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정답에 의존하던 나를 발견하다
같은 동네 원장들이 몇몇 모여 점심 식사를 하는 날입니다. 병원 근처 식당으로 가는 길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마음 한구석이 불편합니다.
그럼에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잡습니다. 식사가 시작되고 침묵이 흐르는 사이, 맞은편 원장님이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눕니다. 병원 경영, 투자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가 오갑니다. 저는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조용히 식사를 이어갑니다.
간간이 주변 원장들과 눈이 마주치면 어색하게 웃으며 눈인사를 건넵니다. 나의 입은 굳게 닫혀 있고, 머릿속엔 '빨리 식사를 마치고 병원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입니다.
이 자리는 적어도 제게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 따뜻한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모임에 소속되어 있으니 출석 도장을 찍는 자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저는 끊임없이 내 병원과 나를 비교했습니다.
‘저들과 비교해서 난 괜찮군.’ ‘저들이 말하는 저 정보는 내가 모르는 건데….’
결정타는 누군가 내게 정보 취득 차원에서 “이거 알아요?”라고 물어올 때였습니다. 저는 거의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분명 제가 잘 해오던 부분에 대해 “이 부분은 어떻게 하고 계세요?”라는 질문을 받아도 저는 늘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대답을 망설였던 이유는 명확합니다. 제 대답이 저들에게 정답으로 받아들여질지 아닐지를 검열했기 때문입니다. 제 말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다시 말해 내 가치를 타인의 판단 기준에 의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질문을 던집니다.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면 당연히 되물어야 했지만, 당시의 저는 다시 물어보는 행위 자체에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질문을 다 알아들은 척, 모든 맥락을 파악한 척 연기하며 저는 저의 방어기제를 풀 가동시켰습니다. 수치심을 들키지 않으려 세운 견고한 성벽이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이런 진실을 알 수 없었습니다. 감정은 늘 불안정했고, 편도체는 활성화되어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극단적으로 몰아가기 일쑤였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에서야 가려져 있던 진실의 이면을 어느 정도 발견했습니다.
코칭을 공부하며 내 방어기제의 실체를 마주한 그날, 비로소 모임에서의 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소통을 원하는지 정리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제 말을 중간에 자르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을 원합니다.
저의 질문에 비난 대신 정성스럽게 답해주는 사람을 존중합니다.제가 한 말을 습관적으로 부정하지 않는 소통을 지향합니다.
당시의 저는 타인의 질문에 정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가 어떤 소통을 원하는지 스스로 정의하는 내면의 시스템을 만지작거립니다. 저는 지금도 나를 발견하고, 매만지며, 나만의 시스템을 정리해 나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