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드업

by 장기정

치과 의사로 산다는 건 매일

완벽이라는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쏘는 일이다.

하지만 그 과녁은 때로 너무 멀리 있다.

그리고 내 손엔 활 대신

조급함이라는 무거운 짐이 들려 있을 때가 많다.


어느 날 축구 경기를 보다가

해설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빌드업(Build-up)이라는 단어에 갑자기 꽂혔다.

수비수들이 뒤에서부터 차근차근 공을 돌리며

기회를 엿보는 그 지루하리만큼 정직한 과정.


문득 내 진료실의 풍경이 겹쳐 보였다.

나는 과연 내 삶과 일을
제대로 빌드업하고 있는가?

진료실에서의 조급함은

대개 상충하는 가치들 사이에서 태어난다.

어려운 케이스의 치료가 예상보다 길어질 때,

마스크 너머로 거칠어지는 내 호흡은

뒤에 대기 중인 환자들의 명단으로 향하면서

한없이 불안정해진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고 싶지 않은

임상가로서의 결벽과

경영자로서의 압박이 충돌하는 지점.


"원장님, 다음 환자분 오셨습니다"라는

스태프의 나지막한 독촉은

내 손끝을 더욱 떨리게 만든다.


환자의 컴플레인 또한 조급함의 불씨가 된다.

치료 후 예후를 지켜봐야 하는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환자를 마주할 때면

과학적 근거보다는 당장의 불만을 잠재울 빠른 처방의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여기에 손발이 맞지 않아 스태프와의

호흡까지 어긋나면

나의 내면은 빌드업이 무너진 경기장처럼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이런 조급함 속에서 과거의 나는 결과를 빨리

내놓는 것만이 유능함의 증표라 믿었다.


하지만 조급함이 빚어낸 결과는

늘 뒤끝이 개운치 않았다.


서둘러 마무리한 치료 끝에 찾아오는

미묘한 불편함은 결국 내 밤잠을 설치게 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내가 정의하는 빌드업은 결과라는 스코어보다 과정을 쌓아가는 축적에 집중하는 삶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결국 정직한 공정의 연속이다.

단계를 건너뛴 요행은 없다.


원칙을 지키는 진료 철학을 쌓고

환자의 불안까지 포용할 수 있는

단단한 내공을 축적하는 것.


그리고 나와 호흡을 맞추는 스태프들이

성장할 시간을 기꺼이 기다려주는 인내.


이 모든 것이 점차적으로 쌓일 때

비로소 나의 진료실에는 억지스럽지 않은 평온한 흐름이 생겨난다.


이런 나의 생각을 갖게 해준 장본인은 바로 에픽테토스다.

그는 말한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결과에 힘쓰기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에 집중하라."


나는 이 말을 받아들였고 내가 결과라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과정이라는 자존감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과정은 결과보다 중요하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또한 과정에서 중요한 건 '전개과정'이다.


계획은 무엇인지,

장애요인은 무엇인지,

예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엇인지,

장애요인과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대비책은 무엇인지

맨 먼저 무엇을 할것인지 등등


전개과정에 집중 할수록

'결과가 안좋게 나오면 어떡하지?'

같은 걱정과 불안은 줄어든다.


오늘도 나는

진료실이라는 나만의 경기장에 들어선다.

여전히 환자들을 만날 것이고

예상치 못한 변수들은 내 평정심을 시험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조급함에 등 떠밀려 공

을 아무 데나 걷어내지 않는다.


단 한 번의 정교한 패스가 골로 이어지듯,

오늘 나와 마주하는 환자 분들.

그리고 나의 소중한 직원들에게 쏟는

정성 어린 과정이 결국 가장 완벽한 결과를

만든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한 걸음씩 내딛는 이 정직한 빌드업이야말로
치과 의사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내가 배워가고 있는 아름다운 전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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