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이라는 가면을 쓴 의존

갈등을 피하려다 잃어버리는 것

by 장기정

우리는 흔히 겸손을 미덕이라고 말한다.

겸손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편안하다.

자기 공을 드러내지 않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든다.

“겸손처럼 보여 편안한데도

왜 어딘가 불편한 느낌이 남는 걸까?”


겉으로는 자신을 낮춘다.

그런데 대화를 이어가 보면

그 낮춤이 책임을 내려놓기 위한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그것을 겸손이라는 가면이라고 생각한다.


겸손이라는 가면을 쓴 사람들은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제가 잘 몰라서요.”

“제가 뭐라고 말씀드리겠어요.”

“제가 부족해서 그렇죠.”

“선생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이 말들은 모두 겸손하게 들린다.

그리고 공통점이 하나 있다.

자신의 판단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결정도, 책임도, 방향도 모두 상대에게 넘겨버린다.

겸손의 언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존의 언어다.


치과 진료실에서도 이 장면은 자주 반복된다.

치료 방법을 설명하고 여러 선택지를 안내하면

환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그럴 때 나는 다시 묻는다.

“환자분은 어떤 방향이 좋으세요?”

대부분 잠시 멈춘다.

그리고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말한다.

“제가 잘 몰라서요.”


이 사람은 결정을 해본 경험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사람이 의존적인 이유는 단순하다.

결정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선택을 하면 그 결과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판단을 타인에게 맡기고 싶어 한다.

판단을 남에게 맡기면 마음은 편해지지만 삶의 방향도 함께 넘겨주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겸손이라는 언어가 등장한다.

“제가 부족해서요.”

“제가 잘 몰라서요.”

“전문가가 정해주시는 대로 할게요.”

겸손한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책임은 제가 지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진짜 겸손은 다르다.

진짜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낮출 수 있지만 판단을 포기하지 않는다.

“제가 아는 범위에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제가 부족하니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결정은 제가 하겠습니다.”

이 말에는 겸손과 책임이 함께 있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한동안 의존적인 방식으로 살았다.

누군가의 조언을 듣고 누군가의 방식을 따라 하고 누군가의 판단을 빌려 결정을 내렸다.

겉으로 보면 겸손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방향을 남에게 맡긴 삶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 이후 나는 한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내 기준은 무엇인가.”

기준이 생기면 겸손은 더 이상 가면이 될 필요가 없다.

여전히 겸손할 수 있다. 하지만 의존은 사라진다.


사람의 언어는 그 사람이 서 있는 위치를 보여준다.

의존의 언어는 이렇게 시작한다.

“누가 정해주면 좋겠습니다.”

기준의 언어는 이렇게 시작한다.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 사이 어딘가를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조금씩 겸손이라는 가면을 벗어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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