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등 켜진 날

불안이라는 신호가 내게 말을 걸 때

by 장기정

비상등이 켜졌습니다. 깊숙이 잠자고 있던 걱정의 씨앗이 순식간에 몸집을 불리더니, 머릿속은 어느새 여러 가지 비극적인 결말을 만들어 냅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입안이 바짝 말라 들어갑니다. 호흡은 얕아지고 속은 쓰려옵니다.


다른 일에 몰두해 봐도 그때뿐입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눈을 감고 가장 안락한 보금자리로 나를 보내려 해도, 눈앞에서 깜빡거리는 이 붉은 신호가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닙니다. 한 번 켜진 비상등은 꺼질 줄을 모르고 평온했던 내면을 휘젓고 다닙니다.


이 비상등은 켜질 때마다 늘 새롭습니다. 사실 현실에서 대단한 변고가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토대로 앞으로의 일을 예측하고, 짐작하고, 추측하는 나의 마음이 불안의 스위치를 올린 것입니다.


비상등을 끄기 위한 조치 비상등을 끄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면 조치가 필요합니다. 머릿속에만 머무는 온갖 추측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에게 털어놓는 것도 잠시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합니다.


결국 저는 펜과 노트를 꺼내 듭니다. 그리고 쓰기 시작합니다. 머릿속을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생각의 파편들을 지면 위로 하나씩 끄집어 놓습니다. 단어, 문장, 밑줄, 동그라미.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표현을 마구잡이로 쏟아내고 나면, 신기하게도 멈췄던 숨이 돌아옵니다.


의식적으로 심호흡을 해본 적이 있나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쉴 때 몸은 저절로 이완됩니다. 순간적으로 감정이 가라앉고 일시적인 안정감을 맛보는 순간, 비로소 노트 위에 어지럽게 흩어진 글들을 다시 정리할 여유가 생깁니다.


방향이 설정되면 비상등은 꺼진다 정리된 내용에 집중하다 보면 비로소 가야 할 방향이 보입니다. "이렇게 해보면 되겠구나"라는 확신이 연결되는 지점입니다. 이제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 방향대로 실행에 옮깁니다. 내 안에서 "이 길로 가면 비상등이 꺼질 거야"라고 알려주는 신호를 믿고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맞고 틀린 것은 없습니다.

비상등은 이제 꺼졌습니다. 속 쓰림도 사라지고 무뎌졌던 오감도 다시 제 기능을 찾았습니다. 다시 앞으로 전진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저는 비상등이 켜지면 나 자신을 비난하기 바빴습니다. 걱정하는 스스로를 자책했고, 이 불안을 나눠줄 사람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럴수록 불안과 두려움은 더 커져 저를 더 깊은 늪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이 문제는 나 자신이 오롯이 해결해야 하며, 앞으로도 부지불식간에 다시 찾아오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걱정을 희망으로 바꾸는 법 "안 좋아지면 어떡하지?", "망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은 결과에 매몰된 걱정일 뿐입니다. 우리가 유일하게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일은 방향 설정입니다. "이렇게 가볼까?", "저렇게 해볼까?"라는 고민은 두려움이 아닌 희망을 품게 합니다.

오늘도 내게 켜진 비상등의 정체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하기로 정한 것을 해나갑니다. 나에게 신호를 보내준 나의 불안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알려줘서 고마워, 나의 비상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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