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수가 되고 싶은 하수다

by 장기정

영화 [신의 한 수]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 세상은 고수에게는 놀이터요, 하수에게는 지옥이다.”

처음 이 대사를 들었을 때 명언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뇌리에 그대로 각인 되어버렸다.


나는 아직 고수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고수가 되고 싶은 하수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찾아 보았다.


어떤 사람에게 세상은 놀이터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 세상은 지옥이 될까.


내가 내린 답은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가의 차이.


내가 생각하는 주도적인 삶은 이렇다.

해야 할 것과 하기로 한것반드시 해내고,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하지 않기로 한 것책임지고 안하는 것이다.

자신과 한 약속을 얼마나 잘 지킬 수 있는가.


그리고 정당하게 내 권리와 자유를 행사하는 것이다.


내가 정한 나의 의무와 규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내 권리를 내가 선택한 방향으로 행사하는 것.

이때 비로소 내가 속해 있는 세상은

나만의 놀이터가 된다.


나의 의무와 규칙은 세상이라는 거대한 놀이터를 안전하게 지탱하는 울타리와 같다.

그 울타리를 스스로 세우고 지킬 줄 아는 사람만이 게임의 법칙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삶을 운영할 수 있다.


하수에게 세상이 지옥인 이유는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외부의 유혹과 강요에 끌려 다니며 충동과 감정에 흔들린다.


반면 고수에게 세상이 놀이터인 이유는 이미 스스로 세운 규칙 안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절제를 자유의 반대말이라고 생각한다.

절제는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고 자유는 그 감옥을 부수고 나가는 것이라고.

그래서 절제하는 삶은 고달프고 마음껏 분출하는 삶은 자유로워 보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욕망과 충동에 아무런 저항 없이 살아가는 삶의 끝에는 언제나 또 다른 구속이 기다리고 있다.


해야 할 일을 미룬 대가는 불안으로 돌아오고

하지 말아야 할 것에 손을 댄 대가는 후회로 돌아온다.

그들은 자유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충동에 끌려 다니는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반대로 절제는 자유로 향하는 가장 안전한 통로다.

내가 정한 규칙에 따라 해야 할 것을 해내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지킬 때

나는 비로소 나 자신에 대한 통제권을 손에 넣는다.

그때의 절제는 외부의 거센 바람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요새가 된다.

요새 안에서 보호받는 사람만이 밖을 향해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절제는 악기를 조율하는 과정과도 닮아 있다.

줄을 팽팽하게 조이고 음을 맞추는 과정은 분명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조율이 끝난 악기만이 비로소 아름다운 곡을 마음껏 연주할 수 있다.

조율되지 않은 악기는 소음만 낼뿐이다.


내가 말하는 주도적인 삶이란 나라는 악기를 스스로 조율하는 삶이다.

철저하게 의무와 규칙을 준수한 뒤에 주어지는 권리는 비로소 부작용 없는 순수한 기쁨이 된다.

내 마음의 주인이 나라는 확신이 있을 때 세상은 더 이상 거칠고 위협적인 곳이 아니다.

그때 비로소 세상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가 된다.


나는 아직 고수가 아니다.

그래도 괜찮다.

나와의 약속, 나의 의무와 규칙을 항상 되새기며 내 세상이 지옥이 아닌 놀이터가 되도록 노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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