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도로에서 차를 돌린 이유
화창한 어느 휴일,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맑은 날 짙은 녹색의 자연을 보며 운전하는 기분은 그야말로 평화롭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비가 쏟아졌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비를 맞고 달리던 찰나,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비가 오기 전 내가 달렸던 그 도로에도 지금 비가 내리고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차를 돌려 아까 비가 오지 않았던 곳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놀랍게도 그곳엔 정말 비가 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마른땅과 비에 젖은 땅의 경계지점을 향해 걸어보았습니다. 마치 누군가 선을 그어 놓은 것처럼, 두 세계는 뚜렷하게 구분 지어져 있었습니다.
대척점에 있는 두 자연현상이 서로의 힘을 과시하지 않고 잘 균형을 이루고 있는 찰나. 그것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신기한 순간 중 하나일 것입니다. 잠시 마른땅과 젖은 땅을 오가며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비가 오는 쪽에 서서 안 오는 쪽을 바라보니 기이한 정화의 느낌이 듭니다. 몸을 적시는 빗물이 나를 씻어내고, 내 눈에 들어오는 밝은 세상이 내 안을 환하게 비춰줍니다.
반대로 비가 오지 않는 쪽으로 넘어와 비 내리는 쪽을 바라보면 또 다른 감각이 깨어납니다. 햇빛과 바람의 존재가 선명해지고, 내 몸은 바람과 따스한 햇빛을 충분히 받아들입니다. 그러다 어둡고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니, 몸으로 느끼던 따스함이 갑자기 중단되어 버리는 듯한 경험을 합니다.
내 몸이 느끼는 것과 내 눈이 바라보는 것 사이에 이토록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를 맞는 몸이 해가 내리쬐는 풍경을 바라볼 때, 그리고 바람을 맞는 몸이 비 뿌리는 곳을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는 적당한 균형점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비는 떨어지고, 땅은 젖습니다. 하지만 그 경계선은 잠시 고정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 흐르는 변화 속에서 잠깐 허락되는 정지의 순간,
경계는 비로소 뚜렷해집니다.
우리는 흔히 상황이 변하면 그 변화된 모습이 영원할 것이라 오해하고는 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변해갈 것이라 예측하며 두려움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같은 하늘 아래 때때로 상황이 달라질 뿐, 본질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오감은 외부 환경을 정확히 인식하지만, 우리의 뇌는 오직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그 환경을 해석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그 뇌의 명령에 따라 살아갑니다. 저는 여기서 한 번쯤 오감과 뇌, 그리고 내가 대화를 나눠보면 어떨까 제안하고 싶습니다.
오감에게는 “너희들은 외부 상황을 받아들이는 거 어때? 얼마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어?”라고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뇌와의 대화는 꽤나 까다롭지만 해볼 만합니다.
“넌 요즘 어떤 기준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있어?”
“네 무의식과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어?”
인간은 꽤 복잡하게 구성된 생명체입니다. 우리의 정체를 완벽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 의식이 이 복잡한 인간이라는 존재와 잘 지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시도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삶에 적용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비를 맞으면서도 기어이 저 멀리 밝은 곳을 응시하는 마음. 그 경계의 시선이야말로 우리가 삶의 균형을 붙잡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