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호하려고 쓴 안경이 세상을 가리고 있었다

내 안의 편견을 닦아내는 <마음의 안경학>

by 장기정

나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시력 교정이 목적이었지만, 속내는 따로 있었다. 내 이미지를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들고 싶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작은 눈에 항상 화가 나 있는 듯한 내 표정이 타인에게 위화감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오해와 다툼을 막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가 내 얼굴 위에 안경이라는 장치를 덧씌우게 한 것이다. 안경은 내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날카로움을 가려주었고, 때로는 모범생으로, 때로는 선한 이미지로 나를 포장해 주었다. 안경이라는 보호막 뒤에서 나는 비로소 안도감을 느꼈다.


성인이 되어 처음 선글라스를 꼈을 때의 해방감을 기억한다. 더 이상 미간을 찡그릴 필요도 없었고, 쾌적한 보호막 아래서 나는 세상을 관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건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어났다.


선글라스를 낀 채 건물 안으로 들어섰을 때, 실내는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답답함에 선글라스를 벗어던지자마자 컴컴했던 공간이 순식간에 선명한 디테일로 살아나 내 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눈앞에 보이는 것에 순간적으로 압도되어 나는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지금껏 어떤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는가?”


내 시력을 보완해 주는 투명한 안경과, 나를 보호하지만 세상을 어둡게 보이게 하는 선글라스. 이 도구들을 번갈아 보며 나는 깨달았다. 우리 마음속에도 무수히 많은 인식의 안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각자의 경험과 상처, 그리고 생존 본능이 만들어낸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재단한다. 어떤 이는 불안이라는 안경을 쓰고 다가올 기회를 위협으로 해석하고, 어떤 이는 방어라는 선글라스를 끼고 타인의 진심을 왜곡해서 받아들인다. 내가 쓴 안경이 실은 내가 보고 싶은 방식대로 세상을 편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실내에서 선글라스를 벗었을 때 비로소 공간과 사물의 실체가 드러나듯, 나 또한 이제야 비로소, 익숙한 필터를 벗어던질 용기를 내어보려 한다. 나를 보호한다는 핑계로 끼고 있던 방어의 색안경을 벗을 때, 비로소 타인의 온도와 세상의 민 낯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습관적으로 안경을 닦는다. 하지만 이제는 렌즈 너머의 세상을 닦기보다, 내 안의 시선이 혹시나 편견으로 얼룩져 있지는 않은 지 먼저 살핀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어떤 안경을 쓰고 있는지 스스로 묻는 일이다. 렌즈를 닦듯 내 마음의 편견을 수시로 닦아낼 수 있는 나라는 시스템, 그것이 절실하다.


안경 뒤에 숨어 위화감을 줄이려 했던 소년은 이제 없다. 대신, 투명한 눈으로 세상을 직시하려는 한 남자가 거울 속에 서 있을 뿐이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어떤 안경을 썼는지 스스로 묻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오늘, 어떤 마음의 렌즈를 닦아내고 싶으신가요? 여러분의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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