는 것인가 보다. 직접 겪지 못할지라도 또 다른 삶을 통해 담게 되는 것이 결국 삶에서 꿈을 품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지 생각해본다. 그날 밤 생각의 계절에서 내려다본 방파제 불빛이 여전히 마음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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