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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젝트홀릭 Mar 07. 2023

내일 아침은 일찍 일어나야지 - 3. 그릇에 대하여

세 번째 이야기

[내일 아침은 일찍 일어나야지]
 #3. 그릇에 대하여


나이를 먹으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나 어쩌면 아는 것이 많아졌을 수도?’ 하는 오만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것저것 궁금하면 찾아보고, 수많은 생각이 누적되다보니 이전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그날도 그냥 그런 날이었다. 

빨래를 널며 현재의 소소한 고민 거리부터 과거의 창피한 기억, 과거의 연애사까지 곱씹다가 갑자기

“그래. 모든 것은 그릇 문제일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든 날 말이다.


사람은 날 때부터 그릇이 정해져있어 그렇게밖에 못산다는 슬프고 자포자기하는 말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내가 생각한 그릇은 뜨겁게 달궈서 망치 따위로 땅땅 치면 넓혀지는 그런 확장되는 그릇을 상상한 것이다.


하지만 이때까지의 나는 분명 나의 무언가를 땅땅 치려고 애쓰며 살았던 것 같은데, 그래도 내 그릇이 내가 상상했던 그릇보다 무척이나 작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특히 가끔씩 생각나는 과거 연애사들을 떠올릴 때면 더욱 그렇다.



연애할 때의 나는 분명 넓은 그릇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상대가 넓은 그릇이었나? 여기에도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이걸 보면 나는 분명 넓은 그릇은 안될지도 모른다. 나는 어쩌면 좁은 그릇과 좁은 그릇끼리 만나 어느 누구도 담고, 담기지 못한채 챙챙거리며 부딪치는 소리만 냈던 것이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한 명이 그릇, 한 명은 그 안에 담길 수 있는 꽃이나 밥같은 존재라면 참 좋았겠다. 과연 내가 그릇이 좁아서 그 애를 못담은 것인가, 아니면 내가 그 애의 그릇에 들어갈 무언가가 되지 못했던 것인가를 탐색하곤 한다.


그렇게까지 생각하다가 또 이런 생각을 한다. 내 그릇은 이 사람한테만 작았던 것일까? 그럴리가 없다. 나는 그 사람을 좀 더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그릇이 갑자기 미친듯이 커진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그릇을 모르는 말이요, 자신의 그릇이 커진 것처럼 상상하는 것을 착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말이다.


내가 오늘 밤 또다시 늦게 자는 것도 어쩌면 내 그릇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어떤 그릇이 되어야 많은 것을 품을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재질 정도는 되어야 그것들을 품으면서도 다치지 않을 수 있는지를 상상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곧 식을 밥이라도 따뜻한 밥같은 사람이 나에게 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이불에 밥처럼 담기기나 해야지.

그만 생각하고 잠이나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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