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_서머싯 몸

몇줄리뷰

by 가가책방

몇 년만에 다시 읽은 <달과 6펜스>. 아니, 일년 만인가.

두 번 이상 읽게 되면 결말이나 줄거리를 기억 못하게 되는 일이 사라진다. 세 번쯤 읽고나면 이제는 전에 읽었을 때와 무엇이 달라졌는지가 더 궁금해진다.


무엇이 더 보이고, 무엇을 더 생각하게 되었는가.
지난 번에 읽고 써둔 감상보다 더 나은 걸 쓰지 못하게 된다면 지난 시간 동안의 나는 퇴보하고 퇴화한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진다.


이번이 딱 그런 기분이었다. 세 번째 읽고, 다시 감상을 적으려고 했지만 제대로 써내지 못했다. 두 번째였는지 첫번째였는지 그때 써놓은 글을 옮겨 적기도 했다.
실패다.
무척 좋아하는 작가의 몹시 좋아하는 작품이었음에도 이 지경이다.


마음에 여유가 없다는 게 이렇게나 무섭다. 생각을 다듬지도, 새로이 떠올리지도 못하고 뒷걸음질만 치게 한다. 그러다 궁지에 몰리겠지.
그때는 어떻게 될지 아직은 알지 못한다. 완전히 궁지에 몰린 건 아닌 모양이다.


살만한 증권 중개인인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남자가 마흔의 나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죽기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리다 걸작을 완성하고는 편안한 표정으로 죽는다는 이야기다.


아내도 아이들도, 세상의 시선이나 평판도 그를 막지 못한다. 그 안에서 타오르는 예술혼이 허락하지 않는다. 죽지 않기 위해, 그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그리고 또 그린다. 그런 그의 주변에는 불행이 줄을 잇는다.

죽음, 절망, 좌절, 분노. 천재의 카리스마에 매혹당했는지,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성격에 희생당한 건지, 완벽한 작품을 위해 필요했던 제물이었는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시대는 천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알아보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이지만 낭만적인 달의 세계와 지극히 현실적인 6펜스의 세계.
우리는 어느 세계에 더 깊이 발을 들이게 될까.
용기가 필요하다. 결단과 각오가 필요하다. 단단하고 굳은 마음도 필요하다. 그 모든 게 나에게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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