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이라는 모래성 위에서 내려와 나만의 시스템을 세우기까지
주기적인 원장 모임이 있던 어느날, 돌아오는 길에 형언할 수 없는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화려한 조명 아래 모인 원장들은 저마다의 무용담을 쏟아냈습니다. 이번 달 매출이 얼마인지, 어떤 고가의 장비를 들였는지, 얼마나 대단한 인맥을 쌓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당당했고, 그 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성공 서사를 들어주는 일뿐이었습니다.
흉내가 만든 비참함 그 자리를 빠져나오며 가장 저를 괴롭혔던 것은 열등감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그들의 방식을 무비판적으로 따라 하려 애쓰는 제 모습이었습니다. 나만의 색깔도, 나만의 기준도 없이 남들이 좋다니까 하는 방식을 흉내 내는 것은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를 가장 두렵게 만든 것은 실체가 없는 관계였습니다. '이들과의 인맥이 끊어지면, 내 치과도 나라는 존재도 무너지지 않을까?'라는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그 두려움 때문에 저는 원치 않는 모임에 나가 억지 웃음을 지었고, 내실 없는 관계에 소중한 에너지를 소모했습니다.
하지만 그 비참함의 끝에서 저는 선언했습니다. 인맥이라는 모래성 위에 나를 세우는 대신, 누구도 흔들 수 없는 나만의 시스템을 세우기로 말입니다.
배움으로 채운 고립의 시간 그날 이후, 저는 사람들의 입소문 대신 배움을 택했습니다. 부족한 임상을 채우기 위해 매 주말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노하우를 배웠습니다.
어느 정도 임상이 안정을 찾은 후에는 또 다른 배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협상을 배우며 환자와의 관계를 재설정했고, 코칭을 배워 제 자신을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그것을 기반으로 비로소 직원과의 진정한 소통법을 알게 되었고 이를 현장에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배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시 대학원에 진학하여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결과를 논문으로 만나며 스스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나갔습니다. 인맥을 쌓기 위해 분주했던 시간은 저를 단단하게 만드는 연구와 사유의 시간으로 바뀌었습니다.
가장 단단한 독립의 시작 20년이 지난 지금, 저는 더 이상 타인의 무용담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인맥보다 강력한 것은 결국 제가 구축한 시스템이며, 타인의 지시보다 위대한 것은 나 자신에게 던지는 올바른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과거의 저처럼 안개 속을 걷고 있을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을 무너뜨릴 것 같던 그 고립이, 사실은 가장 단단한 독립의 시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